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의 연인 J에게"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김충교
  • 승인 2012.01.09
  • 호수 8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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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이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교육이 일상이 돼버린 아이들의 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사는 아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연습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엄친아’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잘난 누군가와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요.

원한 것도 아닌데 주어진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10대의 문턱을 넘어서면 구체적인 학습이 시작됩니다.

배우고 익히는 의미를 따질 틈도 없습니다.

시험에서 옆의 친구를 따돌려야 칭찬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해서 성적이 쳐지는 아이들은 덜떨어진 아이 취급을 받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으니까요.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은 항상 우열을 가리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남보다 출중해야 세상에서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극성을 부리는 부모들을 탓할 일도 아니겠지요.

자식의 앞길을 걱정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요즘 같은 현실에서는 더 심각하게 느껴질 겁니다.

멀쩡하게 고등교육을 받아도 원하는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이니까요.

거창하게 신자유주의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육정책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신물이 납니다.

다만 이런 현실이 아이들의 소외감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소외감을 기형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아이들과 관련해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치유되기 힘든 상흔을 남기고 있습니다.

집단 따돌림과 폭력이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모르쇠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합니다.

가슴에 피멍을 안게 된 부모들은 심정이 어떨까요.

아마 아무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왕따’라는 말이 이젠 일반명사가 돼버렸습니다.

일부 어른들은 우리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몰이해일 뿐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집단 따돌림은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존재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행여 인정한다 할지라도 어른들은 또 다른 토를 달 겁니다.

그렇긴 했지만 우린 그런 것을 헤쳐 나왔다.

그런 고통을 참고 이겨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다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약해 빠져서 그렇다고.

기성세대들은 시간이 지나며 변하기 마련인 시대적 흐름을 간과합니다.

자신들의 시대정신으로 오늘을 판단하려 듭니다.

상황과 환경이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심적 충격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처참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관계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소외를 강요하려는 측은 무자비합니다.

청소년들은 아직 객관적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가해자인 입장의 아이들은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소외를 강요받는 아이는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임시일 뿐입니다.

사방이 꽉 막힌 벽속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출구를 찾아 탈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꺼내주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사회와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 또는 학교의 문제로 보면 답은 없습니다.

일회성의 끓는 냄비로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고 말겁니다.

이문열 작가의 작품 중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돼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와는 상관없이 명작입니다.

우리사회의 허위의식을 직설적으로 찔렀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시절이 세대적 배경입니다.

서울에서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서울학생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중산층 자녀로 요즘 말로 하면 ‘엄친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흠잡을 곳이 없는 반듯한 소년이거든요.

그런데 시골학교의 분위기는 어딘지 어긋나 있습니다.

엄석대라는 한 아이가 교실을 좌지우지합니다.

이 아이와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는 수직적입니다.

마치 조폭들에게 상납하면서 보호를 받는 유흥업소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선생님도 모른척하면서 오히려 그런 관계를 비호합니다.

엄석대는 소외의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의 심리를 꿰고 있습니다.

관계를 당겼다 풀었다하면서 자발적 복종을 끌어냅니다.

어김없이 폭력이 개입됩니다.

처음에 주인공 병태는 저항하지만 알아서 기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엄석대가 쌓은 철옹성은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납니다.

상황과 환경이 달라지면서 허위의 모습이 노출됐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얘기의 핵심은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재자로 묘사되는 엄석대 역시 소외되는 것이 무서웠던 겁니다.

영악하지만 이 아이 역시 소년이며 한 인간에 불과하거든요.

어른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소외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상실의 기억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도 합니다.

교육계를 비롯한 당국은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가해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인생을 전투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마인드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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