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8] 대호(大虎) 김종서
[이상우 실록소설 8] 대호(大虎) 김종서
  • 조경호
  • 승인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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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소년들은 횃불을 만들어 들고 도망간 복면들을 뒤쫓아 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을 놓치고 그냥 돌아왔다.

허벅지와 가슴에 부상을 당한 김종서는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홍득희가 곁에 붙어서 밤낮으로 지극히 보살폈다. 화살은 여진족 사냥꾼들이 와서 그들의 방식대로 뽑아내고 산에서 캐 온 약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사흘째 되던 날 김종서는 일어나서 학습원으로 나갔다. 그동안 홍득희가 모아 놓은 여진 문자의 탁본들을 살펴보았다. 김종서가 판독할 수 있는 문자는 거의 없었다. 원래 탁본은 한지로 해야 제격인데, 변방에서 한지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올이 고운 삼베에 탁본을 했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서가 다리가 완전히 나아 뛰어 다닐 정도가 되었을 때 한양의 임금으로부터 하명이 도달했다.

“우정언 김종서 어른을 빨리 한양으로 모시고 오라는 분부입니다.”

전갈을 가지고 온 사람은 회령 현감 산하의 갑사 두 명이었다. 갑사들은 밀봉된 서찰 한 통을 건네주었다. 김종서가 소속되어 있는 사헌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 대군의 여색으로 인해 궐내에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전하께서 우정언을 찾으십니다.

서찰의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었다. 대군이란 양녕대군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색이란 다른 신분의 여자를 두고 또 말썽을 일으킨 것이었다. 

김종서는 아직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더 머무르고 싶었으나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마음에 가장 걸리는 일이 홍득희 남매였다.

“득희야, 석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김종서는 홍득희와 홍석이를 불러서 넌지시 물었다.

“저희는 사다노로 돌아가겠습니다. 저희 고향이니까요.”

김종서는 홍득희 남매를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면서 무거운 발길을 옮겨 남쪽으로 향했다. 

 

세종 임금의 큰 형님 양녕대군은 미복을 하고 도성 거리를 잘 돌아다녔다. 그날도 구중수와 이오방을 데리고 혜정교 앞을 지나갔다. 봄이라지만 벌써 초여름 못지않게 수양버들이 녹음을 드리울 정도로 화창한 날이었다. 구중수는 아전 아버지를 둔 시중의 건달이었고 구중수의 친구인 이오방은 시중 기방에 다니는 악공 출신이었다.

어느 기생집에서 술을 밤새 마시고 놀다가 이 두 사람을 만난 양녕은 이들을 근수로 삼았다.

양녕은 헤정교를 건너다 말고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건너편 삼군부 관아 앞으로 지나가는 여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자. 모녀처럼 보이는 두 여인은 광주리에 무엇인가를 잔뜩 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여인은 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만 뒤따라가는 여인은 처녀처럼 앳돼보였다.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두 팔을 올리고 있어 늘씬한 허리의 뽀얀 살이 다 드러나 보였다. 그 밑으로 펑퍼짐하게 퍼진 엉덩이가 양녕의 눈을 끌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어느 양반 집의 여종 모녀 같았다.

“저 처녀가 누군지 알아보아라.”

이오방은 양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녀 앞으로 달려갔다.

“멈추어라. 너희들은 뉘집 종년들이냐?”

이오방이 덮어놓고 큰 소리를 쳤다. 모녀는 주춤하고 섰다가 아무 말도 않고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느냐?”

이오방이 여인들 앞을 가로막고 섰다.

“왜 이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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