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문화 귀재] 아티스트 김현식의 현(玄)을 보다
[강희경 문화 귀재] 아티스트 김현식의 현(玄)을 보다
  • 어승룡 기자
  • 승인 2022.0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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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 첩첩(疊疊)의 고요와 본능적 이끌림
김현식, 결을 담아 내는
김현식, 결을 담아 내는

매일 수행하듯 일정 시간에 일어나 호흡을 가다듬고 작업을 시작한다. 모든 수신되는 알림이 울리지 않는 적막하고 정결한 시간이다. 존재의 행방에 대해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도 해본다. 겹겹 첩첩의 현(玄)의 세계는 은은한 오라에 휩싸인 무아지경 속에서 더욱 형형한 존재감을 떨친다. 존재의 심연이 말을 한다. “우주의 섭리와 순환되는 수직의 리듬은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범우주적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는 열쇠이자 작업의 단초를 제공한다”. 무의식의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긴 채 리듬을 타는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를 직조하고자 에너지를 일으킨다. 만물이 적막무짐(寂寞無朕)하여 그 어떤 것이 있기도 없기도 한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다. 선과 면, 색채로부터 폭발하는 아티스트 김현식 그의 玄의 에너지가 궁금해진다.

일상의 공간 비일상적 경험의 순간, 玄의 공간 
언젠가 모광고에서 배우 한석규와 속세를 떠난 듯 보이는 스님이 푸른 대나무 숲을 걷는 모습으로 광고 중반부까지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 온다. 그 잔잔함을 깨는 휴대전화 벨소리에 긴장감은 잠시 흐르고 아무런 동요 없이 거닐던 스님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됩니다.” 라는 내레이션의 청량감은 이 모든 소근거림도 잠재울 만큼 고요했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듯한 새로운 세상.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숲은 깊어지고 그 울림은 점점 커져만 간다. 빼곡히 서 있는 대나무 사이 사이로 또 다른 대나무가 보인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듯이 김현식의 작업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무한한 시간과 미지의 공간이 만들어 내는 삶을 그렇게 ‘겹’ 으로서 담아 내는 심오함과 깊고 깊은 아득함이 있다.

김현식, 미지의 공간에서 玄을 심다
김현식, 미지의 공간에서 玄을 심다

미지의 공간에서 玄을 심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함양의 대나무 숲은 울창했고 무척이나 푸르렀던 곳이다. 그 숲 속에서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곤 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려고 매일 비슷한 일과를 반복하면서도 조금 더 나를 다른 환경, 색다른 공간과 노출됨을 어쩌면 나는 허락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그려 온 미지의 공간에서의 경험과 낯선 공간으로의 노출은 그 자체로도 나를 변화 시킨다고 믿었으니까. 자연을 아우르는 듯한 모든 공간 속에서 호기심과 관심이 생기는 순간 매일 비슷한 일상의 반복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허물어 뜨리는 시간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 공간에서 나의 열정과 감정을 불어 넣었을 때 멋진 공간이  완성 되어 갈 것이라 믿는다.” 그 무엇이 되었든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의 가능한 영역 안에서 움직여 보는 玄을 심는 삶처럼 말이다. 

玄은 색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던 때 玄을 색으로 생각 했던 적이 있었다. 색으로는 흑(黑)이지만 깊고 깊은 심오함, 아득함을 표현하는 정적균형으로 ‘모든 색을 담는다’의 의미로 대입 된 우주공간이다. 모든 색을 포용 할 수 있는 자연에서 조화를 이루고 玄 한 면 한 면의 수직 공간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통일성을 보이기도 한다. 반복된 작업으로 ‘평면 속의 공간을’ 쌓아 올린 무수히 많은 선들의 아득한 깊이를 헤아려 보려고 했다. 

작가는 말한다. ‘작업에서 무수히 그어진 선들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玄의 공간을 시각화하고 싶은 나의 의지’ 라고.  

김현식, 형태가 아닌 선의 공간
김현식, 형태가 아닌 선의 공간

형태가 아닌 선의 공간
‘선’의 조형 요소들을 무한 반복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움직임은 인간의 원초, 존재에 대한 근본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들은 우주 속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 티끌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멀리서 보면 이 티끌의 형태가 무한한 반복과 확장을 이룬다. 이 거대한 패턴인 수직, 수평의 중첩들은 우주의 생성과 순환의 공간이고 우주의 리듬과 흐름들은 내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은 의지라고 보면 된다.

결을 담아 내는
보여지는 서사와 동시에 반복해서 올리고 마른 후 수직선을 그린 후 또 바르고 다시 올리고 마른 후 그려내는 반복된 행위의 흔적에서 드러나는 물질적인 요소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드러나면서 일관성 있는 형식적인 구성을 유지하려는 양가적인 자세로써 말이다. 이 작업에 들인 시간, 고민의 흔적 등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나만 아는 시행착오와 고통의 과정인 결들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머물고 담아내고 지켜내고 쌓아가면서 은은하게 인생의 결로 담아 내듯 말이다.

깊이를 더하는
유한의 시공간을 무한의 시간으로 표현하고 싶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끊임 없이 무언가를 만든다. 구태의연한 것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예술가란, 적어도 현대미술은 세상과 내가 어떻게 대면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지 내면의 무엇이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게 목적은 아니다. 모든 편견 없이 봐야 한다. 유한한 시공간이라는 삶의 경험치에서 무한한 작가적인 정신 만큼은 긴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그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예술이 시대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서도 안 되지만 사회에 대해 비판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 또한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 그 현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고 그것을 내면의 빛으로 작품에 담아 낼 수 있는 깊은 존재로써 말이다.

내면의 빛, 색을 담아 내는 비움의 미학  
눈을 감으면 공간이 사라진다. 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이 없다면 공간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빛은 나의 아니 우리 마음의 시야를 넓혀 준다. 인생이라는 배가 강물을 타고 흘러 내려 간다. 무언가 너무 많이 실으면 배는 무거울 것이고, 무거우면 흐름이 더디고 둔탁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비우면 가볍게 흘러간다. 무겁게 채우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비움의 무심은 고요하기에 늘 비우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작업은 자유로워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빛이 아닌 내면에 한없이 드러나 있는 수직선들의 여러 파장은 어떤 조합으로 섞여도 다양한 색과 빛 그대로 드러난다. 가까이서 볼수록 짙어 지고 끝이 없는 듯 깊어 지는 공간, 그 사이사이에 없는 듯 있는 듯한 선의 내면에 공간을 더욱 짙게 하는 것 같다.
 
흔히 좋다, 아니다로 귀결되는 평가는 얼핏 보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 김현식의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로 인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본질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간과 자기만의 무한 시간으로 확장되어 있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 시청각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평면에서 찾는 공간, 반복적인 레이어들, 무수한 선과 선 사이 겹겹 첩첩 미세한 틈새 공간들은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순간들을 마치 인수분해 하는듯 했다. 인수분해의 정의 따위는 몰라도 상관 없다. 하지만 켜켜이 쌓이는 찰나의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은 물론, 공기의 흐름마저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로 가득 채워진 느낌도 든다. 이질적이면서 매우 정결하고 적절하다. 유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의 만남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힘이 본능적인 끌림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필연은 형용할 수 없이 깊고 아득함이 허용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인 것이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 모든 것을 볼 수 있겠지만 이제는 희미하기만 하다” 영화 <화양연화>의 대사이다. 선명하고 뚜렷했던 그 시절의 감각과 감정, 오로지 그때만 허용되던 특권과도 같은 것은 순간을 지나온 이에게 주어지는 희미한 기억의 편린들로 아름다운 순간은 잔혹스럽기 까지 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하지만 알 수 밖에 없는 玄의 세계는 냉정한 자연의 원리로 인간사에 고스란히 적용시킨다.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현묘한 의미가 담길 수 밖에 없는 아티스트 김현식의 작품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의 시간은 바로 지금, 지금이 아닌가 싶다. 

김현식 작가
김현식 작가

김현식 함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 예술적 감성의 자극은 지금까지도 그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하고 30여녀간 국내외 유수 갤러리, 미술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였고 다수 공공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글 문화칼럼니스트 강 희 경 (藝 琳)

사람들 마음속에 전리(電離)처럼 찾아 들어 갈 한마디를 찾는 여정이다. 이야기하는 순간 순간에 가슴을 울리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보석을 찾은 듯한 행복함 마저 든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 이라는 연극을 하는 주인공이다.

강희경은 루씨드드림문화예술협동조합 에서 희곡대본을 쓰는 작가이고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mail hkkang9001@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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