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나치의 유대인 학대 이용... 도 넘은 마케팅 논란
KFC, 나치의 유대인 학대 이용... 도 넘은 마케팅 논란
  • 신예성 기자
  • 승인 2022.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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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KFC

 

세계적인 치킨 프랜차이즈 KFC가 반유대 주의 마케팅에 물의를 빚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욱일기를 본 딴 마케팅으로 기업들이 곤혹을 치른바 있다. 

KFC가 1938년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당시 나치가 유대인을 공포에 떨개 했던 <수정의밤(KRISTALLNACHT) 84주년 기념>를 마케팅에 활용했다고 못매를 맞고 있다고 지난 11일 AP통신이 보도했다. KFC는 <수정의 밤>을 기념하는 한 음식 주문을 촉구하는 '자동푸시알림'을 독일의 앱 사용자에게 잘못 보내 논란을 빚고 있다.

KFC는 앱 알림을 통해  “제국 포그롬의 밤을 기념하는 날!. 바삭한 치킨에 부드러운 치즈를 더해 보세요. KF치즈치킨!”을 광고했다.

이 광고 문구를 본 유대인 단체들은 반유대주의의 증가를 경고하는 수요일에 발령된 KFC의 도 넘은 상술에 비판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KFC 독일 측은 "계획에 없던 무감각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이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 준수 사항이 포함된 달력과 연결된 반자동 콘텐츠 생성 프로세스를 사용한다. 내부 검토 절차가 제대로 따르지 않아 승인되지 않은 알림이 공유됐다"고 해명했다.

KFC는 앱 통신을 중단했다. 앞으로 유사한 알림을 피하기 위해 정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 달리아 그린펠트(Dalia Grinfeld) 유럽담당 부국장은 트위터룰 통해 “제국 포그롬의 밤에 @KFCDeutschland(@kfc)가 얼마나 잘못될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1938년 11월 9일 나치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수정의 밤 포그롬 기간 동안 최소 91명을 살해했다.  7,500개의 유태인 사업체를 파괴했다. 1,400개 이상의 회당을 불태웠다. 독일에서는 이 행사를 제국 포그롬 나이트(Reich pogrom night)라고 한다.

 <수정의밤(KRISTALLNACHT)> 나치 만행에 유대인 공포의 밤

1938년 9일과 10일 밤에 발생한 폭력주의 반유태주의 포그롬 운동을 의미한다. 독일군이 접령한 합병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스테렌탄트 지역 전역에 걸쳐 발생했다. 

1938년 11월 7일, 17세의 폴란드계 유태인인 헤르쉘 그륀츠판(Herschel Grynszpan)이 외교관을 저격했다. 사건이 발생 수 일 전에 독일 당국은 독일 거주하던 폴란드계 유태인 시민들을 추방한다. 그륀츠판의 부모와 다른 폴란드계 유태인들은 모국 폴란드 입국을 거절 당한다. 독일과 폴란드 접경지의 즈바진(Zbaszyn) 근처 난민 캠프에 갇힌다. 파리에 서 불법 체류 중이던 그륀츠판은 독일 대사관에 가서 자신의 담당 외교관을 저격한다. 가족을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 넣은 것에 대한 복수를한 것이다.

저격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1938년 11월 9일 폼 라트가 사망했다. 1923년 맥주 홀 폭동의 기념일과 동일한 날이었다. 뮌헨에 모인 나치당 지도부는 이 사건을 반유태주의적 추가 조치를 실시할 구실로 삼기로 한다. 

수정의 밤 포그롬의 주동자인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소집된 나치 '보수파'에게 '국제 유태인'이 암살을 음모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총통은 … 나치당에서 시위를 준비하거나 조직해서는 안되지만, 이것은 자발적으로 발생한 경우이기 때문에 제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괴벨스의 발표는 폭력 사태를 촉발시키는 명령과도 같았다. 괴벨스의 연설 후, 회의를 소집한 지역 나치당 지도자들은 지역 사무소에 지침을 내린다. 11월 9-10일에 걸쳐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독일 제국의 여러 곳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 11월 10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는 독일 치안 경찰(Sicherheitspolizei)의 수장 자격으로 독일 경찰의 본부 및 경찰서와 여러 지구의 SA 리더에게 폭동에 관한 지침이 담긴 전보를 보낸다.  SA 및 히틀러 청년단 부대가 유태인 소유 가정과 사업체를 파괴한다.  폭도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및 수데텐란트 지역 전역에 걸쳐 267개의 유태인 회당을 파괴했다. 대중이 보는 앞에서 밤새도록 수 많은 회당들이 불탔으며, 지역 소방관들은 불이나면 건물로만 번지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로 지켜보고 있었다. 전국의 SA 및 히틀러 청년단 회원들은 약 7,500개의 유태인 소유의 상점들의 유리창을 파손하고 물건을 약탈했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유태인 묘지만 골라서 훼손시킨다.

독일 정부는 유태인의 재산과 생활 수단을 박탈하기 위한 수 십개의 법률과 법령을 공표한다. 이런 법률의 대부분은 유태인 소유 기업 및 재산을 헐값으로 "아리아인" 소유권으로 이전하는 "아리아인화" 정책을 시행한다.

수정의 밤 사건은 국가 사회당 반유태인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였다. 역사학자들은 포그롬 이후에 반유태주의 정책이 더욱 더 구체적으로 SS에 집중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폭동에 대해 대부분의 독일 시민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본 나치 제국은 독일 대중이 더욱 급진적인 조치에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나치 제국은 향후 수 년간 독일 경제와 사회 생활에서 유태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치를 확장하고 급진적으로 진행했다. 결국 독일 제국은 강제 이주 정책으로 전환하고, 유태인 인구를 "동쪽"으로 추방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유태인이 없는” 독일(유데라인)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따라서, 수정의 밤은 유태인에 대한 나치 독일의 박해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면서, 유럽계 유태인들을 몰살하려는 시도가 정점을 향해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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