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15] 남의 첩을 빼앗고
[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15] 남의 첩을 빼앗고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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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의 엽색 행각 중 가장 문제가 된 사건은 어리 납치 사건이었다. 어리(於里)는 본디 기생이었는데 중추 벼슬을 지낸 무관 출신 곽충(郭琁)의 애첩이 되어있었다.

어느 햇볕 좋은 가을날 양녕은 이오방과 구중수의 안내를 받아 어리가 첩으로 있는 곽충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미리 말 한 필을 더 준비해 가지고 갔다.

세자가 동네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아 동네 사람들이 곽충의 집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어리는 마침 그 집에 없었다. 병이 나서 곽충의 양 아들인 판관 이승(李昇)의 집에 가 있었다.

“이승의 집으로 가자.”

양녕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일행을 거느리고 이승의 집으로 갔다. 놀란 이승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부복했다.

“마마께서 기별도 없이 이 누추한 곳에 어인 행차십니까?”

“여기 어리라는 애가 머물고 있지 않느냐? 내가 알고 왔으니 속이지는 말라.”

이승은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닥쳤다고 생각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록 아버지의 첩이기는 하나 도리 상으로는 부모의 반열에 오른 기생이었다. 첩일지라도 유부녀로 인정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양녕이 내놓으라고 하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 머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 빨리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게.”

양녕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명했다.

이승이 부들부들 떨기만 하자 이오방이 소리를 질렀다.

“이 판관, 어물어물하다가는 더 큰 일이 생길지 모르니 빨리 뫼시고 나오시오.”

이승이 마당에 엎드린 채 더욱 떨고만 있을 때였다.

“어리 대령하였습니다. 마마.”

어리가 버선발로 마당에 뛰어나와 양녕의 말 앞에 부복했다.

“음, 과연 일색이군. 오늘 나하고 좀 같이 가야겠다.”

양녕은 여분으로 몰고 온 말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마마, 쇤네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어 출타할 형편이 아니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양녕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저 말에 네 발로 올라타지 않으면 강제로 말에 태울 것이다.” 

“이 판관, 빨리 마마의 명을 받들도록 하시오.”

이오방이 어쩔 줄 몰라 떨고 있는 이승에게 협박조로 말했다.

“아버님 허가 없이는...”

이승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양반이 참말로 뜨거운 맛을 좀 봐야 알겠구먼. 왕실 종친의 명을 거역한 죄로 배에 물고가 나봐야 고분고분해지겠소.”

구중수도 거들고 나섰다. 이승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마, 살려 주시옵소서.”

이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어리가 작심을 한 것 같았다.

“말에 올라가겠습니다. 제발 판관 나으리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어리가 말곁으로 다가가서 탈 자세를 취하자 양녕대군이 말에서 내려 재빨리 어리를 부축해 말에 태웠다.

“자, 가자.”

양녕 대군이 앞장서서 집을 나섰다. 그 뒤로 고개를 숙인 어리의 말이 따라갔다.

“연화방으로 뫼실까요?”

구중수가 물었다. 연화방이란 기생 기매의 집을 이르는 것이었다. 

“아니야. 취현방으로 가자.”

취현방은 이법화(李法華)의 집을 말한다. 이법화는 광대로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다. 악공인 이오방의 친구로 양녕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집이 넓고 방이 여러 개 있어서 양녕이 가끔 기생을 데리고 갔다. 이법화의 처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 양녕이 좋아하는 전과 두부를 잘 만들었다.

양녕이 어리를 데리고 골목으로 나오자 장사진을 이룬 백성들이 귓속  말로 수군거렸다.

“어리, 어리 하더니 예쁘기는 예쁘구나.”

“구중궁궐까지 소문이 났으니 그냥 넘어가겠어?”

“소문이 안 나도 미인 좇는 데는 이력이 난 양녕대군 이잖아?”

“그나저나 곽충 대감 분통터져 죽겠구먼.”

“어리는 이제 팔자 폈지. 늙어빠져 제 구멍도 못 찾는 영감탱이보다는 힘 좋고 인물 좋은 임금님의 형님 품이 더 좋지 좋겠어.”

“정말 여자 팔자 뒤웅박이야.”

모여든 동네 여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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