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삶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인사…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공연리뷰] 삶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인사…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 피터 ksdaily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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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람이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적어온 ‘리스트’가 있다. 죽음을 향한 엄마의 첫 번째 시도가 있었던 그때부터 빛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는 시작되었다. 엄마가 자신의 곁에서 떠나려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시작되었을 리스트는 일곱 살 아이가 만났던 가장 빛나는 것들로 작성된다. 리스트로 인해 엄마가 행복해졌는지 무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맞춤법이 교정되어 아이에게 다시 돌아온 리스트로 인해 엄마가 읽었음을 전할 뿐이다. 엄마의 두 번째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몹시도 모진 말로 엄마에게 화를 낸 주인공이 자신의 방에서 만난 것은 일곱 살 아이가 최선을 다해 작성한 리스트였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로 이어지는 엄청난 양의 리스트는 관객들이 살아가면서 만났을 모든 것이다. 관객참여로 만들어지는 이 극은 주인공의 안내에 따라 리스트를 낭독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리스트에 그날의 관객들이 적은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리스트와 함께 하는 모든 장면들 속에서, 사람이라면 하나쯤 끌어안고 살아감이 분명한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과 원망 따위의 복잡한 양가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은 말한다.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자신의 삶이 유난히 슬프거나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어른의 시간을 사는 관객들은 그 말이 사실일 수는 있지만,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기까지 부모가 어떻게 어느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지 개량적으로 나타낼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모든 시간과 감정에 아주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하기에 관객들은 최선을 다해 엄마를 지키고자 했던 주인공의 노력을 지지하고, 엄마의 우울과 자살 때문에 자신도 엄마처럼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눈가를 시큰하게 만드는 강아지가 모두의 무릎에 놓인 코트의 모습을 한 채 대기 중이고, 인생에 평생 남을 짧지만 인상적인 말을 건네는 수의사 선생님과 할머니가 있으며, 사랑하는 샘을 만날 수 있게 해준 문학 수업 교수님이 멋지게 무대로 등장해 강의를 하신다. 재치 있고 사랑스러운 샘은 주인공이 리스트를 지속시키며 또 한번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두 번의 순간에 등장하며, 또한 아무에게도 건네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보고 싶은 말-“나는 어떤 아이였어요?”라는 말에 언제나 옳은 답을 건네며 모두를 울리는 양말 강아지가 전화를 받아준다. 성글지만 진심을 담은 결혼식 축사와 용기가 필요한 말-“사랑한다”와 “고맙다”를 건네는 아빠 역시 관객석에 있다. 준비된 대사와 무대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말들과 눈빛들이 관객들에게서 무대로 쏟아지며, 무대는 모두의 전 생애로 확장된다.

 

만약, 우리가 긴 일생 동안 단 한번도 절망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그건 오히려 삶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특히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더 큰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엄마가 죽은 것은 너 때문이 아니야, 너는 엄마처럼 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앞으로 나가는 힘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겪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주는 것이다.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우울감에 흔들리더라도, 엄마를 위해 만든 리스트가 성공을 하지 못했더라도, 자신을 위해 다시 한번 리스트를 이어나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에게 보내는 가장 큰 지지이자 응원이 아닐까. 

사람들은 눈빛으로, 목소리로, 행동으로 스스로와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살아가야 한다. 반짝이는 것들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작지만 아름다운 반짝임들로 삶에게 인사를 건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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