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 변호사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정소연 변호사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 조경호 기자
  • 승인 2021.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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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인권, 젠더 등 사회 현상 이슈 시각 성찰 돋보여
공익인권변호사, 장학사업가, SF소설가로 다방면 활동
정소연 변호사는 공익인권변호사를 비롯해 SF소설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보 캡처

“모든 자리에서 모든 사람이, 무엇이든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혼돈스럽다.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로 뽑았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영화ㆍ드라마 속 악당은 정치인ㆍ법률가ㆍ재벌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도 본인 또는 가족 리스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조커나 베인의 등장으로 고담 시티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는 듯하다. 

최근 출간된 정소연 공익인권변호사의 첫 에세이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은행나무)>은 노동, 인권, 젠더 등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를 통해 전설의 히어로 영화인 베트맨 시리즈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고담 시티를 악으로 물 들인 악당 조커를 탄생시킨 배경이 된 현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성찰을 통해 자유주의적 질서의 회복 탄력성을 담아냈다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은> 정 변호사가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과 국내외 고전, 현대 SF 소설에 실린 옮긴이의 말과 해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정리해서 옮긴 것이다.

공익인권변호사와 SF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 변호사가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린 차별과 혐오를 차분하게 되짚으며 한국 사회가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아 냈다.

혐오는 집요하고 힘이 세고 지치지 않는다.

무릎 깊이 바닷물 속에 서서, 허물어지는 모래를 발가락에 억지로 힘을 주어 쥐고,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는 것 같다.

어떤 개인도 이런 파도에 계속 맞설 수 없다.

주저앉아 떠내려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맞서려 해보아도 쉽지 않다. 같이 떠내려가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런 집요함에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밀물 때와 썰물 때가 있을 뿐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손을 놓아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우리는 또 누군가를 잃는다

정 변호사는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일관된 논리로 세상의 곪은 지점을 짚었다.

직접 고용을 거부하는 한국도로공사의 현수막에서, 언어유희적 표어를 내건 법무부 이송 차량과 구치소 LED 전광판에서 계급 갈등과 차별을 읽어낸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에서 약자의 배제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자금 운용 방식에서 이익집단의 폐해를 뛰어넘는 국가 복지의 허점을 지적했다.

편견에 맞서 싸우는 대신 슬쩍 편승함으로써 누리는 혜택의 덧없음과 갈등 이후의 가능성을 그리며 우리 사회의 반성을 이끌어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 속에 단순히 ‘나’로 처리되지 않는 ‘우리’의 얼굴이 담겨 있다.

권력과 자본, 위계질서가 낳은 불평등이 도처에 널려 있고 그로 인한 고통은 한 사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담아냈다는 평이다.

정 변호사는 직장갑질 119, 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활동을 하고 있다. 동남아 여성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육비, 생활비 등 장학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법의 문제가 아닌 갑질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더 강한 사람에게 허용하고 있는 행위들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사람 앞에서 침묵해온 집합적 경험이 쌓인 결과다.

우리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외면함으로써 가능해진 어떤 행동 양식이다.

소설가 김초엽은 추천사를 통해 "정소연 작가는 엉망진창인 세상을 피하지 않고 맞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세상 어딘가의 균열, 빈틈, 희미한 가능성을 마침내 발견해낸다.  글을 읽을 때면 이렇게 망가진 세계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기자 최지은은 추천사를 통해 "정 변호사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SF를 쓰고 소녀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운영하며 바둑을 두고 고양이를 돌본다. 그의 일은 자본에 멱살 잡혀 낭떠러지로 밀려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이라며 "이 막막한 싸움에서 그는 종종 실패하지만, 쉽게 지지 않는다. 정소연은 슬픔을 뒤로하고 일어나 일단 일한다. 여성에게 발언권이 돌아오지 않을 때 냅다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낸다. 수많은 차별과 맞서고 익숙한 억압의 뿌리를 캐어 드러낸다. 그와 함께라면 우리는 오래,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차별적인 현실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다.

차별은 언제나 약자에게 확실하게, 조금도 헷갈릴 일 없게 가혹하다.

이 가혹함을 때로는 약자로서 경험하고 때로는 옆에서 지켜본다.

아무리 역지사지니 연대니 해도, 내가 경험하는 것과

내가 ‘피한 상황’을 보는 것은 결코 같지 않고 차별이 심할수록

이 두 경우 사이의 차이는 커진다.

이 차이도 고통스럽다. 가끔은, 아니 자주, 아득하다.

정소연 변호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를 맡은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하다가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PI》 《오늘의 SF》 편집위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초대 대표로 일했다. 《팬데믹》 《언니밖에 없네》 등에 작품을 실었고,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공저) 《옆집의 영희 씨》 《이사》 등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어둠의 속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허공에서 춤추다》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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