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작지만 확실한 행복
"나의 연인 J에게" - 작지만 확실한 행복
  • 김충교
  • 승인 2011.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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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 기자→경향 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저녁식사가 끝나면 항상 설거지를 합니다.

요즘 저의 새로워진 일상입니다.

물론 설거지를 처음 해 보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가사노동의 분담이라는 차원에서 종종 설거지를 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저녁 설거지는 온전히 저의 몫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설거지가 저의 일이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아내가 새로 장만한 모던하고 심플한 고무장갑이 원인이었습니다.

손가락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얇은 새 고무장갑.

모양과 색상도 예쁜 고무장갑이 아내의 팔목을 그만 붉게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새 고무장갑의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겁니다.

손에 물이 닿아도 안 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설거지와의 본격적인 공존이 시작됐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평소 저는 청소를 한다거나 설거지 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거든요.

깔끔을 떤다기 보다는 뭔가 정돈된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남자가 집안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고전적인 사고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나서서 하는 편은 아닙니다.

자의반 타의반.

떠밀려서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한 설거지에 재미가 붙은 겁니다.

씻고 닦는 일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거든요.

우선 닦으면 깨끗해지는 변화가 신선합니다.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 보다는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근심이나 복잡한 일 따위는 잊게 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머리가 텅 비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거지를 천천히 합니다.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지요.

엉뚱한 행복감을 느낄 정도이니까요.

설거지를 하면서 저는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립니다.

그는 가볍고 경쾌한 문체로 수많은 매니어 독자층을 가진 일본 작가입니다.

그는 줄기차게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쫒아 허무에 도달하기 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조언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해서 일단 설거지를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느끼며 즐기고 있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통해 마음도 닦고 스트레스도 씻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당신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 여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전업주부들이 들으면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일 테니까요.

맞벌이라면 쌍욕을 쏟아 부을 수도 있을 겁니다.

돌아서면 쌓이는 집안 일거리에 눈코 뜰 새 없는 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확실한 행복 따위는 한 켠으로 제쳐둔 지 오래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 역시 설거지를 행복으로 여겨 본 적이 없습니다.

설거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거든요.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게 현실이지요.

군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물론 쌍팔년도 얘깁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겁니다.

저는 상급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고급장교들이 많았습니다.

고급장교들의 회식은 만찬이라고 합니다.

만찬이 있는 날이면 전문 취사병들을 보조하기 위해 일반 사병들이 지원을 나가게 됩니다.

음식을 나르거나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지요.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수발을 드는 것은 그렇다 치자구요.

만찬이 끝난 이후 설거지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기름기 가득한 접시를 닦는 일은 고역입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장교식당 선임하사의 검열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손가락을 댔을 때 조금이라도 미끈거리면 불벼락이 떨어집니다.

뽀드득 소리가 들려야 통과입니다.

접시를 닦다가 기합을 받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생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고급장교들의 식탁에 올라갈 접시이니까요.

웃음 지으며 추억할 일은 아니지만 그땐 군인이었고 지나간 일이니 유감은 없습니다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설거지를 기다리는 만찬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서민들의 쌈지돈을 끌어 모아 삼켜버리는 부실 저축은행들이 있습니다.

그들 뒤에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잔치가 있습니다.

설거지는 또 서민들의 몫이 되겠지요.

뒤치닥거리는 항상 선량한 사람들이 하게 되거든요.

대학생들의 아우성 소리도 들립니다.

비싼 등록금에 치인 그들이 거리로 나선 겁니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도 빚쟁이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고 수십억대의 재산을 가진 특별시 어느 시장님은 자신의 휘어진 등을 보여주고 있지요.

땅을 파헤치고 강을 갈아엎는 일은 점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자연의 속살을 발라먹는 그들의 왕성한 식욕이 무서울 뿐입니다.

오늘도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 있지요.

제겐 소중한 시간입니다.

거실에 켜놓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만찬 소식입니다.

불안해 집니다.

만찬이 끝나면 저 엄청난 설거지는 누가 해야 할까.

갑자기 설거지하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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