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나,차이코프스키' 정재환, "햇살 같은 인물이고 싶었어요"
[인터뷰] '안나,차이코프스키' 정재환, "햇살 같은 인물이고 싶었어요"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2.10.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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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음악을 뮤지컬로 녹여 환상적인 작품 세계와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며 올 하반기 최고의 힐링극으로 등극한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지난 9월 3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순항 중이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창작된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대표곡  발레곡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오페라 ‘오네긴’ 등을 비롯해 순수 창작 넘버들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본지는 이번 작품에서 극 중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의 동료 알료샤 역을 맡은 배우 정재환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 진행한 일문일답이며, 공연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한편, 아름다운 넘버로 찬사를 받은 창작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오는 10월 30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Q.  본지와 첫 인터뷰다. 인사를 부탁한다.

정재환  안녕하십니까. 저는 91년생 뮤지컬 배우 정재환이라고 합니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에서 알료샤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Q.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정재환  일단 제가 <스메르쟈코프>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작품을 하고 있었을 때, 저를 잘 봐주셔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었어요. 제가 연기해보지 않았던 결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서 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창작 초연 작품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창작 초연이라는 게 쉽지 않다.

정재환  맞아요.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욕심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배우로서 늦깎이 무명 신인에 가깝다 보니까 창작 초연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라이선스 작품들에 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들, 특히 제 스타일에 맞게 캐릭터의 서사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롭게 서사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도 창작 초연 작품을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죠. 제가 학교를 다니는데 20대를 거의 다 보내기도 했고, 20대 후반부터 배우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Q.  생각해 보니 창작 초연 작품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정재환  맞아요. 배우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진 않았지만 창작 초연 작품들을 많이 했죠. <에어포트 베이비>를 비롯해서 <이퀄> <스메르쟈코프> 등등했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에어포트 베이비> 같은 경우엔 멀티 앙상블이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는데, <이퀄>이란 작품을 할 때부터는 정말 쉽지 않았었어요. 제가 원 캐스트로 참여했던 작품이었는데,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게 재밌었지만 그걸 잘 이끌어간다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정말 재밌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배우로서 준비 단계는 정말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계속됐었지만, 무대를 올리고 나서 제가 투자했던 시간들과 노력만큼 관객분들이 공연을 즐겨주시고 박수를 쳐주셨을 때 어떤 희열이 있었어요. 그게 큰 매력이지 않나 싶어요. 

 

Q.  이번 작품에서 알료샤 역할을 맡았는데, 어떤 인물이었나. 처음 대본을 보고 나서 인물의 서사를 만들어나간 과정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을까

정재환  저는 알료샤라는 인물을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서 어떤 뮤즈라고 봤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시작했죠. 흔히 말하는 어떤 영화나 작품 속에서 주인공 혹은 어떤 인물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인물이라고 설정을 했고, 준비했죠. 알료샤는 사실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안나와 세자르 모두와 연관되어 있는 '키' 였거든요. 물론 작품 속에서 그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그래서 더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같은 역할을 맡은 지온 배우님이랑 리현 배우님이랑 셋이서 많이 고민했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었어요. 특히 가장 어려웠고 힘들었던 건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감정선이 한계가 있다는 거였었죠. 알료샤가 차이코프스키를 대놓고 보여주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존경까지만 가면 되는 건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어떻게 해야 마지막에 차이코프스키가 어떤 의미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존경 정도까지는 이게 성립이 안 될 것 같았고, 우리가 타당성을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란 고민이 계속됐죠. 그렇게 고민하다 찾은게 마지막 인사라는 거였어요.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보면 사랑을 확인하고 떠나는 게 우리에게는 더 잘 맞는듯한 느낌이 들었다랄까요. 오네긴을 완성하는 과정들 속에서 알료샤가 차이코프스키에게 고백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보다는 차이코프스키가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성을 쌓아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이 공연이 마무리 지어질 수 있을 것 같았었고, 거기까지 가는 여정을 그렸어요. 

Q.  극의 시작을 세자르가 열고 극은 차이코프스키와 안나가 이끌어 가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건 알료샤 같았다.

정재환  어떻게 보면 그래서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컸었어요. 극에서 뭔가 큰 사건사고 같은 게 없다 보니까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저 사람이 저만큼 좌절할 것이며,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이야기를 전해야 그가 그 스스로 꿇었던 무릎을 다시 펴고 일어설 수 있는지를 고민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이 인물만이 줄 수 있는 어떤 인물 간의 관계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 이름이 <안나, 차이코프스키>지만 두 사람보다 사실 알료샤의 이름이 더 많이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재환  연습 과정에서 알료샤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인물들의 관계도를 짰던 것 같아요. 거기서 시작했죠. 알료샤는 나오는 비중이 적지만,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서 그의 이름으로나마 이야기 속에서 비중을 늘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극 중에서 안나와 차이코프스키가 알료샤를 부르고, 그를 생각하고 그가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그런 관계성을 만들었고 표현하려고 했었어요. 그가 모든 인물들간의 징검다리 역할이었기 때문에 나오는 비중이 적더라도 모두가 기억하고 더 강조되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Q.  그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정재환  알료샤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마치 <레베카>에서 레베카라는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오는 장면보다 극 중에서 다들 이야기하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고요.(웃음) 사실 2시간 동안의 공연 중에서 한 30여 분 정도밖에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 다른 인물들도 많이 생각이 난다고 하는 데, 알료샤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들 하시더라고요.

Q.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그래서 알료샤는 언제 나와"였던 것 같다.

정재환  제 친한 후배가 공연을 보러 왔던 적이 있어요. 소향 배우님 팬이어서 왔었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빨리 죽어요?"라면서, 그런데 끝나고 나니까 계속 나와있었던 것 같다고 하던데 확실히 임팩트가 있구나란 생각과 그래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Q.  무대 뒤에서 뭘 하면서 보내나.

정재환  다른 알료샤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스스로를 약간 겁이 많다고 표현하는데 주변에선 완벽주의자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뭐냐 하면 저는 백스테이지에서 그다음 장면 대사를 정말 계속 되뇌고 체크해요. 앞선 작품이었던 <번지점프를 하다>란 작품을 할 때엔 총 회차가 74회 정도 됐었는데 제가 50회 이상을 혼자 맡아왔었거든요. 그런데도 정말 공연이 시작되고 쉴 때마다 다음 장면의 음악이나 대사, 가사를 계속해서 되뇌었었어요. 인터미션 때도 15분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정도로 혹여나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외웠던 것 같아요. 저는 겁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거죠. 이번 작품에서도 안나와 차이코프스키, 세자르 역할에 선배님들이 다 정말 다른 느낌의 인물들을 연기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그걸 맞받아쳐야 되는 저는 정말 쉴 틈 없이 리마인드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Q.  같은 배역을 맡은 지온 배우와 리현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알료샤는 어떤 느낌의 알료샤 였나. 

정재환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일단 지온이 형이 연기하는 알료샤는 어쩌면 정말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그를 사랑하지만, 그걸 단단한 사람인 지온이 형이 연기하고 표현하니까 티가 안 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지온이 형이 연기하는 알료샤를 보면 눈빛에서부터 시작해서, 그의 말투나 행동 가짐이 그냥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티가 나요. 제가 봤었던 회차가 유독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만큼 단단한 사람이 알료샤를 표현하고 있구나 했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나 리현 배우가 연기하는 알료샤보다는 조금 더 주도적인 느낌의 알료샤였던 것 같아요. 리현 배우 같은 경우에는 제가 봤을 때 되게 어른스러웠다랄까요. 저나 지온 형님이 연기하는 알료샤에 비해서 되게 어른스러웠고, 그래서 어떤 차이코프스키가 앞에 있더라도 되게 성숙한 인물이 돼서 이들의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되게 성숙하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저 같은 경우에는 전작의 영향을 조금 많이 받았어요. 전작의 인물이 주인공의 첫사랑이거든요. 저는 그걸 이번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싶었었던 것 같아요. 차이코프스키의 첫사랑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랄까요. 누군가 본다면 이게 사랑인가 존경인가 의문을 품고 물음표를 날릴 수 있지만, 저는 그런 혼란스러움을 오히려 더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뭔가 영화 <건축학개론>하면 수지라는 배우가 떠오르듯이 너는 차이코프스키하면 알료샤가 떠올리게 하고 싶었어요. 차이코프스키가 알료샤가 그에게 말없이 떠나고 그곳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왜 저렇게까지 망가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첫사랑 같아야 이 이야기가 완성됐을 것 같았었고 누구보다 풋풋해야 했고 누구보다 햇살 같았어야 했구나란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다른 두 배우들이 어떻게 보면 단단한 인물이고 유연적이고, 담담하면서 젠틀한 모습을 보여줬던 알료샤 였다면 저는 그들의 인물과는 조금 다르게 첫사랑 같았고, 햇살 같은 사람이었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차이코프스키가 '빠스려졌다'고 봤거든요. 바스러지는 것보다 조금 더 세게 빠개진다랄까요. 그러기 위해선 알료샤가 되게 밝게 보여야 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공연을 볼 때 제가 연기하는 알료샤가 어떤 밝은 느낌을 받기를 바랐고, 햇살같이 느끼길 바랐어요. 

Q.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정재환  네, 어떻게 보면 봄날의 햇살처럼요.(웃음) 그래서 그런가 관객분들도 알료샤들이 정말 다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기하는 알료샤는 어떻게 보면 첫사랑과 햇살이란 느낌 때문인지 더 친숙하다고도 하고 그래서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었어요. 

Q.  극 중에서 알료샤가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나는데, 그가 편지를 쓸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어떤 감정이나 결심을 했는지 궁금하다. 본지는 그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거라고 봤었는데 어떤가.

정재환  알료샤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장면인 것 같아요. 사실 노래 전에 편지 장면에서 저희가 편지를 읽거든요. 그 장면을 만들 때 "선생님, 절대로 타협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힘은 선생님의 음악을 위해 쓰셔야 돼요." 혹은 "선생님의 음악 안에 있어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들이 어떻게 보면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다시 하게끔 만들기도 하고, 그가 그를 떠나간 나를 위해서 혹은 그의 음악 안에 살고 있는 나를 위해서 음악을 계속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봤어요. 어떤 무언의 고백 같은 느낌이 들어가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때의 감정이요? 감정이라기보다는 사실 알료샤는 알고 있었을 것 같았어요. 그는 그 스스로 어떤 죽음을 직감했을 것 같았어요. 그 편지에도 적혀있는데 "오네긴을 완성하는 그날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어요"라는 문장이, 그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던 부분인 거죠. 알료샤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떠났고, 그 사실을 직접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스스로도 후회하는 부분들이 있었을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말하죠. 선생님 탓이 아니라고, 내 선택이었고 나의 후회였으니까 부디 선생님은 나 때문에 후회하지 않길 바라죠. 그리고 내가 떠남으로써 그 또한 무너질게 분명하기 때문에 말하죠. 선생님은 절대 음악을 포기하지 말라고요. 다른 알료샤들은 모르겠는데, 저는 겨울날의 환상 장면에서 지휘를 하거든요. 그리고 그 뒤에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 두리번거리는데, 이 이유가 전쟁터에서 선생님의 음악이 어딘가에서 울려 퍼진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곳, 전쟁터에 있는 장병들이 힘을 내고 있다고 하는 데, 사실 그 뜻은 진짜로 음악이 울려 퍼진다기보다는 여기서도 선생님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 뜻 혹은 그만큼 선생님의 음악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 같았어요. 

Q.  만약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다면 이들은 오네긴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정재환  못 썼을 것 같았어요. 오히려 끝까지 못 썼던 노래가 되지 않았을까,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 됐을 것 같아요. 다른 알료샤나 차이코프스키는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네긴의 완성은 불가능했었을 거라고 봤고, 이들의 관계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작품 속 시대상이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기다려도 이들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차이코프스키 役 에녹, 알료샤 役 정재환 / 사진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차이코프스키 役 에녹, 알료샤 役 정재환 / 사진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Q.  극 중에 차이코프스키 역에 세 명의 배우들이 있는데, 정말 다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정재환  정말 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계시고, 각자가 연기하는 차이코프스키 또한 많이 달라요. 우선 에녹 배우님, 형님 같은 경우에는 누구보다 저랑 결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형님이랑 공연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뭔가 더 어려웠던 느낌이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무대 아래에서 배우대 관객으로 더 많이 봤던 배우, 선배 배우님이었다 보니까 지금도 쉽진 않고 어렵긴 하지만 같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부담감도 있었고 뭔지 모를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습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뭔가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저랑 결이 잘 맞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다른 알료샤들에 비래서 뭔가 발랄한 편이 아니다 보니까 그런 면도 잘 맞았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경수 형님 같은 경우에는 뭔가 배우로서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시거든요. 어떤 목소리의 톤부터 시작해서 연기 스타일이나 형님만이 가져가는 어떤 인물들의 자유로움? 어떤 색감들이 제가 배우로서 뭔가 끌리는 스타일이세요.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도 성덕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연을 하고 있는데 직관하는 느낌으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웃음) 정말 멋있으십니다. 마지막으로 규원 형님 같은 경우에는 정말 편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하고 대사를 내뱉어도 정말 다 받아주세요. 제가 하는 걸 다 받아주시는데 또 그걸 발전시켜주시려고 노력해 주는 선배님이세요. 정말 본받을 수밖에 없는 차이코프스키 형님들이십니다.

차이코프스키 役 박규원, 알료샤 役 정재환 / 사진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차이코프스키 役 박규원, 알료샤 役 정재환 / 사진 ⓒ 과수원뮤지컬컴퍼니

 

Q.  안나 역의 배우들은 어떤가.

정재환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역할들보다 안나 역할에 세 배우님이 제일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분들은 차이코프스키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차이코프스키보다 안나가 더 확실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았어요. 일단 소향 누나 같은 경우에는 뭔가 동반자 같다고 해야 할까요. 누굴 만나도 환하게 웃을 수 있고, 말을 걸 수 있고, 어딘가로 같이 걸어나갈 수 있는 동반자 같은 안나였어요. 작품 속에서는 어떤 사랑의 모먼트보다는 존경에 모먼트들이 더 보이는데, 사랑은 없지만 어떻게 보면 알료샤랑 겹쳐지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어요. 사랑과 존경, 그리고 예술가들의 예술성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이 다 담겨있는 안나입니다. 수진 누나 같은 경우에는 옆에서 걷는다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안나인 것 같아요. 수진 누나는 차이코프스키가 제대로 걸어갈 수 있게 일으켜 세우고 그의 뒤에서 밀어주고 있어요. 차이코프스키가 안쓰러워 보이고, 그 사람을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 있어요. 어떤 모성애라고 해야 할까요. 사랑보다는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가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지켜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서연 안나 같은 경우에는 사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분장실에서부터 장난을 정말 많이 치거든요. 그래서 그럴까요? 서연 안나는 뭔가 옆에서 걷거나 뒤에서 밀어주는 게 아니라 먼저 앞서 걸어나가서 이 길이야라면서 길을 먼저 걸어나가고 따라올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준다고 해야 할까요. "얼른 따라와요"라고 말을 거는 안나였었어요. 서연 배우 같은 경우에는 확실한 건 다른 두 안나에 비해서 더 씩씩하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파워풀하고, 활발하고 밝고 명랑한 안나가 소향 누나가 연기하는 안나면, 수진 안나 같은 경우에는 어른스럽고 여성스럽고 누군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안나예요. 마지막으로 서연 배우는 정말 씩씩하고 마치 어떤 학교의 회장을 맡고 있는 교회누나 같은 스타일이라서 굉장히 진취적이고 누군가와 시너지를 내서 같이 회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씩씩한 안나인 것 같았습니다.

Q.  우리 작품에서 꼭 봐야 되는 장면이나 넘버가 있다면?

정재환  당연히 '작은 꽃'이죠. 우리 작품은 이 곡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 모든 서사가 쌓여왔다고 봐요. 곡을 작곡한 게 알료샤고 안나는 그 곡에 가사를 붙이죠.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곡을 완성시킨 게 차이코프스키예요. 그리고 완성된 악보를 세자르가 받아보죠. 세자르는 그 곡을 보고 나서 위안 아닌 위안을 받아요. 우리 작품 속 모든 인물들과 연관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볼 수 있죠. 아 이 넘버를 할 때 사실 무대 위에 두 배우, 안나와 차이코프스키 역할을 맡은 배우님들 제외하고 다 무대 뒤에 있거든요. 넘버가 끝나고 안나 역의 배우님들이 이제 분장실로 들어와서 땀 한 번 닦고 분장을 수정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다들 들어오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정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고 그만큼 다들 집중하고 있는 장면이자 넘버이기 때문에 꼭 이 장면은 보셔야 합니다. 

Q.  만약 다른 역할로 무조건 한 회차를 올라가야 한다면?

정재환  저는 올라가야 한다면 세자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이유요? 이건 소향 누나랑 있었던 일화라면 일화일 수 있는데, 어느 날 정말 열과 성을 다하셔서 체력적으로도 피곤하셨을 때가 있었어요 누나가.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작은 꽃'을 끝내시고 기진맥진하셔서 무대 뒤로 내려오셨는데, 분장실에 계시면서 잠깐이지만 앉아계신 모습을 봤거든요. 정말 누나가 온 힘을 쏟았구나 생각했던 날이었죠. 왜냐하면 누나가 어떤 공연이던 분장실에 앉아계신다거나 하지는 않으시거든요. 웬만하면 백스테이지에 계속 계세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열심히 하셨던 거죠. 그리고 그 뒤에 세자르가 '상처 입은 독수리'라는 넘버를 부르고, 그 뒤에 몇 장면 뒤에 공연이 끝나거든요. 그날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커튼콜을 하고 내려가는데 소향 누나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백날 작은 꽃을 잘 불러봐야, 너희(세자르)가 독수리를 너무 잘 불러서 다 묻힌다. 너무 잘해, 너무 멋있어. 부러워 나도 뒤에 더 부르고 싶어"라고요. 그 정도로 다들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작품을 관통하는 노래를 부르는 안나에게 집중하지만 그건 어떤 상징성의 문제인 거고 저희들끼리의 농담으로는 가장 임팩트 있는 건 세자르가 한다고들 했죠.(웃음) 앞에서 아무리 잘해도 세자르가 저 곡으로 임팩트 있게 끝내는 게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요. 

Q.  생각해 보니 앞선 장면들에서 그나마 '작은 꽃' 빼고는 뭔가 강렬하게 임팩트 있게 끝나는 장면들이 없던 것 같다.

정재환  좋은 넘버들이 많지만 세자르의 넘버는 뭐랄까 그 확실하게 끝맺음이 있다 보니까 더 멋있지 않나, 더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되게 멋있는 마무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Q.  마지막 공연까지 나 스스로 챙겨가고 싶은 것 혹은 남은 기간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재환  사실 제가 이전 작품이었던 <번지 점프를 하다>라는 작품을 하면서 슬럼프가 왔었거든요.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슬럼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앞서 제가 조금 이야기했었던 무대가 무서워졌고 그래서 대사를 계속 외우고 중얼거리는 게 어떤 슬럼프처럼 족쇄가 됐었어요.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땐 그런 게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솔로곡을 부르는 게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선이 집중되는 게 겁이 나더라고요. 큰 무대가 처음이어서 그랬을까요. 저 스스로 이겨내려고도 하고 주변의 도움도 받아보고 했었는데, 공연 기간이 끝나서 그걸 마무리 짓지 못했었어요. 그다음으로 이 작품에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9월 한 달 동안 계속 심하게 왔었어요. 그런데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서 조금씩 괜찮아졌는데, 그 기간 동안 저를 많이 되돌아봤었거든요. 전 작품을 할 때 개인적으로 저에게 어떤 욕심이 생겼던 것 같더라고요.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매력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욕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저 스스로를 옥죄었던 거죠. 아까 말했었던 어떤 봄날의 햇살? 첫사랑 같은 알료샤라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고 제가 생각했던 알료샤를 만들고 연기하는 그 과정들이 겪고 나니 슬럼프를 조금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공연까지 어떤 안정감을 얻어 가고 싶고, 그렇게 이번 작품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게 이번 작품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자 해결하고 싶은 일인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작품에 같이 연기하고 있는 에녹 형님, 경수 형님, 규원이 형의 무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도움을 받고 있고 많이 관찰하면서 배울 수 있는 걸 찾고 있어요. 끝까지 좋은 배우이자 알료샤 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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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한나 2022-10-22 20:31:54
저희 정재환 배우님 인터뷰 기사 잘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환배우님 안나,차이코프스키 무사히 잘 마치길 기도할게요

Acherry 2022-10-22 19:10:48
정재환배우님 진짜 최고ㅠㅠㅠㅠ 기사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