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 장군과 함께 온 송오마지가 한마디 했다.
“쇤네는 옥문기의 말만 믿었습니다.”
“옥문기는 누구의 지령을 받았다고 하더냐?”
“무계정사의 집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뭐야? 무계정사? 그럼 안평대군 사저의 집사가 지령했다는 말이냐?”
김종서는 물론 홍득희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집사 이름이 무엇이라더냐?”
김종서가 다그쳤다.
“상충 나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상충?”
김종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들! 그런 거짓말을 내가 믿을 줄 아느냐? 안평대군이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한단 말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김종서는 황해도 평산에서 생포한 암살패 두 명을 한성 형조로 압송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안평대군이 암살 지령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김종서가 말했다.
“직접 암살 지령을 내린 사람은 안평대군이 아니고 집사인 상충이라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상충이 누구인지 캐보아야 할 것입니다.”
홍득희의 말에 백규일이 대답했다.
“제가 김승규 소윤 나으리와 의논해서 상충의 정체를 알아보겠습니다.”
김승규는 김종서의 장남이었다.
“그게 좋겠군.”
김종서는 일단 암살 지령의 진위는 한성에 가서 밝히기로 하고 평산을 떠났다.
김종서가 벽제에 있다는 소문 때문에 잠시 음모를 멈춘 모든 세력들은 세자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대전에 참석했다. 물론 김종서는 참석하지 못했다. 국상 중에 세종 임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세자는 뒷날의 문종이다.
김종서가 한성에 도착한 것은 세종 임금이 승하한지 17일 만인 2월 24일이었다.
서울에 도착하자 김종서는 서대문으로 들어서기 전 문 앞에 있는 집에 들렀다. 부인 윤 씨가 오래 동안 병을 앓다가 작년에 돌아갔기 때문에 집에는 큰 며느리와 노비들만 지키고 있었다. 김종서는 붉은색 관복을 벗고 흰 관복과 백색 사모관대를 착용했다.
김종서는 영의정 하연과 함께 빈전이 차려진 여덟 번째 왕자 영응대군 사저로 갔다. 그곳에는 양녕대군을 비롯한 종친 어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안평대군과 수양대군도 나란히 시립하고 있었다.
김종서는 세종 임금의 빈전에서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전하, 전하가 주신 이 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이 나라의 사직을 보호할 것입니다.”
김종서는 어깨에 메고 있는 활을 매만지면서 통곡했다.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은 뒤에 서서 심기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김종서의 통곡이 대호의 포효처럼 들렸다.
그날 밤, 서대문 밖 김종서의 사저에는 홍득희, 천시관, 백규일 등이 모였다. 그 자리에 김승규가 들어왔다.
“아버님, 자객을 보낸 사람은 안평대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승규가 뜻밖의 말을 했다.
“안평대군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혹시 수양대군측?”
홍득희가 말을 받았다.
“옥문기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은 안평대군 집 집사 상충이라고 했는데, 상충은 원래 한명회의 동서 집에 있던 노비였다고 합니다.”
“한명회의 동서라고?”
한명회가 수양대군의 일등 책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명회가 상충을 안평대군 사저에 위장 투입했다는 증거를 여러 번 잡은 일이 있습니다.”
김승규의 설명에 모두 혀를 찼다.
“상충은 옥문기를 따라간 어설픈 암살패 두 명을 일부러 잡히게 하여 안평대군의 짓이라고 알리려 한 것 같습니다.”
“어쩐지 두 놈이 어설프더라니까.”
홍득희가 쓴 웃음을 지었다.
“한명회가 잔꾀를 부린 것이구먼. 공연히 안평대군을 의심했나?”
김종서가 이어서 말했다.
“모두 그런 작은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사직을 바로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 고비가 지금이라고 생각하고 정신들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