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인 강매 개입 이호진 前회장...'골프장의 저주'가 또 발목
김치·와인 강매 개입 이호진 前회장...'골프장의 저주'가 또 발목
  • 조경호 기자
  • 승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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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호진 회장 일가 소유 업체 생산 총수 김치·와인 강매 제재한 공정위 정당
2011년 배임혐의 기소된 뒤 2012년 회장직 사임...10년 이상 경영공백에 후계구도 절실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한국증권_조경호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골프장의 저주'에 또 발목이 잡혔다. 대법원은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 일가 회사가 파는 김치와 와인을 강매에 관여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이 회장에 대한 제재가 정당하고 판단했다. 이 회장이 지배적 역할을 했다고 본 것.  원심은 이 전 회장이 계열사 간 거래에 개입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이 관여했다고 보고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6일 이호진 전 회장과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이 회장에 대한 시정명령을 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공정위는 2019년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휘슬링랑CC(티시스)’와 ‘메르뱅’에서 각각 김치와 와인을 부당 구매한 사실을 적발했다. 

티시스는 2014~2016년 계열사들에 김치를 10㎏당 19만원씩 총 95억원어치 판매했다. 메르뱅은 비슷한 기간 계열사에 와인 46억원어치를 강매했다.

공정위는 시정 명령과 21억 8000만원의 과징금 처분에 그치지 않고 이호진 전 회장과 19개 계열사를 전부 고발했다. 재벌총수 일가의 고질적인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와 사익편취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것이다.

당시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서에 따르면 이호진 전 회장과 그 배우자, 가족들은 본인들이 주식 지분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들을 동원해 가족회사이자 골프클럽인 휘슬링락CC가 위생 인증도 거치지 않은 무등록 시설에서 경기보조원 등 단순 노무인력 등에 의해 생산한 김치를 시중 김치보다 30-50% 가량 비싸게 구입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태광몰, 사내근로복지기금까지 동원해 사익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태광그룹의 조직적인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해 특수관계인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계열사를 지원할 목적으로 태광 소속 계열회사들이 전부 동원된 점, 장기간에 걸쳐 위반행위가 지속된 점, 사내근로복지기금 또는 복지재단까지 활용하는 등 그 수단도 상식적인 수준을 상회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태광 계열사에 대해서는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전 회장에 대해선 그가 김치와 와인 거래에 관여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시정명령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원심의 판단은 검찰과 동일했다. 2021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태광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 수사 결과, 이 회장이 해당 거래로 인한 재무상황 등을 보고 받거나 지시·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로 불기소처분했다. 경영기획실장만 불구속 기소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결정에 대해 공정위의 조사결과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명백한 ‘총수 봐주기’라고 지적했다. 계열사들이 상당액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사정 등을 고려한다면서 기소유예하고 경영기획실장만 기소한  ‘꼬리자르기’ 결정이라는 비판도 제기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계열사 전부 동원해 총수일가에게 최소 33억원의 이익을 안긴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가 이 전 회장 등이 모른 채 오로지 경영기획실장의 자발적인 범행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일감몰아주기의 결과 그 이익이 고스란히 총수일가에게 귀속됐다.  경영기획실장은 직접적인 이익을 볼 수 없다. 이 점만 봐도 범죄행위가 이호진 전 회장의 지시와 관여 하에 이루어졌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검찰의 이번 무혐의 결정은 명백한 ‘총수 봐주기’다. 관련 실무자인 경영기획실장만 기소하고 계열사 등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꼬리자르기’ 결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참여연대가 주장했던 판단과 일치하고 있다. 대법원은 계열사뿐 아니라 이 전 회장에 대한 공정위 처분도 정당하다며 원심판결 일부를 파기했다.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이 김치와 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은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김치·와인 거래가 티시스에 안정적 이익을 제공해 이 전 회장의 지배력 강화, 변칙적 부의 이전, 이 전 회장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에 기여했으므로 티시스의 이익 및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경영기획실이 이 전 회장 모르게 김치·와인 거래를 할 동기가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태광그룹은 이번 일감 몰아주기 사건 외에도 과거부터 골프장과 연관된 여러 의혹을 받았다. 오죽하면 '골프장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2019년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 태광그룹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 등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4300여명에 달하는 전·현직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골프 접대를 주장하며 이호진 전 회장을 업무상 배임·뇌물공여·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다. 윌슬링락은 2020년 매각 전까지 이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티시스가 운영했다. 

앞서 2011년 공정위는 휘슬링 락 공사비 2500억원 중 792억원을 계열사 9곳에서 끌어 모은 사실을 적발한다. 부당지원  행위 결과로 44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개장 이후에도 영업이 부진하자 계열사가 업무추진비로 상품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손실 보존을 한다. 이 일로 상품권을 구매한 계열사와 휘슬랑락이 경찰 수사를 받는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1400억원 규모의 회삿돈을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2년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간암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와 병보석을 허가 받는다.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황제보석 논란이 불거진다. 2018년 재수감된다. 2021년 10월 11일 만기출소한다. 취업제한(5년)을 받고 있다. 

티알엔 2021년 기준 특수관계자 거래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티알엔 2021년 기준 특수관계자 거래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는 당분간 쉽지 않게 됐다. 1962년생인 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지난만큼, 후계 구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에게는 슬하에 장남 이현준과 장녀 이현나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현준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티알엔을 통해 경영을 하나 둘씩 장악해 내가고 있다. 이현준은 티알엔의 1대주주인 이호진 전 회장(51.83%)에 이어 2대주주(지분33.36%)이다. 티알앤은 티캐스트(100%), 대한화섬(39.63%)를 보유하고 있다. 티알엔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한국도서보급의 지분도 49%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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