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경영권 방어위해 회삿돈 쓴 '범법'사건 9년간 표류?
현정은,경영권 방어위해 회삿돈 쓴 '범법'사건 9년간 표류?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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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경영진의 신용공여 결정을 '경영판단'으로 보아 불기소 처분
주주대표소송 항소심은 현 회장 등 배상책임 인정, 수사재개 불가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이 지난 2006년 현 회장의 현대상선(현HMM)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사실상 현 회장에 돈을 빌려 준(파생상품계약) 결정이 상법 위반이라는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의 고발 사건이 9년이나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이에 경개연은 최근 내 논평을 통해 따라서 대검찰청은 더는 사법불신이 초래되지 않도록 조속히 직접 수사에 착수하거나 재기명령을 내려 실체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 특히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검찰은 현정은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의 상법 위반(신용공여금지) 혐의에 대한 고발 및 재항고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평에 따르면 검찰은 이 사건에서 손을 놓은 상태다. 경개연이 지난 2013년 11월 현정은 등 7명의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법 위반 고발 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5년 후인 2018년 9월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서울고검도 항고에서 2021년 3월 같은 처분을 했다. 이에 경개연은 이에 서울고검 검사의 처분에 불복해 2021년 4월 대검찰청에 재항고한 상태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사진=뉴시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사진=뉴시스)

민사소송 역시 아직 결론이 안 난 상태다.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Schindler Holdings AG)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은 항소심에서 파기돼 대법원 선고만 남아있다.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는 1심 재판부(수원지법 여주지원) 판결과는 달리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권 방어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익보다 현정은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해 이사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검찰이 불기소처분의 근거로 삼았던 ‘경영판단’이라는 주주대표소송 1심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검찰의 불기소판단 근거가 미흡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와 관련 경찰은 경개연과 동일한 취지의 고발에 대해 수사 중지 결정을 내렸지만 배임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경개연이 검찰수사 재개를 요구하는 것도 불충분한 불기소처분의 근거에 있다.

이 사건은 현 회장을 비롯한 현대엘리베이터 7명의 경영진이 현 회장의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돈을 빌려준 것이 배임에 해당하는 상법 위반으로 경영진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은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권 방어 목적으로 2006년 10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넥스젠캐피탈, NH농협증권 등 증권사와 4,400억원 규모의 TRS파생상품계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현대엘리베이터에 4,4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현 회장은 그에 상당하는 이익을 취득하고 이는 상법위반이라고 경개연은 주장한다.

경개연은 이에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쉰들러는 회사의 손실을 들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대표소송 2심(서울고등법원)은 현 회장에 대해 선관주의 의무위반으로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즉 현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서를 보더라도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들이 적법한 결의를 거쳐 TRS계약을 의결하였지만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동 계약으로 현정은의 개인적인 지배권 유지의 이익도 포함되므로 완전한 경영상 판단의 재량 안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경찰은 피의자들이 민·형사 재판에서 일관되게 현대엘리베이터를 위한 고도의 경영상 판단이라고 주장하므로, 경영상 판단인지에 대한 수사기관의 법적 해석은 민사법원과 같은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주주대표소송의 대법원 판결 시까지 이 사건을 ‘수사중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 내렸다.

쉰들러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이 대법원에서 ‘경영 판단’으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과 동일한 취지로 인용된다면 이 사건에서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근거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당시 서울 중앙지검은 주주대표소송 1심에서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의 파생상품계약 체결은 현정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 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 있다는 논리를 불기소처분의 근거로 삼았다.

주주대표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는 판결이 났을 때 검찰은 당연히 수사를 다시 해 실체를 파악한 후 적법한 처분을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서울고검 검사는 이를 무시하고 원 처분청인 서울중앙지검의 판단을 그대로 원용하는 안일한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봐주기 수사’이고 검찰의 판단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을 드러낸 것이다.

경개연은 결국 검찰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할 것을 촉구했다. 경개연이 고발장을 제출한 지 거의 9년이 됐고 그 사이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현 HMM)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는 등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 수사를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당초의 취지는 검찰의 늑장수사로 인해 다소 퇴색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렇다고 지배주주의 지배권 방어를 위해 회사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한 이 사건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면 심각한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대검찰청이 직접 수사에 착수해 법 위반 여부를 가려 엄중히 조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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