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최태이 그리고 이예슬과의 인터뷰
"지쳐 쓰러지지말고 더 좋은 세상, 내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길 바라..."
창작뮤지컬 <앤 ANNE>이 개막 이후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이 진행 중이다.
2년만에 돌아온 뮤지컬 <앤 ANNE>는 올해 실력파 신인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며 신선함과 탄탄함을 바탕으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앤ANNE>는 캐나다의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극중 걸판여고 연극반이 공연할 작품이 <빨강 머리 앤>으로 정해지면서 걸판여고 학생들과 걸판남고 학생들, 선생님이 <빨강 머리 앤>의 장면을 연기하며 앤의 여정을 그리게 되는 뮤지컬이다.
앤의 상상력과 주변 인물들의 우정과 따뜻함을 통해 원작의 메시지를 전하며 “따스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고마운 작품”, “관심과 사랑이 아이가 성장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건 지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작품”, “앤은 동심 속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희망의 가치를 전달해 주는 좋은 공연”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본지는 이번 시즌 서울 공연에 새로이 합류한 최태이 그리고 이예슬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최태이 배우는 이번 작품에 극중 '앤1' 역을 맡았으며 이예슬 배우는 린드 부인과 필립스 역할을 맡았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으로 공연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Q. 반갑다. 본지와 첫 인터뷰를 하게 됐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예슬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뮤지컬 <앤 anne>에서 린드 역할과 필립스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이예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최태이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 작품 <앤 ann 'e'>에서 앤1 역할을 맡은 배우 최태이라고 합니다.
Q. 왜 'e'와 '1'을 강조한 걸까
최태이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뮤지컬 <앤 anne> 공연 대사 중에 “끝에 꼭 'e'가 붙은 앤으로 불러주세요” 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이 대사가 공감이 많이 되는데요. 어렸을 때 반장 선거를 나갔는데 친구들이 저를 '태이'가 아니라 대부분 '태희'로 알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태희'라고 적힌 투표용지가 많았는데 그걸 담임 선생님이 인정해주시지 않아서 부반장이 됐어요. 그 뒤로 사람들한테 인사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태이 '이빨 할 때 이', 최태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한답니다. 공연을 보고 아직 저를 최태이가 아니라 최태희로 생각하시는 분들이계셔서 최태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Q. 앞서 공연을 본 적이 있을까
최태이 저는 봤었는데 언니는 못 본 걸로 알고 있어요.
이예슬 네, 상황이 안되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봤었어요. 그런데 워낙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들이 이 작품을 했었어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죠. 그리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여배우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작품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잘 알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실제로는 보지 못했었습니다.
최태이 저는 19년도에 <앤ANNE> <헬렌앤미>라는 작품도 봤었어요. 그때 저는 열정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였었는데 이 작품들을 보고 꺼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열정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어렵고 힘든 나날들이 계속됐었거든요.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왔었기 때문에 나도 무대에서 노래 연기하고 말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내가 배우를 그만두기 전에 극단 걸판 공연은 꼭 한 편은 하고 때려치워야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또 힘을 얻었던 공연이었기 때문에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던 공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게 참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곤 해요.
이예슬 워낙 호불호가 없는 작품이잖아요. 따뜻한 이야기가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다 보니 기대를 하고 있는 분들도 많으세요. 이 작품을 한다고 말을 했을 때도 주변에서 되게 기대가 된다고들 하셨었거든요.
Q. 오디션을 보고 참여를 했을까
최태이 걸판 오디션을 세 번 정도 지원했었는데 다 떨어졌었어요. 서류에서도 붙지 못했었죠.(웃음) 이번에는 제가 연기에 대한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그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붙게 됐습니다.
이예슬 전 오디션에 앤 역으로 지원을 했었어요.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앤1과 앤2역을 지원했었죠. 그런데 콜백이 린드 부인으로 왔어요. 제가 처음 자유곡을 너무 강한 걸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때 제가 <모던걸 백년사>라는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제 솔로곡을 했었거든요. 제 역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서 통통 튀는 노래를 선곡했는데 제 생각 이상으로 좀 많이 튀었었나 봐요. 그래서 린드 역으로 콜백이 왔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린드 역 지정곡을 주셨는데 듣자마자 딱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노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재밌게 힘든 거 하나 없이 준비를 했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린드 역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Q. 태이 배우는 자유곡을 뭘 준비했나
최태이
인더하이츠 <Breathe> 라는 곡을 준비했어요. 자유연기도 있었는데요. 여러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준비를 했었어요. 그 중에 신영복 작가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 내용 안에 독백이 하나 있는데요. 그 내용이 우리 작품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선택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저는 여름이 더 견디기 힘듭니다. 자기 옆 사람을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보다는 겨울을 택하겠어요. 옆 사람의 체온을 고마워하며 살을 맞대고 자는 원시적인 우정이 증오의 감정으로 변해야 하는 여름은 정말이지 징역살이가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의 형벌입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 한다는 사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존재, 체온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건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하지 못한 채로 그저 말초감각으로만 느끼는 미움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미워할 수밖에 없는 자기혐오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비 한줄기가 내리고 나면 불행한 증오는 서서히 걷히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서로의 따뜻한 가슴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마음을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각색해서 자유연기를 준비했어요.
이예슬 정말 앤같지 않나요? 보면 볼수록 너무 앤 같더라고요.
Q.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최태이 행복했어요! 내가 <앤ANNE> 대본을 읽고 있다니.. 라는 생각에 그리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공연을 보는 관객분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 없이 다가올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이예슬 전 아무래도 제 역할의 대사를 먼저 봤었거든요. 처음 생각했을 때는 제가 뭔가 다른 배우들이랑 티키타카 하는 대사들이 많을 줄 알았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대사들보다 혼자 정보를 전달하는 대사들이 더 많더라고요. 보면 제가 첫 장면부터 나와서 한 몇 분 동안 혼자 떠들어요. 그걸 보면서 되게 많이 고민했었어요. 제가 극을 시작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처음부터 엄청 지루해질 수도 있고, 제대로 정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으면 극이 붕 뜰 수도 있잖아요. 리드미컬하게 잘 살려야지,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대사들을 조금 노래하듯이 하려고 했었어요. 그렇게 다가갔죠.
최태이 사실 같은 역할을 맡은 은주 언니도 똑같이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예슬 네, 노래하듯이 대사를 해야 했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분석을 했었어요. 그냥 대본에만 적혀있는 대사와 연기를 하기보다는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체크를 하고 처리를 해줘야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판단을 했었고, 그걸 맛깔나게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되게 많이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 같아요.
Q. 첫 연습은 어땠나.
이예슬 사실 저는 연습 일정이 다른 작품이랑 겹쳐져서 조금 뒤늦게 합류를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연습 시간 보다 일찍 가서 노래 연습부터 먼저 시작을 했었어요. 그런데 갔는데 음악 감독님이랑 연출님만 계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개인 레슨 같은 상황이랄까요. 그런 상황에서 저 혼자 연습을 시작했었어요. 우리 작품 속에서 합창곡들이 많은데 제가 불러야 되는 게 되게 음이 높고 다 진성으로 처리를 해야 되더라고요. 제가 사실 웬만해선 목이 잘 안 쉬는 편인데 몇 시간 동안을 혼자서 다 부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소리가 더 안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 감독님이 그걸 캐치하셨는지 연출님 보고 혼자 모든 곡을 다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고 하셔서 그다음부터는 저 혼자 말고 다른 역할의 배우들을 한 명씩 불러서 같이 부르게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 시작을 했을 때 조금 외로웠다. 동떨어져서 연습을 혼자 시작해서 어려웠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그걸 다 보고 나서 결정을 했나 보다
이예슬 외롭고 힘들었다랄까요?(웃음) 합창곡이 괜히 합창곡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곡들을 해보고 나니까 작품이 다시 보이기도 했었어요. 우리 작품 속 노래들이 참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설레고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연습을 조금 늦게 참여했던 만큼 빠르게 이 곡들을 제 곡으로 만들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했었습니다.
Q. 옆에서 봤을 때 첫인상이 어땠나
최태이 첫 연습을 같이 시작했는데 언니가 너무 잘해서 놀랐어요. 그리고 첫인상은 언니도 그렇고 작품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에게 선한 느낌을 받았어요. 낯가림이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의기투합 할 수 있습니다.
이예슬 사실 몇 년 동안 이 작품을 했던 배우들부터 저처럼 처음 이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도 있다 보니 눈치 아닌 눈치가 보였던 것 같아요. 연습하는 과정이 마냥 쉽지 않았다랄까요. 그런데 그런 거에 비해서 기존의 배우분들이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와 주셔서 쉽게 동화될 수 있었고, 덕분에 저희들도 마음을 쉽게 열수 있었어요. 그리고 앤3 역에 송영미 배우가 되게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줬었거든요. 괜히 이 친구가 이 작품을 오래한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랑 같은 역할을 맡은 은주 언니도 제가 생각하는 바를 되게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쉽게 한 팀이 됐던 것 같아요.
최태이 맞아요. 기존에 이 작품을 했던 배우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고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저희들을 응원해주셨어요. 힘들어 보이면 한 번씩 툭 치고 가요. (웃음) 주변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게 되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됐어요. 코로나로 사석에서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이분들에 노력 덕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Q. 연습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최태이 제가 텐션이 높지 않은 편이거든요. 텐션도 낮고 혈압도 낮고 목소리도 허스키해요. 물론 정말 허스키한 분들보다는 하이톤에 가깝지만요. 음악감독님께선 앤 1을 두고 '7살짜리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 그리고 '시원시원한 발성'을 강조하셨어요. 어린아이 소리와 가깝지 않은 저는 노래 톤과 연기 톤을 일치시켜야 했었고 그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음색을 꾸미면서도 관객들에게 이 소리가 거부감 없이 전달되길 바랐고, 건강한 발성으로 두 달 동안 공연을 잘 올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예슬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앤1 같아요. 너무 잘하거든요.
최태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웃음)
이예슬 옆에서 진짜 많이 봐왔는데 사실 자기가 내던 발성이 아닌 다른 발성을 내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단 시간 내에 바꾸는 건 정말 어렵죠. 그런데 정말 그 짧은 시간 내에 그걸 바꾸고 지금 공연에서 그걸 계속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잘하고 있는데 걱정이라니! 정말 잘하고 있어요!
최태이 감사합니다.
이예슬 저 같은 경우에는 워낙 베테랑인 언니들이 린드 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컸었어요. 언니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지 알기 때문에 제가 이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되게 큰 걱정이나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출님이 배려를 해주셔서 사실 제가 연습을 시작했을 때 은주 언니랑 같이 연습을 하지 않았거든요. 같이 연습을 시키지 않았다 보니 저는 저만의 색깔로 린드라는 인물을 찾아 나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맡은 배역에 대해서 조금 더 소개를 하자면?
이예슬 저는 제가 맡은 린드 부인이 어떻게 보면 초반의 앤을 마주할 때부터 티격태격하거든요. 그런데 뭔가 안 좋은 마음? 나쁜 마음으로 애를 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린드는 이 마을에 터줏대감 같은 사람이거든요. 마을의 모든 소식을 알고 있어야 하고 쓸데없이 오지랖이라기보다는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예요. 그런데 앤이 처음 왔을 때 린드 부인은 어떤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생판 모르는 아이가 이 마을에 갑자기 들어왔다는 것에 어떤 의문 같은 게 생겼던 거죠. 그게 조금 강하게 내뱉게 된 거였고요. 그런데 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서 듣고 되게 놀라고 미안해해요. 린드 부인은 겉으로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정이 많고 여리여리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앤이 사과하겠다고 오기 전에 미리 그냥 다 인정하고 그를 사랑으로 받아주기로 해요. 어떤 미안함도 있죠. 저는 린드가 어떻게 보면 악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없게 하려고, 그가 악랄하거나 나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그걸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죠. 그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최태이 제가 느낀 게 맞았네요. 린드가 저를 바라볼 때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저는 앤이 희망 가득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라게 되면 그 결핍이 족쇄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 있는데 앤은 그걸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며 사랑이 가득한 아이가 됐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고 상상일 수도 있는데 앤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어딜 가서도 단단하게 일어섰어요. 끝에 꼭 e가 붙은 앤으로 불러달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앤의 존재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상으로 자신의 세계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가, 상상이 현실로 다가와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됐고, 자기 이외의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진짜 웃음을 지을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었어요.
Q. 내가 어른이 됐다고 느꼈을 때는?
최태이 제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존중’ ‘섣부르지 않는 사람’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고, 어려서 어른이 아닌 게 아니라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판단하지 않고 그것을 존중하고 헤아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어른이다’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아직 어린아이 같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깨지고, 신나고 우울해지고 여러 감정들을 느끼면서 배워나가고 있어요. 우린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고 인정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이예슬 저는 오히려 저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했던 케이스랄까요. 저만의 기준을 정해놓고 저 스스로를 되게 옥죄어왔어요. 어렸을 때는 클래식을 전공했었고, 되게 세밀하게 소리를 표현해야 했었기 때문에 되게 예민했었고, 주변에서도 저를 굉장히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봤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티는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저도 그걸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되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어요. 그런데 뮤지컬로 전향을 하면서 제가 내는 소리적인 부분들이 되게 잘 맞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뮤지컬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게 있었는데 여러 작품들을 거치면서 저 스스로도 그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됐었고, 받아들이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한 작품을 맡고, 하고, 끝내면서 그런 것들이 살짝살짝 넓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클래식에서 뮤지컬로 전향을 한 게 저에게, 제 인생에서 아주 큰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극 중에서 앤1과 린드 부인이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예슬 사실 저는 앞서 이야기를 조금 했지만 앤을 받아들이는 게 되게 빨랐어요. 어떻게 보면 극중 린드,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마릴라와 매슈가 앤을 자식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던 그 순간부터 린드는 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에게 모진 말을 했던 순간을 되게 후회했었고, 그래서 마릴라와 매슈가 앤에게 이야기를 하러 간다는 그 순간부터 앤을 이해했고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고 봤어요. 린드는 이미 아이를 키웠던 사람이니까 그들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었고, 그래서 그냥 앤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그가 오자마자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던 거죠. 사실 미웠다라기보다는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앤이라는 아이가 내 친구들을 힘들게 할까 봐. 그게 걱정이 됐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최태이 첫 만남부터 못생겼다고 주근깨 투성이에 온갖 모진 말을 뱉었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사과하는 건 절대 상상할 수 없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매슈의 사랑이 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린드 부인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했던 앤에게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말해줘요.
그 말이 앤의 마음을 살살 녹게 만들어준 거 같아요. 앤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쉬운 점은 린드 부인과 포옹하고 장면이 끝나거든요. 그래서 린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 못해요.(웃음) 이제 앤 2가 그 이야기를 듣죠. 린드 부인이 따뜻하게 앤을 받아주는 그 느낌을 못 받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Q. 그럼 개인적으로, 린드로서 앤1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최태이 되게 궁금합니다!
이예슬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린드 로서는 정말 저 스스로가 부끄러웠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보면 어른이랑 아이가 싸운 거잖아요. 그리고 앤과 처음 만나서 했던 말이 못생겼다는 막말이었기도 했고, 앤이 집으로 떠난 뒤로 마릴라와 이야기를 하면서 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스스로 되게 부끄러움과 잘못을 느꼈거든요. 그 순간 그냥 바로 내가 더 미안하다. 다 큰 어른이 너를 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 감정들과 생각들이 가득했을 거예요. 그래서 앤이 왔을 때 "내가 너를 품어주지 못하고 너에게 그런 막말을 했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난 이제 마릴라가 네 편이라는 걸 알았으니 나도 네 편에 서겠다. 우리 마을에 온 걸 환영한다."라고 말을 해줄 것 같아요.
최태이 되게 뭔가 와닿네요. 환영한다는 말이요.
Q. 사실 작품 속에서 앤1이 린드의 사과를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지금 이 말을 들었으면 조금 다르게 다가갈 것 같다.
최태이 사실 이런 대화는 처음 해봐서 저에게 더 크게 다가오네요.(웃음) 린드 부인에게 장난스럽게 사과를 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예슬 전 태이가 다 느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최태이 이게 직접 듣는 거랑 느끼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요. 언니의 입으로 전해 들으니까 더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이예슬 다행이네요. 이런 자리가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Q. 첫 무대, 부담감은 없었을까? 긴장감은?
이예슬 사실 저희가 부산에서 공연을 먼저 했었거든요. 풀 버전은 아니고 단축된 버전으로 이미 공연을 한 번 하고 올라와서 어떤 긴장감이나 부담감은 그곳에서 해결하고 올라왔어요. 물론 첫 공연이라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저 나름대로 기분 좋은 긴장감이어서 되게 재밌게 첫 공연을 했었던 것 같아요. 아 어떤 부담감도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 공연이 지난 몇 년 동안 공연되어왔고 공연을 알고 있는 팬분들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 잣대가 높다고 들어서 제가 그걸 채우지 못할까 무서움 반, 기대감 반, 부담감 반이 함께했던 것 같아요.
최태이 떨렸어요. 저도 비슷한데요. 아무래도 그동안 봐왔었던 앤 1이 아닌 저나 수민이는 새로운 앤 1의 모습인데 우리가 표현하는 앤 1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궁금했고 부담감이 있었죠.
이예슬 사실 연출님이 용기를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었고, 다들 잘 표현해 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사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그냥 열심히 작품에 임했던 만큼 그냥 그대로 무대에 올라갔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다들 큰 사건사고 없이 문제없이 첫 공연을 잘 끝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태이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넌 최고야!"
이예슬 태이가 너무 앤 같은 아이입니다...
Q. 캐릭터와 잘 맞으면... 좋은 거니까
이예슬 예. 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외적인 것도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뮤지컬이라는 건 종합 예술이잖아요. 보는 것도 포함되는 예술이거든요. 그런데 그냥 뭐라고 말할 것 없이, 태이를 보고 있으면 그냥 앤이에요. 얘가 앤을 안 하면 누가 앤을 해? 할 정도로 앤 같달까요. 그런데 얘가 세 번이나 떨어졌다고 하길래 되게 놀랐어요.
Q. 그래도 결국에 만났으니 된 게 아닐까 싶다.
최태이 네, 결국 만났죠.(웃음)
Q. 두 사람이 추천하고 싶은 장면 혹은 넘버는? 모든 장면들이 다 좋고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면을 다 놓쳐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하는 장면이나 넘버를 추천해 보자
이예슬 일단 제가 나오는 건 제외하고, 제가 나오는 장면에서 고를게요. 저는 '그 앤 달라1'요.
최태이 왜요?
이예슬 왜냐하면 그 매슈가, 몇십 년 동안 그렇게 바뀌지 않고 살아오던 사람이 앤을 만나고 나서 변화하기 시작하는 그 모습이 그 노래에 다 들어가 있거든요. 우리 작품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노래라고 봐요. 그 변화가 앤에게서도 일어나거든요. 그리고 앤은 매슈를 통해서 그리고 마릴라와 린드를 통해서 사랑을 알아나가고 그걸 받아들이면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중요한 넘버라고 생각합니다.
최태이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 누가 앤이야'입니다. "누가 앤이야, 내가 앤이야, 우리가 앤이야" 앤이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우린 모두 사실 장난꾸러기고 순수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두려워하고 사랑받고 싶어 해. “우린 찌르면 아프고 칭찬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하는 다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로 들려서 늘 위로받게 됩니다.
이예슬 우리 작품의 주제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다 담겨있는 넘버거든요. 그리고 제일 길어요. 가장 중요하면서 우리 작품 속에서 가장 긴 넘버죠.
최태이 오프닝과 마지막 엔딩에서 부르는데, 한번 더 각인시켜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 내용을 보고 공연을 보신다면 ‘누가 앤이야’ 넘버가 다르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저희가 가사 전달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이어서 그럼 요즘 공연을 하면서 울림이 있었다 하는 대사가 있었다면
최태이 매슈가 하는 대사 중에 "앤 네가 아래층에 내려오지 않으니 내가 퍽 쓸쓸하다는 거야”라는 말을 해요. 나의 빈자리를 느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결국 매슈의 말로 인해서 사과를 하기로 마음을 먹거든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있다는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그를 더 이상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대사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어요”라는 대사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건데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건 참 아름다워요.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그 끝엔 늘 깨달음이 있거든요.
이예슬 저는 제 대사 중에서 뽑자면 마지막 부분에 제가 유일하게 차분하게 말을 하는 게 있거든요. 앤에게 "우리 앞으로 마릴라에게 신경을 좀 써야겠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시력을 다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원래 대본에 있는 건 그냥 앞으로 마릴라에게 신경을 좀 써야겠다로 시작을 하거든요. 그때가 사실 제가 극 중에서 앤3이랑 제대로 얼굴을 맞대어 보는 장면인데, 극 중에서 제가 혼자 하는 대사들이 많은데 마지막에 딱 마주쳐요. 앤3이 항상 거의 눈물을 참고 있는데 거기에서 제가 딱 앤에게 마릴라에게 신경을 좀 써라라고 말하는 게 뭔가 책임을 전가시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라는 말을 붙였어요. 우리. 한 단어가 들어갔는데 느낌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우리 같이 이제 신경을 쓰자"라는 말이 앤3에게는 내가 네 옆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이겨내자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대사인 것 같아서 그 대사를 되게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되게 울림이 있어요.
Q. 인터뷰는 보는 관객들 또한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 같다.
이예슬 그럼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저 길모퉁이를 돌면 나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예슬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배우들의 꿈이랄까요. 더 성장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더 좋은 작품들을 하고 싶다는 꿈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줬던 적이 있어요. '저 길모퉁이 앤'이라는 곡을 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가 그날 되게 힘들었던 날이었나 봐요. 저를 보자마자 엄청 울더라고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다고 했었는데, 연습을 시작하고 가사를 보고 노래를 부르던 이 친구가 방긋 웃음을 짓더라고요. 그때 이 친구랑 같이 손을 잡고 저 길모퉁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어요. 나는 그 길에 있는 모퉁이가 정말 날카로울 수도 있고, 굉장히 부드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세상이 있을지 모른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두려움에 휩싸여 안 좋은 생각으로 그 모퉁이를 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면 더 밝은 세상, 밝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지금 힘들다고 해서 지쳐서 쓰려지지 말고 더 좋은 세상,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모퉁이를 돌아보자. 그렇게 나아가보자고 말을 했어요. 저도 사실 지금까지 그 모퉁이를 다 돌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엄청 많이 울었고, 힘들고 피곤하고 지쳐있지만 지금도 그 모퉁이를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거든요. 밝은 내일이 있다!라고 정의를 할 수 없지만 저는 지금보다 한층 밝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뮤지컬 배우로서 더 성장한 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을 바라고 있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태이 저는 사실 매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온 세상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저 길 모퉁이앤” 가사처럼 저도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슬픔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두려워했어요.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슬픔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제보다 성장한 나, 나를 다시 일으켜줄 희망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는 좌절하지 않았어요. 한 걸음 더 내디뎠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용기를 내어서 삶을 살아가는 거요.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낸다면 모퉁이를 돌았을 때 이따금 풍요로워진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뮤지컬 배우 이예슬 프로필
2021년. 뮤지컬 <앤ANNE>. 린드&필립스 役
2021년. 뮤지컬 <우리벗아>. 정하늘 役
2021년.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김나진 役
2020년. 뮤지컬 <고스트 메모리>. 영호 役
2020년. 뮤지컬 <삼월의 그들>. 수입 잡화점 사장 役
2019년. 음악극 <너의 역사>. 장윤임 役
2019년. 뮤지컬 <So What>. 일제 役
2018년. 오페레타 뮤지컬 <판타지아>. 블랙 役
2018년. 뮤지컬 <유섬이>. 연정 役
2018년. 현대 음악극 <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役
2018년. 뮤지컬 <너 그리고 별>. 성미래 役
2015년. Opera <Le Nozze di Figaro>. Babarina 役
뮤지컬 배우 최태이 프로필
2021년. 뮤지컬 <앤ANNE>. 앤1 役
2019년. 뮤지컬 <친정엄마>. 세라 役
2018년. 뮤지컬 <미싱>. 소정 役
2017년. 뮤지컬 <넌센스>. 로버트 앤 役
2020년. 단편영화 <인플레이션>. 금주 役
2019년. 장편영화 <잔칫날>. 알바생 役
2017년. 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합창단 役
2020년. 뮤직비디오 장오월 <월정리해변>. 주연 役
사진 촬영 : 이미지훈스튜디오
장소 제공 : 대학로 아이엠 아르띠스타 카페 (서울 종로구 대학로8가길 129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