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학살 은폐 하려는 일제 세력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한국증권_조나단 기자] 박열(朴烈·본명 박준식·1902.3.12.~1974.1.17)은 한국의 아나키스트, 사회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간토대지진 직후 박열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된 후 1945년까지 22년간 투옥된다 출소 후 일본에서 결성된 한국인 우익단체 재일본거류민단의 초대단장을 지냈다.
그의 전기를 담아낸 창작뮤지컬<박열>이 공연제작사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의 제작으로 두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뮤지컬 <박열>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과 비밀결사단체 불령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국적은 다르지만 박열과 뜻을 함께하는 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본지는 창작뮤지컬 <박열>에 합류한 배우 현석준와 인터뷰를 나눌 통해 자유(自由)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 친일 논쟁이 재현되는 상황에서 공연되는 <박열>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반갑다. 지난 인터뷰 때 1년 후 나에게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했었는데, 말했던 거에 비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
현석준 안녕하세요. 맞습니다.(웃음) <판> 끝나고 <컴 프롬 어웨이>하고 또 바로 <광염 소나타>를 했는데 되게 널널했어요. 그때는 한 공연을 하다가 말미에 다른 작품 연습에 들어가서 또 공연을 하면서 조금 의도하고 쉬면서 휴식도 취하고 공연을 하는 형식으로 갔었는데 이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뭔가 좀 부족하더라고요. 공연에 대한 갈증이 더 생겼달까요. 일주일에 적어도 네 번 넘게 공연을 하고 싶은데 많아야 세 번 정도 무대에 오르니까 갈증이 생겼던 것 같아요. 조금 더 하고 싶고, 더 하려면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바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실패했죠. 계획에 오차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프로덕션 상황상 갑자기 몰리는 바람에 오차가 생겼습니다.
Q.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현석준 맞아요.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쉬고 있었다면 일을 하지 않아 후회했다고 말을 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지금 제가 집중해서 공연에 임하고 있고 집중해야 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음부턴 지금처럼 바쁘게 겹쳐서 일정을 잡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겹치기를 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0대 초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좀 더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 것 같은데 요즘엔 진짜 몸이 힘들더라고요. 정말 아침에 눈을 뜰 때 약간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온몸이 막 저리고 막 아프고 그런데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웃음)
Q. 그래도 지금 같은 시간이 있기에 어떻게 보면 더 성장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석준 감사하게도 지금 이런 시간이 앞으로의 제가 작업을 하고 배역을 맡는 부분들에 있어서 더 진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해요.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걱정도 들고요. 그런데 누군가는 지금의 저를 여러 작품을 하니까 한 작품에 진득하게 진하게 물들지 않은 것 같다고 오해를 하실까 봐 두렵고 무섭기는 한데, 저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에 다 쏟아붓고 있고, 지금의 저는 현석준이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거든요. <박열>에선 박열이 되었고, <스파이>에선 제이로 <이터니티>에선 블루닷으로 몰입해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있어요. 무대나 연기적인 부분에선 놓치는 부분이 없게 하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준비했고 공연 중이라고 자신합니다.
Q.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시간이길 바란다.
현석준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안 그런 분들도 있으실 거잖아요. 그런데 진짜로 저는 어떤 작품이나 배역의 완성도로 봤을 때 모든 작품에 똑같이 집중을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고 저는 그걸 입증해야 되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 짊어지고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그럼 이번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현석준 <컴프롬어웨이> 리허설이 있는 날에 김수로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급하게 만나자고요. 그런데 제가 이제 극장에 들어가야 돼서 안된다고 했는데 그럼 끝나고 몇 시에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끝내고 이제 대표님 집으로 가게 됐는데 지역을 잘못 알고 다른 지역에 있는 곳으로 가버린 거죠. 그래서 1시간 반을 늦었어요. 그래서 이제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원래는 다른 작품을 제안을 해주셨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제가 너무 바빴던 것 같아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지나갔는데 마지막에 내리시면서 "그럼 너 나랑 <박열> 하는 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아, 예."말을 했었는데 그렇게 이번 작품을 참여하게 됐습니다. 시기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Q. 초연은 봤었을까.
현석준 아뇨. 그때가 코로나가 엄청 심할 때라서 저도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공연 보는 것도 조심스러울 때다 보니까 그때 올라갔던 작품들을 다 못 봤어요.
Q. 많은 배우들이 초연에서 넘어왔다 보니 새로 참여하는 배우들의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았다. 어떤가. 연습 때 기억이 나나.
현석준 첫 연습 전에 받은 대본이랑 악보를 그냥 싹 다 외워서 갔었어요. 왜냐하면 시기적으로 저도 겹쳐있는 작품들이 있다 보니까 그 작업들에 폐가 되기 싫기도 하고 진심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캐스팅은 조금 우스운 이야기처럼 가볍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이번 작품에 대해서 가벼운 생각으로 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다 외워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연습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최선이겠다 싶어서 다 외워서 갔었죠. 첫 연습부터 첫 공연까지 저 스스로 '그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고 그만큼 무게감이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Q. '독립운동'이라는 게 허투루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현석준 우리의 피 속에 있는 것 같거든요. 그 뜨거움이 DNA 속에 있지 않나 싶어요.
Q. 연습할 때 어려웠던 건 없었나.
현석준 <박열>이란 영화를 혹시 보셨을까요?. 이제훈 배우님이 날 것의 무언가를 계속 분출하고 있거든요. 아나키즘을 외쳤던 박열 선생님이라면 정말로 어디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로움 그 자체였을 것 같은데 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걸 제 안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행여나 무언가를 따라 하게 될까, 고민도 많았었고 덜어내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제 연습 말미에 다른 박열들을 봤는데 다들 표현하는 눈빛들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다 죽어도 그 눈빛만큼은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겠다.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고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Q. 캐릭터의 서사를 어떻게 채워나갔을까. 스터디를 한 게 있을까.
현석준 논문 준비하는 것처럼 자료들을 다 찾아서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정말 나중에는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더라고요. 아나키스트이기 때문에 자유를 외쳤던 건지 독립의 마음이 있어서 자유를 외쳤던 건지 여쭤보고 싶었고 타협 아닌 타협의 선에서 내가 자유를 찾기 위해서 나라를 먼저 찾는 게 우선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체력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은 없나.
현석준 모르겠어요. 박열 선생님이 우리 극에서 무너지면서 끝이 났다면 타격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저는 절대 저희가 져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오히려 다 풀어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오히려 행복하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재연에 오면서 새로 들어온 마지막 넘버가 있는데 그 넘버가 참 많이 도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설정으로 저는 가고 있는데, 며칠 동안 단식 투쟁을 하고 있기도 하고 몸에 힘도 없어서 일어서지조차 못하고 있는데 그 솔로 넘버 안에서 "내 육체는 가둬도 정신만은 절대 가두지 못한다"라고 말을 내뱉거든요. 온전히 내 다리로 일어서서 온전히 걷게 되는 그 과정이 넘버 하나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그 넘버가 없었다면 혹시나 무너진 게 아닐까 싶고, 그렇게 작품이 끝난다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넘버가 있음으로써 정말 굳건하게 박열로서 존재하는 것 같아서 힘을 얻고 가는 것 같아요.
Q. 작품 속에서 바라본 가네코 후미코는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사람이었을까.
현석준 일단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면 동지로서 볼 수 있을까가 저는 제일 고민이었어요. 왜냐하면 연습 과정에서 연출님이 "석준아, 너는 너무 따뜻하고 너무 다정해"라는 코멘트를 많이 주셨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 동등한 동지여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동지로서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다행히 후미코들은 정말 그렇게 해주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답을 찾았던 것 같거든요. 내가 없었더라도, 박열이 없었더라도 저들은 자기 소리를 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보여줬거든요. 그들은 박열이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뭐랄까 더 빨리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말을 하고 눈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거지 언제라도, 제가 없더라도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던 거죠. 그래서 저에게 후미코란 인물은 옆에 같이 앉아있는 연인의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눈높이가 다르지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동지, 서로 마주 앉아 눈높이를 맞춰서 바라보고 있는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Q. 박열이 후미코에게 프러포즈를 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했나.
현석준 박열 선생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호기심도 있고 특별한 사람이란 걸 느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어묵집에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고 가기 싫어하는 설정으로 연기를 하고 있거든요. 나는 지금 돈을 버느냐고 바쁘고 아나키즘이 궁금하다고는 하는데 막상 만나보니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다들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그 시간에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어묵집으로 가게 됐는데 거기서 만난 그 사람은 나보다 한 걸음 더 내디뎠던 거죠. 본능적이라는 말이 우스울 수 있지만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그 순간에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알아봤을 것 같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Q. 뮤지컬 <박열>에서 박열이란 인물을 바라볼 때 뭔가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고는 했는데, 어떻게 지금 본인은 불타고 있는 것 같나.
현석준 저는 늘 불타고 있거든요. 조금 식혀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뭔가 과하다고 해야 될까요? 항상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조금 과하게 집중하고 나아가려는 느낌이 있어서 주변에 컴다운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잠깐 다른 작품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면 <스파이> 작품 연습을 할 때 런을 돌았는데 작가님이 같은 대학원 다니실 때 저랑 같이 학교에서 종종 뵙던 분이시거든요. 런을 하고 나서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카톡이 왔어요. "석준 배우, 학교에서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여전히 뜨거운 배우로 남아있어서 고마워요"라고 연락이 온 거죠. 제가 뭐라고 답을 했냐면 "지금은 몸이 힘들어서 그렇게 뜨겁게 못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지만 지금은 이 뜨거움 말고 제가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게 제 전부거든요.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아요. 무대에 올라갔을 때 누군가 봤을 때 쟤는 왜 이렇게 과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끔은 그럴 수가 없어서 고민이 되기도 하고, 제 또래에 나만큼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했을 때 저는 잘 떠오르지 않거든요. 전 에너지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그 뜨거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뜨거움으로 나아가기엔 조금 몸이 힘들어지고 있어서 배우로 오래 활동하고 싶은 만큼 앞으로 조금 더 안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배우가 되는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시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다고 안주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Q. 청춘이라는 이미지가 불쏘시개라면 이제 청춘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불쏘시개에서 램프로 혹은 더 큰 장작불로 옮겨서 오랫동안 불을 비추면 되지 않나 싶다.
현석준 갑자기 떠오른 건데 청춘은 다툼도 있고, 성공과 실패가 있잖아요. 그런 게 모여서 자양분이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저를 바라봤을 때 지금의 저는 다 지나간 것 같거든요. 아픈 것도 다 아파봤고, 상처도 많이 받았고 실패도 했었고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지 않고 더 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그렇게 바라본다면 작품 속 인물들도 그들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황과 시대 속에서.
현석준 다들 자기의 청춘, 자유를 외치고 있죠. 누가 시킨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닌, 쉽지 않거든요. 안타깝고 불쌍하기도 해요. 우리가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았더라면 자유를 외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Q. 일제강점기 때 이름을 남기지 않고 활동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박열>이란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박열이 22년이라는 시간, 어떻게 기다렸는지 궁금하다. 박열을 연기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고 어떻게 풀려고 했나.
현석준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했던 공연에서 작품 마지막 부분에 후미코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있거든요. 그날 종일반이었는데 밤공을 할 때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정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꺼이꺼이 우는데 그때 바로 류지가 들어와요. 그런데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진짜 억장이 다 무너져서 꺼이꺼이 울고 싶지만 그냥 의지를 갖고 두 눈 똑바로 뜨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서 류지를 마주했어요. 그 마음 하나로 버틴 게 아닐까요? 절대 너네는 나보다 아래가 아니라 너랑 나는 동등한 거야. 우리는 너네보다 부족하지 않아라는 생각 하나로 그 시간들을 기다렸던 게 아닐까. 그 외침 하나로 22년 2개월이란 시간을 버티고 기다렸던 게 아닐까요?
Q. 우린 정답을 알 수 없지만.
현석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안에 다 있달까요. 류지를 만났던 그 순간, 제가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힘들고 모든 걸 놓고 싶어질 때 여도, 다음을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계산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반응을 하게 되는 게 있거든요. 마음이 그렇게 요동치는 걸 보면서 내 안에 뜨거움이 있구나 싶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한테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우리 공연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는 건 행운이 아닐까 싶다.
현석준 잘 맞는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유독 재밌게 공연을 하고 있기도 해요. <더 헬멧>이란 작품이나 <판>을 할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시대상은 담은 이야기를 할 때 뭐랄까요 접신된다고 해야 될까요?
Q. 잘 맞는 장르가 있는 것 같다.
현석준 그런 것 같아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에 더 집중이 되는 것 같고 많은 감정들을 느끼는 것 같아서 재밌어요.
Q. 이번 작품을 하면서 후련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속에 있는 걸 다 풀어내지 않나.
현석준 맞습니다. 그런데 목이 못 버티겠어요. 진짜 낮 공 밤 공이 다 있는 날이면 무섭더라고요. 이게 소리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적도 있습니다.
Q.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챙겨 먹는 게 있을까.
현석준 먹는 건 신경을 많이 안 쓰는데 잠을 최대한 일정하게 잘 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확실히 잠자는 게 중요하다. 앞선 인터뷰에서도 잠의 중요성에 대해서 들었다.
현석준 맞아요. 그래서 진짜 연습하고 공연을 하고 집에 가면 쉬고 바로 자는 편입니다. 사실 대본을 더 보고 싶고 공연을 다 녹음을 하거든요. 녹음한 거 들으면서 내가 어땠지 하면서 들어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제 앞에 놓여있는 일정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일단은 다 내려두고 집에 가선 잠을 자려고 하고 있습니다. 못해도 6시간 정도 되도록이면 7시간 이상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그 1시간도 차이가 크지 않나.
현석준 맞습니다. 진짜 크더라고요. 6시간 자고 일어나면 조금 피곤한 게 남아있어요. 7시간 정도 자면 그래도 좀 많이 풀려서 최대한 잠을 많이 자려고 합니다.
Q. 기범 배우를 제외하고 박열 역에 석준 배우랑 유동 배우가 합류했는데 어떤가.
현석준 다 느끼시겠지만 정말 저희 셋이 다 다르거든요. 기범이 같은 경우에는 초연을 할 때 연락을 많이 했었어요. 저희가 워낙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기범이가 그때 자기 입으로 "내 인생 캐야"라고 했었거든요. 얼마나 잘하면 자기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나 싶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컸었는데 이번에 연습실에서 딱 봤는데 3년 만에 왔잖아요. 그래서 긴장이 된다는데 시작하니까 그 3년의 시간이 안 느껴질 정도로 너무 잘하더라고요. 저와는 다른 뜨거움이 있어서 보면서 좋은 거 많이 따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동이 형은 처음에 박열에 잘 어울릴까란 생각을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형의 본체가 워낙 릴랙스 되어있고 나른한 형이어서 어떨까 했는데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더라고요. 형이 연기하는 박열을 보니까 이 형이 박열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형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연습실에서 제일 좋았던 게 형이 무너지는 걸 처음 봤었거든요. 그래도 같이 몇 작품을 했는데 형이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 너무 솔직하게 무너져서 우는 모습을 보면서 형이 저런 면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셋이 같은 작품,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행복하다는 걸 진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인터뷰라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저희 멤버들이 진짜로 가족 같거든요.
Q. 같은 무대에 올라가지 않더라도 힘이 되나 보다.
현석준 정말요. 그런데 저는 다른 건 안 바라고 유동이 형이 캐비닛만 정리를 잘 해주면 참 좋겠는데, 박열들이 다 역할별로 캐비닛을 하나씩 쓰고 있거든요. 그런데 짐을 정말 안 빼더라고요? 지금은 가방 하나 넣을 수 없는 상태인데 방치를 하고 계세요. 물론 제 형이니까 양해를 해야죠.(웃음) 이거 써주세요.
Q. 이어서 후미코 역의 세 배우는 어떤가.
현석준 일단 지혜는 후미코 선생님을 연기함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친구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한 치의 흠도 보이지 않고 후미코 선생님이었다면 저랬을 것 같다는 게 딱 지혜가 연기하는 후미코인 것 같고 새힘이 같은 경우에는 정말 놀랐던 게 이 친구가 그렇데 다 내려놓고 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그전부터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을 같이 하면서 옆에서 봤는데 정말 너무 잘하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에서 런도는걸 보면서 새힘이한테 "새힘아, 나는 네가 이렇게 여배우로서 뭔가 조금 예쁘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정말 자유를 외치는 너의 거침없는 모습이 너무 멋있는 것 같아"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정말 너무 잘했고, 너무 멋있어서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었어요. 마지막으로 정화 누나 같은 경우에는 진짜 모르겠어요.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봤지만 어떤 느낌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가장 박열을 잘 봐준다고 해야 될까요? 가장 잘 봐주고 제일 힘을 주고 응원을 해주는 후미코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무대에서 새힘이랑 지혜랑은 또 다르게 정화 누나는 누나만의 힘을 줘서 박열에게 후미코로서 정말 든든한 동지 같아요. 그래서 더 뜨거워질 수 있는 후미코입니다.
Q. 몇 번을 봐야 될지 모르겠다. 일단 전 캐스트는 찍어야 될 것 같다.
현석준 정말 버릴 타선이 없습니다. 정말로 보는 맛이있는 캐스팅이라고 자신합니다.
Q. 이 작품이 다시 돌아온 이유가 있을까. 있다면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현석준 이 질문은 죄송하지만 이 시기가 아니어도 언제든 올라와야 할 작품이고 올라가야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것과 상황, 행동 등을 통해서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린 그걸 알았지만 잊고 살았다던가 몰랐을 수도 있어요. 그걸 일깨워 주는 작품이 우리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왜, 어떻게 다시 올라왔냐는 것보다는 언제든 올라올 필요가 있는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단 우리 작품 <박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씩 되돌아봐야 하는 시대극과 우리의 이야기들은 언제든 올라갈 수 있고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 작품은 지금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에 있어서 이름을 남긴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이름도 남겨주지 않은, 남기지도 못한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배우로서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열심히 일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한 건 없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Q. 현석준이란 배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다. 그런 석준 배우를 보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꿈꾸고 있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 한 걸음 앞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로서 후배 혹은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현석준 일단 집에 있다면, 집에서 나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집에서 벗어나야 뭐든지 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집에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대본을 보거나 학교를 다닐 때도, 지금처럼 배우를 할 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똑같은 게 집에 있으면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저는 워낙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니까 일단 하루의 시작을 헬스장 가서 운동으로 시작을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집에 있다기보다는 집에서 나와야지 뭘 하든 시작을 하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간사한 존재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일단 쉬고 싶고 눕고 싶거든요. 내가 하기 싫은 무언가를 찾아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뭔가 집중하는 게 더 어려워져요. 그래서 만약 내가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면 혹은 아직 내 꿈이 뭔지도 모르겠다면 일단 집에서 나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바쁘게 걸어가고 있고 저 사람들은 뭔데 저렇게 자기한테 빠져서 집중을 하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고 생각을 하다 보면 달라질 거예요. 저도 달라졌고, 분명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누군가 저한테 물어본다면 그걸 말해주고 싶네요.
Q.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됐던 적이 있다면?
현석준 가장 최근에는 <박열>을 하면서, 박열 선생님의 일생을 찾아보면서 큰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운동을 하면서 삶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깨닫게 됐거든요. 예전에는 정말 왜소했었어요. 입시를 할 때 입시 선생님이 "너는 피지컬 때문에 입시에 실패할 거야"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실 정도였고, 그때 당시 그게 저에게 큰 상처가 됐었거든요. 그 순간 제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줬는지 그때 옆에 있던 저희 반 모델 출신 형님이 저한테 "야, 끝나고 나랑 같이 헬스장 가자, 내가 너한테 운동 가르쳐 줄 테니까 너는 노래 가르쳐 줘"라고 할 정도였죠.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어요. 입시다 보니까 처음엔 항상 아침에 문을 열면 연습을 하고 수업받고 또 연습하면 밤에 끝나서 운동을 할 시간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형이 아침 7시에 헬스장에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시간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하면서 나갔는데 정말 제일 많더라고요. 오히려 10시에 가면 사람이 없어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지도 않아놓고 피지컬이 안 좋다고 뭐라 하는 선생님한테 미움만 키우고 있었다고 깨달았어요. 그래서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걸 처음 깨달았죠. 그때부터 아침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는데 정말 너무 하기 싫고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7시, 8시에 나가면 이미 운동을 다 하고 나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걸 보면서 계속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하루하루 운동을 해나가다 보니 근육이 만들어지고 피지컬이 좋아졌어요. 그런 것처럼 내 삶도, 내 인생도 나라는 사람이 더 커져야지 바뀌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제 팬분들이나 지인들이 뭔 말 할 때마다 '운동 이야기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떡해요. 저는 이미 운동을 통해서 너무 많은 걸 얻었고 바뀔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웃음)
Q. 확실히 오전 시간이 더 피크타임이다. 아침 출근 전 운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영장 같은 경우에 오전 타임이 자리를 구하기 제일 어렵다.
현석준 네, 맞아요.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수영장 이야기를 하니까 에피소드가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학교 다닐 때였었는데 제가 7시 타임 수업을 끊었었거든요. 그때 수영복을 처음 사서 갔었는데 6시 50분쯤 도착해서 수영복을 입었거든요. 안 입어보고 사서 그런지 너무 작더라고요. 그래서 첫 수업인데 못 듣겠다 했어요. 그래서 이제 돌아가려고 했는데 6시 타임 수업이 끝났나 봐요 누가 들어오면서 '수영복이 너무 커서 벗겨지네'라면서 들어오는데 송광일 형인 거예요. 광일이 형이 '너 왜 여깄어?'라고 해서 제가 '7시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수영복이 너무 작아서 가려고'라고 답하니까 자기 건 크다면서 바꿔 입어보자고 해서 바꿔 입었는데 둘 다 너무 딱 맞더라고요. 그래서 형이랑 바꿨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형이 정말 무서운 선배였었는데 이 형이 6시 타임 수영 수업을 들었다는 게 갑자기 너무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형은 활동도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이런 데 있었구나,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이런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노는 거 좋아하지만 막상 시간을 엄청 쪼개서 운동도 하고 연습도 하고 열심히 준비하는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아서 멋있었던, 지금도 멋있는 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웃음)
Q. 준비하는 자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현석준 맞아요. 베이스가 준비가 안되면 잡아도 금방 놓치지 않을까요?
Q. 맞다. 이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실수가 있을까.
현석준 이건 제가 정말 최근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있는데 최근에 정답을 알게 됐거든요. 뭐냐면 '불령사' 간판을 다는 장면이 있는데 두 번 정도 떨어졌었거든요. 왜 그러지? 하면서 공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그게 두 번만 떨어진 게 다행이었던 일이었죠. 용할 정도로 잘 못 붙였었어요.
Q. 어떻게 붙였길래 그런가.
현석준 이게 자석이 있어서 위아래 부분이 탁탁 걸려서 딱 붙어야 되는데 저는 맨날 탁하고 한쪽만 불이고 끝냈던 거였어요. 어쩐지 제가 붙이면 간판이 자꾸 앞으로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무대 감독님이 제가 자꾸 떨어트려서 간판이 깨지니까 따로 부르셨어요. 감독님이 연습을 따로 해야 되지 않을까라면 서 붙여보라고 해서 붙였더니 잘못 붙이고 있더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추가 연습을 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고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Q. 그래도 큰 사고는 없어서 다행이다.
현석준 그렇죠. 기자님이랑 처음 뵀을 때 제가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때 고 미숙할 때라서 그때 만약 이렇게 간판이 떨어졌더라면 대처도 못했을 거거든요. 그런데 떨어졌던 날 정말 대수롭지 않게 그 떨어진 간판을 주워서 다시 붙이기엔 애매해서 들고 가야지 생각하고 들어서 이어가다가 다시 붙여놓고, 그런데 대처를 잘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떨어진 간판을 거꾸로 들고 갔던 거예요. 관객분들이 엄청 웃어서 슬쩍 봤더니 붙이긴 제대로 붙였는데 거꾸로 붙여놨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떨어졌을 때엔 그것까지 빠르게 확인하고 들고 가서 붙였습니다.
Q. 확실히 작업을 꾸준하게 하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 그래도 여유 아닌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현석준 맞습니다. 못 버틸 사람이었다면 이미 관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제가 예전에 힘들었을 때도 버티고 버텨서 지금 이렇게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게 이걸 할 운명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 시기를 잘 버텨서 지나갔기 때문에 더 큰일이 생기더라도, 생기면 안 되겠지만 그냥 굳건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안 왔으면 좋겠지만요.
Q. 이 장면은 꼭 봐야 된다?
현석준 물론 다 봐야 합니다만 지금 두 장면이 딱 떠오르는데 하나는 후미코의 '나를 지킨다는 것'이랑 그다음에 '자유'라는 장면은 꼭 봤으면 좋겠어요. 이게 경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게 담겨있는 장면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꼭 두 장면은 놓치지 않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이어서 울림 있었던 대사나 가사가 있었을까.
현석준 '육체는 가둬도 정신만은 절대로 가둘 수 없다는 걸 보게 되리다' 앞서 조금 이야기했지만 이 말이 없었다면 제가 해소가 되지 않았을 거거든요. 무대에 내려가서도 뭔가 응어리가 남아있었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얻는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내려와도 남아있는 게 없어요. 박열이라는 사람이 22년 2개월 동안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그 긴 시간을 지냈는지 담겨있는 것 같아서 저에게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박열 선생님이 절대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후미코와 함께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았어요.
Q.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현석준 우리 작품은 어려운 게 없어요. 그냥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없던 시대에 자유를 외치는 게 아니라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거든요. 물론 우리 모두에게 흐르는 DNA, 한(恨)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거워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장담컨대 모든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사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자유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끝나기 전에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나에게 자유는?
현석준 지금 저에게 자유는 일단 스케줄상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Q. 그래서 더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다.
현석준 맞아요. 더욱더 큰 갈망이 생겼습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고, 나란 사람으로서 온전히 서있고 싶고 살고 싶어요. 지금은 전혀 그러지 못한 상황이기에 아쉽긴 한데, 그만큼 이 일들을 잘 끝마치면 주변을 더 둘러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조금 쉴 텀을 만들려고 합니다. 제가 여행을 시간이 날 때마다 가고는 있는데 유럽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유럽을 가볼 생각입니다. 가서 하고 싶은 거요? 일단 영국에 가서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게 제 목표인데 내년이 아니면 보기 더 힘들 것 같아서 일단 영국으로 가서 축구를 보는 게 제 내년 첫 목표고 이탈리아도 가보고 싶어요. 관광지가 아닌 남부 도시 같은데 가서 드라이브하거나 달려보고 싶은 게 꿈이라서 내년 이맘때쯤 시간이 맞으면 갔다 오거나 가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휴식도 취하고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충분히 회복하고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보겠다.
현석준 빨리 가보고 싶네요.(웃음)
뮤지컬 <박열>은 독립운동가 박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로, 지난 2021년 더블케이 드림프로젝트로 초연해 당시 관객평점 9.8점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뮤지컬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원인이 조선인에게 있다는 괴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박열을 구속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 등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서술된 이야기에 도쿄 재판소 검사국장이자 야망가 류지라는 가상의 인물이 더해져 입체감 있는 인물구조와 서사가 담겨있다.
이번 시즌에는 초연 멤버를 비롯해 새로운 캐스팅의 배우들이 합류했다. '박열' 역에 손유동, 현석준, 백기범이 '후미코' 역에는 이정화, 박새힘, 최지혜가 캐스팅됐다. 이어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 역은 문경초, 임별, 김준식, 김준호가 무대에 오른다.
한편,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의 창작뮤지컬 <박열>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드림3관에서 오는 9월 29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