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문화 귀재(鬼才) 인터뷰] 아티스트 박시현, 철저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제어
[강희경 문화 귀재(鬼才) 인터뷰] 아티스트 박시현, 철저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제어
  • 어승룡 기자
  • 승인 2022.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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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랑해야 한다.

소멸함으로써 탄생하는 별처럼 자만하지 않고

더욱 철저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제어한다.  

인생을 걸고 싶어 지는 눈빛, 영화 <스타이즈본>을 보았는가. 여자와 남자는 열렬하게 죽고 못 사는 사랑을 했다. 눈과 눈이 맞닿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 . 지극히 뻔한 스토리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영화 후반부, 바비의 대사 中 에서 “음악이란 건 옥타브내에서 12개 음이 반복되는 거라고 했지.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뿐이고, 뮤지션은 그 12개의 음을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거라고”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언제 봐도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새롭게 고심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 자체로도 완벽하고 온전하기에 어떠한 조건도 설명도 필요 없다. 진정성 있는 내면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왜 그리는가?’ 라는 물음에 그녀는 ‘사랑하니까’ 라고 답한다. 여리여리한 자태와 세련미를 물씬 풍기는 그녀의 이미지는 화풍 속에 그대로 담아 있다. 2월 전시회를 앞둔 그녀와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감성의 끝에 서다, 그러나 같은 느낌 그대로
나는 대학시절 많은 책을 읽었고 자주 음악을 듣곤 했다. 그 중에서 시를 종종 쓰기도 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였다.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문화적 혜택이 전혀 없던 시골이었지만 사계절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풍경과 들판에 핀 꽃의 감성들로 지금의 나, 아티스트 박시현(Park si hyun)이라는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모든 예술적 감성의 바탕이 된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의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계획으로 가득한 삶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 버리고 또 버리고 비워 냈기에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들어설 틈을 만든 것 같다. 화가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음 생애 태어나도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관심이 많다. 그래서 모든 감각이 그 대상을 향해 열려 있다고 본다. 시인이 되었든지 아니면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 사람도 좋았을 것 같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충실하게 예술적으로 몸을 쓰면서 사는 사람으로 말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나다움을 찾아 나서는 여정인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쓸 수 있는 한 모두 다 남김없이 쓰고 갈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작가로서 이름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 edelweiss
절벽에 핀 꽃! 도저히 뿌리를 내릴 곳이 없어 보이는 절벽 위에도 꽃은 핀다. 볕이 드는 방향으로 줄기가 휘어진 채 다른 꽃들 보란 듯이 높은 곳에서도 핀다. 포기 하지 않았고 틀리지 않았고 그런 내 삶은 특별했다. 절벽위에 핀 꽃이 나의 존재를 보여주며, 또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특별함 이란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뜻대로 풀리지 않고 힘든 삶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이 삶 위에 보란 듯이 피울 것이다.

보란듯이 숨 가뻤던 지난, 그러나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25년간의 상해에서의 생활은 마치 시간을 도둑 맞은 듯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중국은 급속성장으로 그야말로 대단했다. 남편과 세 아들과의 행복했던 생활도 잠깐, 갑작스럽게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먹고 사는 일의 절박함과 세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산업전사로서 중국 대륙을 누벼야만 했다. 고단했다. 내 존재 여부가 허상으로 느껴 질 때면 더욱 더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한 차례씩 열병을 앓고는 했다. 그러나 그리는 행위속에 몰두하다 보면 당장의 현실적 고민이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잊게 되어 좋았다.  무엇을 그려야만 하는 고민이 깊어질수록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커다란 적을 발견하게 된다. ‘나’ 를 알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예술에 대한 열망은 나를 프랑스 파리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 할수록 더욱 목말랐다. 모든 부유하는 삶에 정착지를 찾아 와이탄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일과 작업을 병행해 나갔다. 이후 상해 많은 작가들의 도움으로 개인전과 여러 국제전을 함께 했다. 이후 중국화를 3년동안 배우게 된다. 서양화를 전공 한 나는 서양이 아닌 동양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내 작업의 열쇠가 되었다. 고단했던 삶이었지만 추억과 낭만이 교차하는 새로운 세계의 여운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받는 방법은.
삶이 힘들 때 제일 먼저 떠 오른 것이 숲이고 산이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다 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 나무들 사이로 걷다 보면 축축한 흙 내음 조차도 좋다. 도시의 단절된 공간에서 쉽게 떠오르지 않는 근원적인 물음과 표상들은 산속에서는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제 각각의 모양으로 깎이고 쪼개진 돌멩이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평평하고 낮은 돌덩이들은 산을 찾아 오는 이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 산 저 산으로 넘어 가는 길,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곳을 향한 나뭇가지들, 무심한듯 툭 내려 놓은 나뭇잎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마르고 뒤틀리는 모습 또한 멋스럽고 자연스러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작업의 원천이 되고 영감을 주고 무언가를 시도할 때, 두려움 조차도 여유롭다. 늘 산과 고향이 그리웠던 나는 고국으로 돌아 와 지리산을 찾았다. 산은 어머니의 품 같았고 그동안 고단했던 내 삶을 보상해주듯 안아 주고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비록 곰은 만나지 않았다.
 
내 작업에 대한 이야기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한 시간관리와 일을 하기 위한 체력관리까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나의 경험과 상상 했던 모든 것들에 이르러 나만의 조형언어를 발견 해야만 했다. 회화 뿐만 아니라 추상적 드로잉, 콜라주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혼용하면서 수직 수평의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내 시간이 만들어낸 독특한 색은 자유롭고 때론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기에 삶과 예술에 대한 질문들을 전시를 통해 소통하고 싶었다. 미술을 통한 예술적 감화를 경험하는 것 외에도 나 자신을 바로 보게 되는 ‘철학적 감화’, 내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직시하게 되는 ‘시대적 감화’, 사라지지 않는 계층과 계급을 타파하고 싶은 ‘반항적 감화’ 등 여러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아마도 이런 감정들에 휩싸여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기에 그리워했고 그토록 갈망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던 시간과는 달리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집으로 가는 길, On the way home
문을 열면 따뜻한 온기로 반겨 주는 안식처이다. 반면에 매일같이 오고 가는 이 길이 가끔은 깜깜하여 헤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딴 길로 돌아 가기도 했다.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는 건,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행복했던 내 삶을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기억의 편린들이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만 갔다. 그런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삶 속에 가득 들어 있는 자양분으로 더욱 견고 해졌다. 그러한 생각과 생활들이 타인에 대해서 용서 할 수 있었고 내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집은 물리적 공간인 하우스(HOUSE)와 정신적 안식처인 홈(HOME)으로 만족될 때 온전한 집이 된다.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움 보다는 그리움이고 공허한 마음을 찰나마저 달래 볼까 하는 자기 안위적 행위이다. 비록 채워지지 않을지라도 채워보려는 노력이고 일탈이다. 어둠이 꾸역꾸역 토해내는 별과 함께 희미한 불빛 따라 돌아가는 길이듯이

예술가로서의 경험 끝에 발견한 단순함과 순수함, Confession
정제되지 않은 날것들로 감각적인 생동감을 즉각적으로 전하는 것이 내 작업의 색깔이다. 이성적으로, 무언가 치밀한 구성이 아닌 좀더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에게는 의무가 우선이다. 드라마틱하게 한 페이지를 넘기고 사랑하기에 그림을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영감들은 번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더욱 깊고 순수하게 나타난다. 감정과 생각의 중첩들은 더욱 단순한 색감으로 펼쳐진다. 그것이 빛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여한없이 내 숨결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삶에 대한 고백 이기도 하다.

찰나의 기억 조각들이 모여, Collage
회화의 경계를 허물고도 싶었다. 천성은 드로잉에 그대로 나타나 자유로운 스타일로 온갖 재료와 방법들이 반복과 리듬의 묘한 앙상블이다. 다양한 색채의 선율이 공기방울처럼 흘러 나와 도시와 건물, 혹은 그 안에 살아가는 크고 작은 조각들이 ‘나와 소통하고 나를 대변하는 존재’로 은유 된다. 특히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 사연들을 들여다보면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저항할 수 없는 끌림 때문에 하나씩 기록해 나가는 과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상처와 아픔을 꿰맨다. 삶의 용단, 인고의 시간들은 기다림의 연속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면 더할 나이 없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내게 콜라주란, 시간이 거듭되며 쌓인 이야기들이다. 아마도 모든 것이 거기에 들어 있을 것이다. 

박시현 작가
박시현 작가(Park si hyun)

아티스트 박시현, Park si hyun
어머니! 생각에 잠시 멈추었다. 눈시울이 뜨거워 졌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만들어 졌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머니, 엄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자수성가한 여장부로서 집안을 책임지고 힘이 되어 준 누구보다도 그녀를 응원하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신 분이다. 삶에 형태는 다르지만 그녀 작업의 감성 바탕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도 세 아들의 어머니이다. 그림이 삶이 되고 삶이 그림으로 표현 되는 예술을 사랑했던 한 인격체로 봐주길 원한다고 했다. 작업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이 그녀 삶에 진심으로 녹아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할 수 있는 것을 꼭 실현하길 바란다.

약력

1965~ 경북 청도, 부산동아대 회화과 졸업
1995~ 2019 상해에서 활동,
무간산루M50, 203갤러리 등 10여차례 개인전과 그룹전
2019~ 대구오모크,ARTLOGIC SPACE
뉴욕K&P, 와스갤러리, SAATCHI&FOLD등 개인전과 그룹전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작품 소장함

 Interview. 강희경 문화칼럼니스트

사람들 마음속에 전리(電離)처럼 찾아 들어 갈 한마디를 찾는 여정이다.

이야기하는 순간 순간에 가슴을 울리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보석을 찾은 듯한 행복함 마저 든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 이라는 연극을 하는 주인공이다.

강희경은 루씨드 문화예술협동조합 에서 희곡대본을 쓰는 작가이고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mail hkkang9001@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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