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전쟁 같은 사랑
"나의 연인 J에게" - 전쟁 같은 사랑
  • 김충교
  • 승인 2011.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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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 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도 TV를 보다가 말입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마 아실 겁니다.

가수 임재범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빠져들게 하는 매력에 카리스마까지 느껴졌습니다.

과연 임재범이다.

감탄했습니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 나와 처음 부른 노래의 곡명은 <너를 위해>라고 합니다.

저는 곡명 보다는 ‘전쟁 같은 사랑’이라는 노랫말이 더 와 닿습니다.

당신을 떠올리게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에서 였으니까요.

임재범이 풍기는 흡인력에 TV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래와 동시에 가사 자막이 뜨더군요.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이라는 가사를 듣고 읽는 순간 추억했습니다.

당신과의 전쟁을.

셀 수 없이 많았던 치열한 전투를 회상했습니다.

실제로 총알이 빗발치고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의 전투는 아니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지요.

물론 빨간 약이나 밴드를 붙여야 하는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하는 외상은 더더욱 아니었구요.

해서 치료를 위해 병원신세를 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지요.

고통은 외상 보다 내상이 심할 수 있거든요.

총알에 맞은 것처럼 묵직한 아픔에 멍하기도 했습니다.

구멍이 뚫린 가슴을 어쩌지 못해 헤매이며 서성인 것이 과연 몇 번 이었던가요.

술에 취해 담벼락을 붙잡고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여기가 끝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연인들에게 끝은 이별입니다.

이별은 곧 상실이지요.

잃는다는 것은 형언하기 힘든 아픔입니다.

상실이 가져다줄 아픔을 두려워하면서도 저는 항상 전투개시의 빌미를 주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폼만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성실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에 몸을 맡겼지요.

하는 일을 핑계로 술집을 전전하면서 흥청대기도 했습니다.

친구나 선후배들과 어울리느라 당신과의 선약을 깨기 일쑤였구요.

당신이 그 약속을 위해 포기한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참았던 당신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전투가 시작 되면 당신은 무섭게 변하더군요.

타인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비역 육군 병장이 알고 있는 전술과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더군요.

백기투항.

이어지는 읍소.

‘두 번 다시 그러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 말만 두 번이 아니라 스무 번도 더 했을 겁니다.

용서와 화해, 휴전을 거듭했지요.

‘많은 잘못’과 ‘잦은 이별’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평화로운 밀월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담보가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젠 압니다.

우리들이 벌인 전투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사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신이 없었거든요.

당신은 그걸 보았던 겁니다.

맞장 뜰 생각 보다는 냉소하는 모습을.

분노하면서도 회피하는 비겁함을.

그렇습니다.

삶은 전투였습니다.

냉소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당신에게처럼 백기를 들어버린 후 용서를 빌고 화해하는 과정은 허용되지 않더군요.

중상을 입고 나뒹굴어도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오는 위생병은 없습니다.

자기 살기도 바쁘거든요.

때문에 절뚝거리며 일어서 기껏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래봐야 팔만 아플 뿐입니다.

삶과의 전투는 사람을 왜소하게 만들더군요.

아니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입 다물게 됩니다.

그것이 한결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누군가는 신자유주의의 폭거를 말합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누가 매일 신자유주의를 생각하겠습니까.

아는 것은 다만 삶은 전투도 아니며 전쟁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쟁터에서 전투하듯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허무하거든요.

다들 그렇게 산다고 손을 놓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다 끝내더라도 아이들이 있거든요.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처럼 부상을 입고 신음하게 할 수는 없지요.

패잔병이 되어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게 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한번 고민을 해보자구요.

답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시청하면서 당신과의 전쟁을 떠올렸습니다.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세상에 전쟁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뿐이라고.

사랑만 전쟁처럼 하라고.

사랑 이외의 모든 것은 ‘바른 생각’과 ‘따뜻한 눈빛’이면 된다고.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 전쟁 때문 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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