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알아서 기는 사람들
"나의 연인 J에게"-알아서 기는 사람들
  • 김충교
  • 승인 2011.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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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참 어이가 없습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을 기다리던 기분이 무참해졌습니다.

요즘 저의 유일한 낙은 EBS에서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를 보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도올의 거침없는 입담과 지식에 늘 감탄하게 되거든요.

해서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꼭 챙겨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불분명한 이유를 대는 방송사측의 해명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도올은 외압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때는 마침 10.26 재보선 투표일과 맞물렸습니다.

도올은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섰습니다.

1인 시위에 나선 겁니다.

그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인류지혜의 고전조차 강의 못하게 하는 사회,

이 땅의 깨인 사람들아!

모두 투표장으로 가시오!

그는 분노했던 겁니다.

마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희한한 방침 하나를 내놓았지요.

정치성향이 알려진 유명인의 투표독려금지가 그것입니다.

이것이 주권행사를 독려해야하는 기관이 내놓은 방침입니다.

아무리 에둘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도올은 참 그답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방침을 정면으로 대놓고 어겼으니까요.

그가 EBS 강연프로그램 중단을 외압으로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번 EBS 방송 중단사태를 정권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강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 예로 그는 지난 해 서울 봉은사 법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명도가 있는 그는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일반인들이 아는 체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말이 ‘요즘 왜 그렇게 조용하냐’고 묻는다고 했습니다.

하긴 그는 과거 방송을 포함한 언론의 섭외 1순위 대상이었으니까요.

한데 이명박 정권 이후 그를 언론에서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를 찾는 언론이 없다는 겁니다.

이유를 밝히는 그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 그를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랍니다.

하지만 ‘알아서 기는 x들’이 많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그가 나와서 떠들면 골치 아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싹을 잘랐다는 거지요.

청중들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뒷맛이 씁쓸하더군요.

그랬으니 본인은 오죽했겠습니까.

사실 도올은 정치색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자로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에 거침없는 비판을 가합니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가 그를 썩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쓴 소리를 하고 아픈 곳을 건드리니까요.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신학대학까지 다닌 그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를 비판하는 그의 논리는 칼날 같습니다.

그는 한국 기독교의 팽창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확장만을 위해 정신 보다는 물질을 탐내는 일부대형교회들을 썩었다고 비난합니다.

그가 설파하는 성서의 해석을 놓고 논란도 있습니다.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만큼 공부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1인 시위 중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권을 비판하는데 관심이 없다.

고전에 담긴 진리를 얘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권은 고전의 진리가 두려운가 보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국민들이 투표하길 바라지 않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코미디이다.

사실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의 승패는 투표율이 가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고 높으면 야권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당인 한나라당은 내심 투표율이 낮기를 바랐겠지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때와는 달리 투표독려를 하지 않았거든요.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기를 기대했겠지요.

도올의 말처럼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선거 당일 오후 6시 이후 투표율의 급증이 이를 증명합니다.

퇴근 후 투표장으로 향한 샐러리맨들이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혹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이 낮은 투표율을 기대하니까 서울시민들이 ‘알아서 길’ 것이라고.

도올이 진행하던 EBS 강연 프로그램은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입니다.

흔히 우리는 중용을 이곳저곳에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올의 해석은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용은 중간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용은 극단적인 의견까지 포함한 다양함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도올은 모든 것을 감안하고 판단할 줄 아는 게 중용이라고 말합니다.

치자(治者)의 기본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말했을 겁니다.

나이가 한두 살 먹어가면서 고전이 좋아지더라구요.

예전엔 귀에 들어오지 않던 ‘공자 왈 맹자 왈’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실수투성이였던 지난 삶들을 돌아보다가 집어든 것이 고전입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시작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공자>,<맹자>,<사기>,<손자병법>,<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차분히 읽게 됐습니다.

도올의 <중용> 강연을 시청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도올 강의가 원위치 돼서 생활의 낙을 다시 찾았으면 합니다.

‘알아서 기기’는 정말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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