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0] 홍득희와 해후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0] 홍득희와 해후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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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측근들을 잘 살펴야 한다. 두 분은 형제이지만 생각하는 바가 서로 정반대이기 때문에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극과 극은 한 곳으로 통할 수도 있다.”

형제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함길도 병영을 떠났다.

김종서는 군사 5백을 조석강에게 인솔하게 하여 공험진으로 갔다. 거기서 윤관 장군의 국경비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곳은 아직 여진군과 몽골군이 섞여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다노에 가서 홍 두령에게 우리가 가는 방향을 알리시오. 위급할 때는 후방에서 도와야 한다고 전하고 공험진으로 오시오.”

김종서는 사다노로 돌아가지 않고 김종서를 따르고 있는 송오마지에게 명령했다.
두만강을 건너 북쪽 7백리에 있다는 공험진으로 행군이 시작되었다. 여진족의 저항은 의외로 전혀 없었다.

김종서는 닷새  에 수빈강 상류에 도착했다. 수빈강은 백두산에서 동북쪽으로 120리를 흘러 공험진과 선춘령에 이른다. 강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김종서는 강가에 진을 치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곳에는 조선 백성들이 여진족 사이에 흩어져 간간히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 조선 백성을 찾아 사정을 알아보고 관아를 맡을 만한 사람을 찾으시오.”

김종서가 비장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곳을 조선 땅으로 관리할 만한 인물은 찾아내지 못했다.
이틀을 머문 뒤 김종서는 북쪽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하루만에 다시 수빈강에서 가장 강폭이 넓은 데에 도달했다.

“저쪽 왼쪽에 보이는 산이 공험진이라고 합니다. 예날에는 광주라고도 했답니다.”

조석강이 탐후대가 얻어온 내용을 보고했다.

“얼마 남지 않았군. 오늘 저녁은 저 산 밑에서 야영을 한다.”
공험진의 복호봉이라는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뜻밖에도 홍득희가 부하 50여 명을 거느리고 와 있었다. 허물어진 옛 성터인지, 풀 밭 여기저기에 기왓장과 돌기둥이 흩어져 있었다.

“아니, 어찌 이렇게 빨리 도착했느냐? 사다노에서 여기까지는 7백리는 족히 될 터인데.”
김종서는 홍득희를 보자 반갑기 그지없었다. 경성성에서 헤어진 지 달포도 되지 않았는데 꼭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식량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고 게다가 모두 산길에서 자란 기마 산적 아닙니까?”

홍득희도 반가움으로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며 웃었다. 대담무쌍한 산적 두목이지만 세월은 비껴갈 수 없는지 눈가에 주름이 조금 잡혔다. 
“여기는 옛날 경원 도호부 소속 어라손참 산성이었습니다. 고려 때 윤관 장군이 개척한 9성 중의 하나에 속하지요.”
“오다가 여진 군사는 만나지 않았나?”

김종서가 홍득희와 나란히 앉으면서 물었다. 홍득희는 붉은 머리띠 대신에 머리를 길게 땋고 남자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전혀 산적 두목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다가 몽골인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싸울 태세로 나왔지만 곧 서로를 알아보아 전투는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알아보다니?”

김종서가 의아해하자 홍득희가 설명했다.

“공험진 일대는 원래 고려 땅이었는데 원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는 한길보지(汗吉寶只)라는 몽골족 장군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태종 대왕 때 이곳을 조선으로 환속하고 여진족 맹가첩목아를 만호로 임명하고 다스려 왔습니다. 그러나 맹가첩목아가 부하에게 피살되고 이 땅은 다시 주인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몽골족 군사는 한길보지 장군의 손자로 남은 세력을 규합해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무리였습니다. 저와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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