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애정남
"나의 연인 J에게"-애정남
  • 김충교
  • 승인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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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가끔 TV를 보다보면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뒤통수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정신이 번쩍 든다는 얘기입니다.

일요일 저녁이면 으레 보게 되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들놈이 빠뜨리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어서 할 수 없이 보아 왔습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더군요.

바로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콘서트>입니다.

이른바 ‘개콘’으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에는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풀어 말하면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입니다.

처음엔 그저 웃음과 재미를 주기 위한 그렇고 그런 코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개그맨 최효종의 말투와 표정이 눈길을 끌더군요.

익살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속에는 위트가 숨어 있습니다.

골치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상의 문제들을 수면위로 끌어 올립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헤집어 말하기에는 곤란한 애매한 일들을 올려놓고 까발리는 겁니다.

현실의 위선에 대한 경쾌한 야유가 담겨 있기도 하구요.

사실 우리의 일상에는 드러내놓고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 애매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자’고 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 말입니다.

해서 그저 지나치거나 자기 스타일대로 대응하고 말게 됩니다.

그러면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게 됩니다.

가령 지하철을 타고 앉아 있는데 할머니와 임산부가 앞에 서 있습니다.

누구에게 양보해야 할까요.

물론 무시하고 딴전을 피우며 모른 체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누가 앉든지 상관하지 않고 일어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 본인 생각에 누가 앉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 달리 결과가 어긋나 버리면 낭패입니다.

그냥 앉아 있을 걸 하고 후회하게 되거든요.

<애정남>은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합니다.

무조건 할머니에게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임신 5개월 이상으로 보이면 임산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렇게 글로 말하면 별소리가 아닌 것으로 들릴 겁니다.

하지만 개그맨의 말투와 표정이 섞이면 웃음이 터지면서도 동의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표현에 이견이 많습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 대포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있거든요.

‘아줌마’ 쪽에서 들으면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줌마의 힘’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삶의 근간이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보기엔 조금 막 간다 싶지만 그런 아줌마들의 근성이 경제발전을 잉태했다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다 맞는 얘기 같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아가씨 같은 아줌마들인 ‘미시족’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줌마로 불러야 할지 아가씨로 불러야 할지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애정남>은 이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지금 순간부터 ‘아줌마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앞으로는 모두 ‘여사님’으로 불러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조건이 붙습니다.

새치기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예외라는 겁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줌마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거지요.

말 그대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정남>을 보다가 웃긴 하지만 세상에는 참 애매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SLS그룹의 이국철 회장이 연일 기득권 세력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SLS그룹의 회생을 위해 정관계는 물론 검찰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겁니다.

서민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단위의 돈을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받긴 받았는데 그런 뜻인 줄 몰랐다고 발뺌하기도 하구요.

또 차용증을 써주고 빌렸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쉽게 말하면 설사 받았다 할지라도 대가성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액의 상품권과 돈도 받고 법인카드도 자기 것처럼 썼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대가성의 문제, 참 애매합니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뭔가 있었겠지’ 하고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막 퍼주지는 않았을 것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존폐의 위기에 있는 그룹회장이 자선사업을 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또 상대들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아니구요.

다들 잘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애매한’ 것이 아니라 ‘뻔한’ 일이지요.

최근에는 새삼 ‘아방궁’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먹고 환생한 것도 아닐 텐데 웬 ‘아방궁’일까요.

그것도 중국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원래 ‘아방궁’이라는 표현은 지난 2008년에 유행어처럼 번졌습니다.

불을 지핀 사람은 현재 한나라당 대표인 홍준표 의원이었습니다.

당시 홍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아방궁’이라 했습니다.

이젠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건립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사저부지를 아들 시형씨의 이름으로 매입했습니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청와대는 시형씨 명의로 한 뒤 대통령 명의로 바꿀 계획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사저건립이야 어차피 본인 부담이니 의혹과 논란이 있더라도 그렇다 치자구요.

문제는 국가에서 부담하는 경호시설부지입니다.

그것은 국민의 세금이거든요.

내곡동 사저에 들어설 경호시설 부지매입비는 42억 8000만원이라고 합니다.

봉하마을 경호시설 부지 매입비는 2억 5900만원 이었답니다.

무려 16배 차이가 납니다.

야권이 ‘울트라 아방궁’이라고 힐난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여기서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어디까지를 ‘아방궁’으로 볼 것인지가 참 애매하거든요.

진시황을 불러내 ‘아방궁’의 정의와 범위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어디 이 애매한 문제를 명쾌하게 정의해 줄 수 있는 사람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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