"나의 연인 J에게" - 시간의 역류
"나의 연인 J에게" - 시간의 역류
  • 김충교
  • 승인 2012.03.19
  • 호수 8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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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뉴스가 매체의 전면을 장식하는 요즘입니다.

당선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들이 고지를 향해 돌진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4.11 총선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야 모두 공천을 마무리하고 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천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유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열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천에 탈락한 인물들은 삿대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공천심사를 한 인사들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한 지도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공천의 주도권을 쥔 친박에 대한 친이계의 원성이 높습니다.

일부 친이계 인사 중에는 대의를 내세워 꼬리를 내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 진영 사이에 파인 골은 여전히 깊어 보입니다.

민주통합당 역시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로 패가 갈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탈당에 이은 각개약진식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삼스러운 모습은 아닙니다.

낡은 필름이 다시 돌아가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니까요.

선거철이면 당연하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낙천한 인사들이 당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이나 차관을 지낸 인사들과 의기투합한다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치를 계승해 나간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무는 태양의 끝자락이나마 잡아보겠다는 심산이겠지요.

민주통합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천에 탈락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일부는 ‘정통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출범식까지 마쳤다는군요.

민주계 인사들이 기치를 들었다고 합니다.

보수성향의 중도신당을 표방하는 ‘국민생각’도 틈새를 노리고 있습니다.

‘국민생각’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이 같으면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아예 과거 범민주계로 불렸던 인사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발상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때문에 이젠 옛말이 된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의 인물들이 걸어 나올 태세입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일러 비박(非朴)과 비노(非盧)세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숨이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로 다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3김이 부활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속내가 안쓰럽습니다.

이들은 입으로는 여전히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변화와 개혁의 주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유권자를 변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은 정치권의 낱말사전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공천을 받은 인사들 중에도 새 인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허울 속에 나눠먹기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끼워 넣기 식으로 젊은이 몇몇을 내세우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면피용에 불과합니다.

세대교체는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치권은 시대정신을 역류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먼 옛날 고대신화의 시대만도 못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서양문화의 바탕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가 깔려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알지 못하고 서양문화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화는 신화일 뿐이고 만화와 같은 일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추상적인 면이 많아 리얼리티를 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신들의 신으로 군림한 제우스(Zeus)는 세대교체의 선구자입니다.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 천궁을 짓고 살았다는 제우스.

그는 자기 이전 세대의 거신(巨神)들인 티탄(Titan)들을 물리쳤습니다.

티탄시대에 하늘을 주관하는 신은 우라노스(Uranus)였습니다.

우라노스는 저 유명한 ‘12 거신’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 중에 크로노스(Cronus)가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바로 크로노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기괴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낳은 자기 자식을 즉시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그가 삼킨 자식은 모두 5명으로 제우스의 형제와 누이였습니다.

하데스와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등이 그들입니다.

제우스는 어머니가 기지를 발휘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우였습니다.

숨어 자란 제우스는 청년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은밀하게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크로노스가 삼킨 형제와 누이들을 다시 토해내게 만듭니다.

나중에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아들인 제우스에 의해 유폐되지요.

신화에서 제우스의 이 같은 행동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12 거신’들이 다스리던 신들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뜻이 의미심장합니다.

크로노스의 말뜻은 시간입니다.

잡아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시간입니다.

그렇게 보면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삼킨 것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시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진리를 상징하는 셈입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상징한 것입니다.

제우스는 자신이 살려낸 형제와 누이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 세대를 물러나게 합니다.

티탄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들을 신들의 영역에서 몰아냅니다.

싸움의 승패는 이미 예정돼 있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신들의 세계라 할지라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끝장을 보고자 합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대교체를 하기 보다는 거꾸로 거슬러 오르려 합니다.

신화에서 배워야 하는 한국 정치현실이 안타까울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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