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가 권한 넘어 중대재해법 무력화에 '앞장'?
기재부가 권한 넘어 중대재해법 무력화에 '앞장'?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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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서 형사처벌 아예 삭제한 개정방안 노동부에 전달
노동자 죽음보다는 경영책임자 처벌 완화 우선 친기업적 발상
노동계, 강화할 상황서 '월권'으로 안전 포기한 기재부 맹 비난

지난달 26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주차장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등 중대재해가 잇따라 발생해 사업주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해야 더욱 한다고 노동계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주무부서 고용노동부도 아닌 기획재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의 무력화에 앞장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노동부에 오너 사업주 등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추자는 내용의 중대재해법 및 시행령 개정 의견을 노동부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재부가 소관부서인 노동부를 제치고 중대재해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월권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욱 기재부의 월권행위가 문제되는 것은 중대재해법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려 '있으나 마나'한 법으로의 전락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올해 초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있고 보면 산재사망사고 에 대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윤석열 정부의 친 기업정책에 충성을 다한다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듯 산재사망사고 방지를 위한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법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17 노동계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의원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아 전날 공개한 ‘기재부가 보낸 중대재해법령 개정방안에 대한 노동부 입장’ 문건에 따르면 기재부는 노동자의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경영책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할 것을 노동부에 제안했다.

기재부는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완화할 것을 주문했다. 현행 중대재해법은 법을 위반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기재부는 “고의 또는 반복적으로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거나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지난달 26일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이 중대재해 사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소방청·뉴시스)
지난달 26일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이 중대재해 사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소방청·뉴시스)

경영책임자에 형사처벌은 하지 말고 벌금위주의 처벌을 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전에 솜방망이 처벌로 산재사망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해 온 점에 비추어 기재부의 의견은 산업현장의 안전위험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기재부는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보자고 한 내용 역시 법률 개정방안에 담았다. 오너 사업주를 대신해 전문경영인이 총알받이를 하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재부는 기업 오너 등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되지 않기 위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도 경영책임자로 봐야 한다고 재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기재부는 중대재해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지 말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중대재해법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산업재해나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두고 있는데 기재부는 중대산업재해를 징벌적 손해배상에서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기재부는 또한 시행령 개정방안으로 기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경영책임자의 의무 ‘완화’ 등 10개 항목을 제시했다. 경영책임자의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덜어주겠다는 의지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점검과 필요한 조치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운영되고 안착하도록 하는 핵심 사항”이라며 반대 뜻을 명확히 했다.

우원식 의원은 “그동안 기재부는 ‘부처 간 정책 협의’라거나 ‘연구용역 내용 일부를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해왔지만, 중대재해법령을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뜯어고치려는 의도가 명확해졌다”며 “기재부는 중대재해법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법 완화 뜻을 밝혔고 정부가 이 법 시행 1년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있으나 마나한 법으로 형해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노조 관계자는 "노동부가 법 개정보다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시행령 정도를 손질하겠다는 태도와는 달리 기재부가 자체 시행한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법 개정방안을 제시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이에대해  법개정에 참고하라는 뜻에서 연구용역 결과를 노동부에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노사·관계부처 간 이견이 첨예한 정책 사안에 노사정책의 협의 조정업무도 할 수 있어 연구용역의 공유는 월권으로 볼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재부가 노동부에 전달한 개정방안이나 개정방안의 근거가 되는 연구용역을 공개하지 않아 기재부의 이런 설명이 진실을 덮자는 의도의 변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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