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한옥 ‘강릉 선교장’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한옥 ‘강릉 선교장’
  • 김아름 기자
  • 승인 2011.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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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한옥, 겉모습은 옛것 유지 실내는 최신식
다도, 한과·떡 만들기, 서예 등 다양한 전통 체험

방문을 열면 지붕 위에 걸린 하얀 구름이 눈에 와 닿고, 날렵한 처마 곡선을 훑고 지나는 바람이 귓전에 울린다. 밤이면 창호문에 은은한 달빛이 새어든다. 별빛이 가득 쏟아지는 마당에서 돌담을 따라 거니는 일은 한옥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강릉 선교장은 강원도에서만 아니라 국내 전통 한옥 중에서도 원형이 가장 잘 유지된 집이다. 안채, 동별당, 서별당, 열화당, 활래정 등 100여 칸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살림집 면모는 그대로다.

집 뒤로 수백 년은 족히 됐음직한 노송들이 우거진 숲을 이룬다. 긴 행랑 사이로 날아갈 듯 사뿐히 치켜 올린 고옥의 추녀가 집의 역사를 대변해 준다. 집 구석구석 예스러움이 묻어나고, 특별히 치장하지 않아도 집안 내력에서 풍겨나는 향기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귀한 손님 ‘족제비’

처음 선교장을 지은이는 조선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11세손 이내번이라고 한다. 그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게 된 데에는 기이한 일화가 전한다.

“충주에 살던 이내번은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안동 권씨와 강릉으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경포대 부근의 저동에 기반을 잡고 가산을 일으킨 이내번은 후대가 번성할 터전을 찾게 되었다.

하루는 집터를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족제비가 한 마리씩 나타나더니 조금 뒤에는 한 무리를 이루어 서북쪽으로 몰려갔다. 이를 신기하게 여겨 그 뒤를 쫓던 이내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창한 숲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숲 속의 경치가 아름다워 집터로 삼고 선교장을 지었다”는 것이다.

옛 이야기의 전승으로 족제비는 선교장의 귀한 손님이 되었다. 그래서 선교장의 주인들은 이따금씩 족제비를 위해 뒷산에다 먹이를 주고, 앞마당에 족제비가 나타날 때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현재 선교장을 지키는 이는 이내번의 9대손인 이강백 씨다. 그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가는 선교장을 새롭게 중흥시킨 장본인이다. 집안 곳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여행자들이 한옥체험을 하며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홍예헌, 초정, 초가 등 새로운 건물도 지었다.

한옥이라면 으레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겉모습은 옛 것을 유지한 채 실내에 부엌, 샤워실, 화장실을 모두 갖춰 내 집처럼 편안하도록 꾸몄다. 아무리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는 한옥이라도 사람들이 불편해 하면 한옥체험의 취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교장을 찾는 여행자들은 한옥의 정취를 느끼면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전통체험과 집 둘러보기

선교장에 머무는 동안에는 지루할 겨를이 없다. 다도, 한과 만들기, 떡 만들기, 서예 등등 다양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탓이다. 미리 예약을 하면 언제든지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한옥에서 할 수 있다. 체험이 아니라도 집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교장은 동별당과 안채가 하나의 주택을 이루며, 사랑채인 열화당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또 다른 집을 형성한다. 드나드는 문도 각기 다르다. 두 구역 사이는 서별당이 중재를 한다. 서별당은 서재로 활용하며 집안의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밖에서 보면 궁궐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긴 행랑이 늘어섰다. 안채는 마루가 낮고 마당이 좁은 반면에 사랑채인 열화당은 마루가 높고 마당이 널찍하다. 이는 추운 북쪽 지방의 폐쇄성과 따뜻한 남쪽 지방의 개방성이 복합된 독특한 아이템이라고 한다.

열화당과 활래정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열화당과 활래정이다. 열화당은 이내번의 손자인 오은거사 이후가 지었다. “세상과 더불어 나를 잊자. 어찌 다시 벼슬을 구할 것인가.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우수를 쓸어버리리라”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기뻐하고)”란 구절에서 이름을 땄다고 한다. 현재 열화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체험객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선교장 앞에는 네모난 연못과 활래정이란 소담스런 정자가 자리한다. 연못과 정자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을 제일 먼저 반기고 가장 나중에 배웅을 한다. 연못에 연꽃이 가득할 때 주인은 지기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눴을 것이다. 옛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이곳에서 한옥체험자들은 다도를 배우며 정자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오죽헌’

강릉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신사임당의 외가다. 신사임당이 먼저 이곳에서 태어났고, 율곡도 이곳에서 태어나 5세 때까지 성장했다. 검은 대(烏竹)가 많아서 ‘오죽헌’이라 불리는데,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기 때문에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안채에는 오늘날 ‘몽룡실’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광동팔경 중 으뜸

선교장에서 바다를 향해 가다보면 제일 먼저 경포호와 경포대를 만난다.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하늘, 호수, 바다, 술잔, 님의 눈동자에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명소다.

경포대에 올라 바라보는 경포호의 정취가 아름답고, 겨울철에 철새들의 날갯짓이 더해져 호수는 생동감이 넘친다. 호수 한 켠엔 ‘홍장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는 강릉 기생 홍장과 강원도 안렴사 박신과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경포대 옆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은 인류가 소리를 듣고 나누기 위해 노력한 과학 열정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7개국에서 만든 축음기 4000여 점 가운데 1400여 점의 축음기와 음반 15만 장, 그리고 8000여 점의 음악 관련 도서 자료들이 진열돼있다. 한눈에 100년 소리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디슨박물관보다도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 진품들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다.

초당 순두부마을

초당 순두부마을에 위치한 조선 중기의 여류작가 허난설헌이 태어난 생가도 좋은 여행지다.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평범한 양반 가옥이지만,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게 지켜진 가옥 구조가 이채롭다. 특히 집 뒤로 경포호까지 이어지는 솔숲은 허난설헌 생가를 찾게 만드는 요소다. 쭉 뻗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한낮에도 새벽을 맞는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아름답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여행코스>

당일여행 : 오죽헌→선교장→경포대→경포호→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허난설헌생가

1박2일

첫째날 : 오죽헌→경포대→경포호→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선교장

둘째날 : 경포해수욕장→허난설헌생가→커피박물관→하슬라아트월드→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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