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품앗이의 추억
"나의 연인 J에게" - 품앗이의 추억
  • 김충교
  • 승인 2011.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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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 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지금 남녘의 들판은 온통 초록물결입니다.

모내기를 끝낸 평야가 지천이기 때문이지요.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저는 항상 아파트 베란다에 나갑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초여름 아침을 생으로 느낄 수 있거든요.

낮게 깔린 새벽 안개를 잔뜩 머금은 계단식 논.

그 뒤로 야트막한 야산이 서로 엇갈리 듯 지나갑니다.

상쾌한 공기를 들여 마십니다.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초여름 아침 공기는 신선도가 최상이니까요.

하긴 금새 도루묵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긴 합니다.

아직 담배와의 동거를 청산하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의 혜택을 받고 산다는 것은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변방에 산다는 의미는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개만 돌리면 탁 트인 풍광이 열립니다.

대도시에서처럼 마음먹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요즘 아침 출근길은 기분이 참 좋습니다.

매일 오가는 국도이지만 느낌이 확 다르거든요.

푸르름의 연속입니다.

길이 막혀도 짜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잠시나마 운전대에서 손을 내려놓고 차창 밖을 내다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푸르른 경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단지역이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모습의 공장들이 즐비합니다.

대형화물차들이 내달리기도 합니다.

그리 특별한 경치는 아닙니다.

대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일 테니까요.

모내기를 마친 논에 농부가 허리를 굽혀 물길을 내고 있습니다.

항상 혼자입니다.

모내기가 한창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들판은 고독해 보였습니다.

일거리가 많은데도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하긴 이앙기로 다 끝내버리니 사람 손이 아쉬울 리 없지요.

일손 구하기도 어렵다더군요,

일당을 높게 쳐줘도 모내기처럼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 보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모내기는 축제였거든요.

새벽부터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내기 하는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덩달아 어린 아이들은 신이 났지요.

아이들에게 모내기 철은 말 그대로 잔치입니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연일 먹을 게 넘쳐나니까요.

점심 저녁은 물론 새참까지 나옵니다.

힘든 노동이기 때문에 먹는 게 든든해야 하거든요.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들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새참까지 얻어 먹습니다.

덤으로 그 귀한 사이다를 맛보는 행운을 쥐기도 합니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장난기에 아이들이 골탕을 먹는 것이죠.

짖궂은 어른들은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에 슬쩍 당원을 탑니다.

당원은 단맛을 내는 알약 같은 것입니다.

설탕 보다 훨씬 셉니다.

어른들은 달착지근한 막걸리를 아이들에게 권합니다.

달고 맛있다는 꾐에 넘어가 한 잔 마시게 되면 홍콩구경을 하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의 ‘괜찮다’는 말에 받아 마셨거든요.

‘쭉 마셔’라는 말에 원 샷을 한 겁니다.

달고 쌉쌀한 맛이 정말 괜찮더라구요.

다음은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막걸리 사발은 요즘으로 치면 양푼이거든요.

그걸 한 번에 들이켰으니 오죽 했을까요.

이튿날 전해들은 얘기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비틀거리며 논둑길을 걸어 다니다가 논바닥에 엎어졌다는 겁니다.

어지러우니까 집으로 돌아가려 했겠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박장대소를 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흐느적거리고 있습니다.

깔깔대며 웃어대는 어른들.

눈에 선합니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며 모를 심는 노동의 고통을 잠시 잊었을 겁니다.

논바닥에 들어 누운 아들을 아버지가 끌어냈다 하더군요.

집까지 업어서 데리고 간 아버지.

그때 정신을 잃은 어린 아들을 업고 가시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음 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황당한 경험이지만 그리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이런 추억을 갖게 된 것은 모두 ‘품앗이’ 덕분입니다.

그땐 이웃 간에 서로 돕는 ‘품앗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네 일 내 일을 가리지 않고 힘든 일을 나누어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게 ‘품앗이’입니다.

대가는 바라지도 않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소통이 있을 뿐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를 따지는 오늘 같은 현실에서는 별나라 얘기지요.

요즘 언론을 통해 상생이나 연대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얘기는 외울 정도구요.

그런데 제대로 된 상생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정당과 사회단체 간의 연대 얘기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보수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나설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진보는 뜻이 비슷하면 함께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아마도 선거 때문이겠지요.

헤쳐 모이자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입니다.

이익만 따지기 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보듬는 ‘품앗이’가 그리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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