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 김종서 (3)
[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 김종서 (3)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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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한 번 써 보거라.”

김종서가 종이와 붓을 건네자 득희는 수줍은 얼굴로 받아들었다. 붓을 든 득희의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래도 득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한 획, 한 획 글자를 그려 나갔다. 오른손에 쓴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왼손으로 붓을 잡아야 했다. 

“어떠냐? 쓸 만하냐?”

“글자가 너무 어려워요.”

“그래? 그럼 쉬운 글자로 바꾸어 지어줄까?”

“아니어요. 저는 바라는 대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득희가 단호히 말했다. 

“그래, 득희는 뭘 바라느냐?”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말을 하는 득희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러자 김종서는 얼른 득희의 동생에게 말을 건넸다. 

“너도 손바닥을 이리 내놓아 보거라.”

득희의 동생이 김종서 앞에 앉아 두 손을 내밀었다. 

“너는 남자니까 진석(眞石)이라고 지어 줄까?”

김종서가 동생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주었다. 

“참 진(眞) 자에 돌 석(石) 자다. 너도 한 번 베껴 써 보아라.”

그러자 득희의 동생이 말했다. 

“선비님, 글자가 너무 어려워서 못 쓰겠어요.”

“그래? 하긴 어린 너한테는 진(眞) 자를 쓰는 게 무리이긴 하겠구나. 그럼 이 글자는 지우고 이것 하나로만 하면 어떻겠느냐?”

김종서가 진(眞) 자를 까맣게 칠하자 득희의 동생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이 글자라면 저도 쓸 수 있어요.”

“그래. 돌 석 자만으로도 좋은 이름이 될 수 있다. 본래 석 자가 돌을 뜻하는 것이니, 또오리와 돌이가 발음도 비슷하고... 이게 더 잘 어울리겠구나.”

그러자 득희가 석이의 손을 잡으며 이름의 뜻을 새겨 주었다. 

“선비님이 네가 돌처럼 굳고 강한 사내가 되라고 지어 주신 이름이야.”

“그렇지. 득희가 참 영특하구나.”

김종서는 만족한 얼굴로 득희와 석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셔요.”

득희는 김종서에게 말하고는 헛간으로 갔다. 아버지가 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작업장이었다.   

“여기다가 저희 이름을 써 주세요.”

득희가 두툼한 노루가죽 허리띠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아버지가 만들어 팔던 것이었다. 

- 홍득희(洪得希), 홍석(洪石).

김종서는 가죽 띠에 남매의 이름을 정성들여 써 주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득희 남매에게 식량이나 주고 갈 요량으로 들렀던 김종서는 차마 둘을 떼어놓고 떠날 수가 없었다. 사다노의 여진족들이 득희 남매를 돌보겠다고 했으나 김종서는 둘을 데리고 경원으로 향했다. 천자문이라도 깨치게 한 뒤에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경원에는 오롱초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에는 여진 문자로 쓰인 불경이 있었다. 몽골 문자와 여진 문자를 수집하라는 왕명을 받고 경원에 온 김종서는 틈만 나면 오롱초사에 찾아가 스님들한테 여진 문자에 대한 강론을 청해 들었다. 

오롱초사에 있는 여진 문자는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의 황제 희종이 만든 글자였다. 여진 문자에는 대자와 소자의 두 종류가 있는데 소자가 희종 황제가 만든 것이고, 대자는 희종 황제보다 19년 앞선 금나라 태조 때 완안희윤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세종 임금은 군왕으로서 문자를 창안한 희종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김종서를 경원에 보내면서 여진문자의 모양, 발음 등 음운학적 자료와 창제 내력 등을 수집해 오라고 당부했다.

“선비님, 그 활은 너무 커서 선비님한테 어울리지 않는데요.”

누나 홍득희와 함께 김종서를 따라 경원으로 가던 동생 홍석이가 말했다.

“그러냐? 네 눈에 활이 크게 보였는가 보구나. 하지만 내 키가 작아서 활이 길어 보이는 거지, 활이 커서 내게 안 맞는 것이 아니란다.”

김종서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비님 몸에 맞을만한 작은 활도 저희 집에 여러 개 있어요. 그걸 드릴까요?”

홍득희가 활 쏘는 시늉을 하며 거들었다.

“임금님이 이 활을 메고 다니라고 하셨다.”

“예? 임금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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