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사상의 은사"
"나의 연인 J에게"-"사상의 은사"
  • 김충교
  • 승인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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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신문 기자 ▷경향플러스 편집국장 ▷일요서울 편집국장
온라인을 통해 우연히 어느 20대 청년의 글을 읽었습니다.
놀라우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자신의 블로그에 청년은 리영희 교수에 대한 존경을 담은 글을 올렸더군요.
지난 12월 5일은 리 교수의 1주기였습니다.
해서 추모하는 마음으로 관련 글이나 기사들을 검색했습니다.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1주기에 대한 기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워낙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심하다 싶어 한숨이 나더군요.
저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 교수를 은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실제 프랑스의 권위지인 <르 몽드>는 리 교수를 ‘사상의 은사’라고 칭했습니다.
비록 범부에 불과하지만 저는 그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교수는 저의 사고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젊은 시절 그가 쓴 평론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눈이 뒤집어 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7080세대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빛바랜 청춘시절의 퇴색한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들더라도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가져다 준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기자출신답게 리 교수의 글은 발품을 들인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과 우리가 얼마나 남루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상식은 이성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한 때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나오고 나서는 삶을 핑계로 자기합리화에 빠지더군요.
등 따시고 배부른 것만을 행복이라 강요하는 논리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런 행복을 금세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덜 떨어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남 탓 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은근히 세상 탓을 했습니다.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뜻이 있다고 자신을 기만하기도 했구요.
젠체하기만 했지 진정성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사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머리는 텅 비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이 맘 때쯤이었습니다.
초겨울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될 무렵 문득 리영희 교수의 글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불현듯 독서욕구가 생긴 겁니다.
한때 리 교수의 저작은 의식화 서적이라고 불온시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다시 손에 잡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임헌영 선생과의 대담집인 <대화>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산문선인 <희망>과 자전적 에세이 <역정>을 읽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리 교수의 저작을 역순으로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던 겁니다.
일종의 새로운 방식의 독서 스타일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숨어서 읽어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불온서적을 본다고 감시당할 것 같은 느낌도 살짝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리 교수의 저작을 30년이 지난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환시대의 논리>도 다시 읽었습니다.
역시 불온한(?) 의식을 심어주더군요.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서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허위로 진실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리 교수의 저작은 상식화 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리 교수의 역설이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허위로 진실을 가리려는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의 우민화라는 쌍팔년도의 리더십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린 청년이 온전히 놀랍고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30여 년 전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의 존경대상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말인가요.
30 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되니까요.
솔직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는 느낌입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최근작으로 <청춘의 독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유 대표는 이 책에서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인생의 교과서라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관료화한 정당과 정부 안에서 국회의원,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비판적 지성을 상실했던 적은 없었느냐.
성찰을 게을리 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느냐.
그리고 대답합니다.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
유 대표 뿐 만이 아닐 겁니다.
적어도 DJ, 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사람은 리 교수의 후배나 제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설사 직접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잉태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겁니다.
1주기 추모모임에서 말했다는 김선주 한겨레 신문 전 논설주간의 회고가 눈에 띄더군요.
생전 리 교수는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집회나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DJ,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군요.
당시 모임이 끝나면 대략 밤 9시나 10시였다고 합니다.
모임에는 그를 은사로 여기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았답니다.
그들은 모임이 끝나면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서둘러 돌아갔다고 합니다.
장관이고 국회의원이니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리 교수는 홀로 지팡이를 짚고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갔답니다.
그것도 몸이 불편해 절뚝절뚝 거리면서 말입니다.
김 전 주간은 그 뒷모습에서 리 교수의 자존심을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리 교수는 평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곳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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