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보다 비싼 개미의 눈물
다이아보다 비싼 개미의 눈물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2.01.25
  • 호수 8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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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K 주가조작’ 뇌관 터졌다

 

▲CNK 인터내셔널 본사
사흘연속 하한가…‘99% 개미’ 피해 수천억원 예고

외교부, 주가 띄운 ‘홍보대사’, 금융당국은 늦장대처

 

CNK인터내셔널(카메룬다이아몬드 광산개발업체)이 정부 고위공직자까지 연루된 주가조작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규모가 수천억원에 이를 전망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의혹이 제기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조사 없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외교부와 금융당국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미흡한 투자자 보호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주가조작 정황이 드러난 지금도 CNK는 코스닥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정지 요건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는 “주가가 폭등하면 투자주의, 투자위험, 투자경고 단계를 거쳐 거래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불공정행위로 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주가가 계속해서 폭락할 우려가 있지만 이를 고려하는 제도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CNK는 지난 18일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사흘째 거래량 감소로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앞 다투어 매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한가로 장을 열고 마감하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매도물량 탓에 개인투자자들은 사건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수사개시 후 이틀 동안에만 사라진 시가총액은 1360억원. 지난해 8월 시가총액이 1조원에 육박했을 때와 비교하면 7000억원가량이 날아간 것이다. 여기에 개인투자자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 정부와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 향후 추가적인 주가폭락 우려 등의 피해는 금액으로 산정할 수도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말 기준으로 CNK의 소액주주는 1만3277명에 달한다. 무려 전체 주주(1만3287명)의 99.92%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3827만주는 전체 5289만주 중 72.37%를 차지한다.

이렇듯 투자자의 대부분인 개미들이 피해 입는 사이, 회사 관계자들은 이미 자사주를 팔아치워 상당한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인증’을 믿고 추격매수한 개미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다.

투자자들은 “외교부·지경부가 나서서 다이아몬드가 어마어마하게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까지 해 주니 주가가 폭등할 수밖에 없지 않나”며 주가조작을 방치하거나 나아가 공모한 당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무자본으로 상장법인 '꿀꺽'

지난 18일 증권선물위원회는 미공개정보 등을 이용한 불공정거래 혐의로 CNK 오덕균 회장과 정모 이사, CNK, CNK마이닝 한국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고,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을 비롯해 전현직 임원 4명과 일반투자자 2명을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증선위에 따르면 오 회장은 카메룬 소재 광산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현저하게 부풀린 탐사보고서를 이용해 자신이 보유한 CNK 지분 일부를 코스닥 상장법인에 고가 양도했고, 이 양도대금으로 코스닥 상장법인의 최대주주 지분을 양수했다. 사실상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상장법인을 인수한 것이다. 이후 허위·과장된 내용의 공시서류를 내고 유상증자 등을 통해 일반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이러한 정황을 바탕으로 증선위는 오 회장 등이 뻥튀기한 보도자료 등으로 투자자들을 유인한 후 주가가 올랐을 때 보유 주식을 매도한 데 대해 부정거래 행위라고 판단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CN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을 금융조세조사3부(윤희식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되고 있는 데는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김은석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 등의 석연치 않은 움직임이 발단이 됐다.

외교부 1차관 출신인 조 전 실장은 지난 2009년 1월 퇴직한 뒤 4월부터 CNK의 고문을 맡았다. 그는 부정거래를 공모해, 지난 2010년 12월 외교부의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후 주식 거래를 통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그가 4억20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이 과장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CNK의혹의 배후로 꾸준히 지목돼 왔다. 박 전 차관이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업무를 보던 중에 일정을 바꿔가며 카메룬을 방문했고, 그 당시 “CNK를 격려하고 지원하기위해 왔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 또 정태근 무소속의원은 “CNK 오 회장이 사석에서 자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박 전 차관”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대사는 CNK 관련 두 차례 발표한 보도자료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주가상승을 꾀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외교부는 지난 2010년 12월 17일 CNK가 카메룬에서 추정 매장량 4억20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국내기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외교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아직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은 이 개발의 사업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부적절하며 이례적인 발표였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외교부의 제스처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발표 당시 3000원대에 그쳤던 CNK주식은 외교부의 발표 후 3주 만에 1만6000원대로 치솟았다. 2011년 1월11일에는 장중 1만8천원대를 기록하며 5배가량 폭등했다. 외교부 발표 직전, 김 대사의 동생부부는 CNK 주식을 1억원 이상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조 전 실장의 보좌관 출신인 참사관과 김 대사의 비서로 알려진 외교부 직원 두 명도 각각 1~2천만원어치의 CNK 주식을 외교부 발표 전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있었던 외교부 자체조사결과에 따라 김 대사의 비서에게는 현재 직무정지가 내려진 상태다.

 

민정수석실ㆍ금감원 알고도 묵인

외교부의 CNK 홍보대사 노릇은 한 번뿐이 아니었다.

주가급등 무렵, CNK의 몇몇 임원이 주식을 처분해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이 새어나오는 한편, 외교부가 발표한 추정 매장량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자 외교부는 또 다시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6월 외교부로부터 다이아 광산 매장량에 대해 카메룬 정부의 공식 인정이 있었다는 취지의 보도 해명자료가 나오자 CNK 주가는 반등에 성공했고, 이후 등락을 거듭했다.

이밖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금감원이 지난해 2월 CNK의 주가조작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을 키우고 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지경부·총리실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돼 박 전 차관의 경질이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질은 없었고 금융감독원의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박 전 차관의 연루 의혹이 짙어지며 국회에서는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추진하려는 모습이다. 또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주식매도를 한 일이 없다고 밝힌 오 대표와, 카메룬 정부의 공식자료를 바탕으로 매장량을 산출했다는 김 대사를 위증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지경위에 따르면 오 대표는 국정감사에서의 발언과 달리 72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으며, 김 대사는 조 전 실장이 만든 자료를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 오 대표와 조 전 고문 등 핵심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여기에는 당초 증선위의 고발대상에서 누락된 김 대사의 동생부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량미달' 자원개발주 줄줄이 상장 폐지 

한편 부실한 자원개발주가 문제된 경우는 CNK뿐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원개발 기업 가운데 핸디소프트와 맥스브로, 글로웍스, 에코솔루션, 케이에스알, 엘앤피아너스 등 6곳이 상장폐지됐으며, 그 밖에도 분식회계설로 유아이에너지는 매매거래가 중단됐다.

핸디소프트는 2010년 해외 현지의 광산개발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금 290억원을 빼돌려 상장폐지됐다. 이 회사는 광산의 채굴권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외부감사인의 의견거절로 증시에서 퇴출된 글로웍스는 몽골에서 대규모 금광사업에 나서면서 2009년부터 호재성 공시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 회사 대표는 무려 700억원대의 부당수익을 챙겼다. 이는 고스란히 개미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글로웍스는 상장폐지 전부터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주가조작 등으로 대표이사가 구속되면서 글로웍스의 주가는 연일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했다. 정리매매 첫날에는 주가가 70% 이상 폭삭 무너져내렸다.

케이에스알은 자원개발주의 특징인 급등락 패턴이 두드러졌다. 카자흐스탄 유전개발을 공표했던 케이에스알의 주가는 지난해 3월초 3주 만에 70% 가까이 폭락하며 52주 최저가를 갈아치웠다. 그런데 이후 뚜렷한 이유 없이 주가는 다시 치솟으면서 한 달 사이 최대 72.9% 가까이 주가가 뛰었다.

하지만 케이에스알의 실상은 만기도래한 사채원금을 갚지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케이에스알은 6개월 뒤인 9월 반기보고서 미제출로 상장폐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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