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고지식할 정도로 여자를 위해 뛰는 성격이나, 조국에 충성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을 보면 죽은 여친을 위해 끝까지 해 보겠다는 우직함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오민준이 먼저 가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내가 먼저 일어섰다.
“그럼 이제 좀 들어가 봐야겠는데...”
나는 한영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러나 한영지는 오히려 내 기대와는 반대로 나왔다.
“선생님 먼저 들어가세요. 우리는 한 잔 더 하고 갈게요.”
“어, 그렇게 해요.”
나는 하는 수 없이 씁쓸한 기분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혼자 집으로 향하면서 공연히 화가 났다.
왜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영지를 오민준 앞에 남겨두고 온 것이 억울해서인 것 같았다.
이튿날 일찍 곽정 형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니, 새벽부터 웬 일이냐?”
뜻밖의 일이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우리 애인 엄정현 여사 보고 싶어 왔다. 왜 떫으냐?”
“미스터 곽, 어서 와요.”
그때 아내가 부엌에서 쫓아 나와 다정하게 인사했다.
“촌스럽게 미스터 꽉이 뭐야? 미스터 좋아하네.”
나는 심술과 질투가 나는 척 하며 아내한테 쏘아 붙였다.
“출근하는 길인데 그 전에 좀 의논할 게 있어서.”
곽정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집필실로 들어갔다.
“어제 유성우의 경호팀을 만났다면서?”
내가 먼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응, 경호팀 중에 경찰학교 후배가 있었는데 그놈이 나한테 와서 한 이야기야.”
나는 잔뜩 호기심이 일어 귀를 바싹 기울이고 곽정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주 우수한 후배였는데 미투 문제로 옷을 벗어야 했어. 미국 경호 전문학교에서 공부하고 백악관 경호 요원으로 있다가 유성우 아버지 회사로 온 친구야.”
“그래서 걔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나는 곽정 형사가 왜 그 경호원 이력을 길게 늘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더 따지지 않고 요점을 재촉했다.
“유성우가 세종시 정부 종합 청사 근방에 갔다가 사라졌다는 거야.”
“어떻게 사라졌는데? 경호원은 뭐 했는데?”
“법무부 청사 앞에서 모바일 전화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며 급히 갈 데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대.”
“아무도 따라가지 않고?”
“응. 그런데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아 들어가 봤더니 없더라는 거야.”
“뭐? 법무부 청사 안에 있었을 것 아니야?”
“세종 정부 청사는 여러 부처가 연결된 건물이라 그 안에 들어가면 어디로 갔는지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야.”
“뭐라고?”
“그 뒤 핸드폰도 끊기고 종적이 사라졌어.”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는지, 누군가의 힘이 작용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누구 전화를 받고 왜 거기로 들어갔는지 모르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나는 어느 날 세종 정부 청사 안에서 젊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렀네. 그보다 더 엄청난 정보가 있어.”
“또 뭐야?”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더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데?”
곽정의 얼굴에 심각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보라기보다는 첩보 수준의 이야기인데...”
“빨리 말 해봐. 무슨 뜸을 그렇게 들여.”
“요즘 우리 애인하고는 애정 전선에 이상 없어?”
곽정은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가끔 터무니없는 농담을 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