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디 엔드 오브 어거스트
"나의 연인 J에게" - 디 엔드 오브 어거스트
  • 김충교
  • 승인 2011.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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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지독한 여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우천염천(雨天炎天) 이었습니다.

중부지방은 연이은 폭우로 해를 본 날이 거의 없다 하더군요.

반면 이곳 변방은 연일 찌는 무더위가 계속됐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폭염에 혀를 내민 강아지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새삼 지구 온난화 운운하는 것도 귀찮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저 하루해가 빨리 지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면 그만 노래집니다.

언제나 하늘은 운무 속에 똬리를 튼 태양을 머금고 있었으니까요.

상쾌한 아침은 아주 잠시잠깐입니다.

물속에 발을 담갔던 휴식의 추억도 별무소용입니다.

그래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지요,

더위도 한풀 꺾여가고 있습니다.

벌써 가고 있는 여름이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지독했던 만큼 여운이 많이 남는 것이겠지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항상 여름의 끝 무렵에는 야니(Yanni)의 음악을 듣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겁니다.

이맘 때 쯤 반복해서 듣는 곡이 있습니다.

<디 엔드 오브 어거스트(The End of August)>.

운전을 할 때는 재생반복해서 들을 정도이니까요.

여름을 보내는 마음을 어쩌면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고 주관적인 해석이긴 합니다.

여름은 사람들마다에게 다양한 여운을 두고 떠나갑니다.

누군가는 즐거웠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겨웠을 겁니다.

아마도 즐거움과 지겨움이 상존했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휴가가 가져다준 나른함과 피곤함이 늘 상념으로 남기도 할 거구요.

하긴 여름자체가 조금은 몽롱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게 하지 않거든요.

저는 이 곡을 주로 CD로 듣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DVD로도 감상을 합니다.

보는 즐거움이 더해지거든요.

제겐 지난 1993년 야니의 그리스 아크로 폴리스 공연 실황 DVD가 있습니다.

이 공연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연주된 것이 <디 엔드 오브 어거스트>입니다.

야니의 건반과 카렌 브릭스(Karen Briggs)의 바이올린 듀엣.

저는 정말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카렌 브릭스가 연주 시 입었던 빨간 원피스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이 공연은 65개국 5억 여 명이 관람했다고 하더군요.

공연실황앨범 <Live at The Acropolis>는 750만장이 팔렸구요.

야니는 ‘뉴에이지 음악의 베토벤’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건반의 달인’이지요.

그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웅장하면서도 섬세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주류 서구 음악에 안주하는 대신에 동양의 정서를 녹여낸 ‘뉴 에이지’ 뮤지션이니까요.

그는 유럽의 동양이라는 그리스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 한국인과 비슷하다더군요.

인정 많고 놀기 좋아하고(?) 낙천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낙천적인 것은 우리와 닮지 않은 부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치이고 쫓기며 살고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식도 없습니다.

어쩌다 노래방에 간다 해도 한물 간 흘러간 옛 노래로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야니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됐습니다.

벌써 이십여 년이 다 돼가니까요.

소설을 쓰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트렌드에 아주 민감한 타입이었습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노총각들을 모아놓고 연애강의를 했습니다.

뻥을 섞어서 다소 과장되게 자신의 연애담을 늘어놓았습니다.

대개 그런 얘기가 그렇듯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매너고 꽃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야니 CD 한 장이면 대부분 뻑 간다.

당시 저는 야니가 누구인 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작업을 걸 일이 생길 것에 대비해 이름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 후 어쩌다 우연히 야니의 연주곡을 듣고 제가 그만 뻑 가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야니의 팬이 되었습니다.

야니를 잘 모르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야니의 연주곡을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산토리니(Santorini)>는 지금도 유명한 스포츠 음료 CF의 배경음악이었지요.

다른 많은 연주곡들도 각종 드라마에서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선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야니를 듣게 됩니다.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원 맨스 드림(One Man's Dream)>이나 <위딘 어트랙션(Within Attraction)>이 대표적이지요.

<리플랙션스 오브 패션(Reflections of Passion)>이나 <키즈 투 이메지내이션(Keys to Imagination)>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웹트 어웨이(Swept Away)>는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리의 발차기가 들릴 듯이 경쾌하거든요.

이외에도 알게 모르게 접하게 되는 야니의 연주곡은 부지기수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볼륨을 높여놓고 야니의 연주를 듣습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휴일 오전 10시쯤으로 반드시 집안 청소를 깔끔하게 마친 이후일 것.

그래야 될 것 같아서일 뿐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야니의 음악관은 아주 심플합니다.

그는 모든 예술의 본질을 ‘속박에서의 해방’이라고 단언합니다.

틀은 갖되 그에 속박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감정은 가지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야니가 오는 가을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제겐 그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공연장소는 역시 서울이라 망설여지는군요.

당장은 <디 엔드 오브 어거스트>를 들으며 여름의 뒤끝이나 털어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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