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에 왜 저런 녹음이 들어가 있을까?
어떻게 들으면 사람의 말소리 같기도 한데 음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녹음을 한다고 했는데 어딘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안 된 것이 아닐까?”
“언니가 그걸 알았다면 지우고 다시 하든지 했지 저대로 보관했을 리가 없어요.”
“하긴 그래. 저 이상한 소리가 무슨 암호일 거야. 어떻게 푸느냐가 문제이지. 어디 더 돌려보자.”
한영지는 동영상을 다 보자면 한 시간이 걸린다면서 빨리 감기로 돌렸다.
그림이 발리 움직이자 오디오는 더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리를 냈다.
화면에는 권익선을 비롯해 유성우, 오민준 등 남자들이 주로 나왔다.
함께 모여 있는 장면,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 맥주를 마시는 장면 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 중에 내가 전혀 모르는 여자가 몇 명 있었다.
동양 여자로 보이는 동그란 얼굴의 발랄한 여자가 제일 많이 나오고 키가 늘씬한 북유럽풍의 여학생도 나왔다.
“저 동양 여자는 누구야?”
“저 여자는 우리 학교 동창인데 중국서 온 유학생이에요. 성우 오빠를 좋아해서 열심히 접근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중국 공산당 간부였는데 하와이 총영사로 와 있었어요.”
“이름이 뭔데?”
내가 아는 중국 사람은 모택동이나 등소평, 시진핑 정도인데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싶었다.
“린윙이라고, 좀 부르기 어려워요.”
“그런데 노스쇼어 파도타기와 하와이안 빌리지에 함께 갔던 모양이지?”
“예. 여기 동영상에 보면 언니가 성우 오빠, 익선 오빠, 그리고 저 여자와 네 명이 함께 하와이에 가서 며칠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디오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어요.”
나는 그 괴상한 오디오를 유심히 들어 보았다.
어쩌면 사람의 음성 같기도 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만든 사람일 것이다.
한수지가 자기만 아는 언어로 녹음을 해놓고 필요할 때 풀어서 밝힐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상은 끝까지 보았다.
한 시간 분량인 그 USB 중에는 주목할 만한 장면이 몇 있었다.
린윙이 유성우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장면도 그 중의 하나였다.
권익선이 빌딩처럼 높은 빅 웨이브를 타면서 해변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모래사장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유성우와 좀 떨어진 곳에 있던 린윙이 슬그머니 유성우한테 다가가서 유성의 옆 모래사장에 앉았다. 그리고 번개같이 재빠르게 유성우의 뺨에 키스를 했다.
유성우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그 사이 린윙은 다시 유성우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유성우가 화를 내면서 린윙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장난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행동이었다.
오디오는 들을 수 없으나 소리의 톤으로 보아 화를 낸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린윙이 유성우를 좋아했나 보지?”
내가 한영지에게 물었다.
“그랬어요. 그런데 성우 오빠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성우 오빠는 언니 외의 다른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무슨 내용인지 말을 이해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하네.”
“음성 전문가에게 이게 무슨 소린지 물어보면 안 될까요?”
한영지의 말에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대학에서 음성학을 가르치는 내 친구 고유석 교수였다.
“이 USB 나한테 좀 빌려 줄 수 있나?”
“소리의 정체를 알아보려고요? 소리공학 교수한테 알아볼 필요가 있기는 하네요.”
그렇게 해서 나는 USB를 들고 고유석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