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근무 폐지에 앞서 근로시간 유연화가 먼저
연장 근무 폐지에 앞서 근로시간 유연화가 먼저
  • 손부호 기자
  • 승인 2012.02.06
  • 호수 8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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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근로자 업무 부담 높아질 가망성
신규채용 따른 기업 부담 상승 문제점

내년부터 은행, 백화점, 이미용업 근로자들도 주당 52시간만 일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게 된다고 한다. 지난 50년 동안 특례업종으로 구분돼 장시간 노동 규제에서 배제됐지만,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대폭 손질됨에 따라 260만여명의 근로자가 연장근무 부담에서 벗어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기존 26개에서 10개로 대폭 축소하는 공익위원 의견을 채택했다”고 31일 밝혔다. 정부는 이를 기본으로 오는 6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운송·보건업을 제외한 보관 및 창고업ㆍ자동차 및 부품판매업ㆍ도매 및 상품 중개업ㆍ소매업ㆍ금융업ㆍ보험 및 연금업ㆍ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ㆍ우편업ㆍ교육서비스업ㆍ연구개발업ㆍ시장조사 및 여론조사업ㆍ광고업ㆍ숙박업ㆍ음식점 및 주점업ㆍ건물·산업설비 청소 및 방제서비스업ㆍ미용·욕탕 및 유사서비스 업종이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정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전문가들은 연장근로로 혹사당하는 근로자들의 사각지대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백화점에서 일하는 A씨는 내년부터 연장 근무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백화점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돼 주당 52시간(연장근무 12시간 포함)을 넘게 일해도 항의할 수 없었지만,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밥 먹듯이 해온 연장근무 부담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A씨는 “매일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해왔던 일 부담을 덜게 돼 좋지만, 얼마 안되는 월급이 연장근무 수당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A씨처럼 법에 규정된 근로시간 한도인 주중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이들은 400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8%에 달한다. 장시간 근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육상운송업과 방송업 등 나머지 10개 업종은 업무상 특성으로 여전히 특례업종으로 남아 있게 됐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A씨는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12시간 운전대를 잡는다. 오후 3시가 임박해 장거리 손님을 태우면 1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혹사'에 가까운 김씨의 연장근로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운수업은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하면 무제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된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A씨처럼 법에 규정된 근로시간 한도(주중 52시간)를 넘겨 일하는 운수업 종사 근로자는 전국 운수업 종사자의 약 21%인 12만6000여명(2010년 기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례인정 업종에도 대상업무와 연장근로의 한도를 설정하기로 해 연장근로가 지금처럼 무한대로 늘어나진 않을 전망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특히 백화점 종사자의 경우 90% 이상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연장 근로 축소에 따른 신규 채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기존 근로자의 업무 부담만 높아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반면 재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특례업종에서 일상화한 연장근로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규 채용이 불가피한데, 이에 따른 기업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휴일 근로와 연장 근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기존의 고용도 유지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 현장에서 어떤 반응으로 돌아올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침은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휴일특근 제한 조치는 생산량 보전, 임금 보전 등을 둘러싼 노사 대립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규제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라 산업현장의 요구에 부응해 전반적인 근로시간 유연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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