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현 문화비평] 사실을 딛고 인간을 상상하라... 뮤지컬 '경종 수정실록'
[윤진현 문화비평] 사실을 딛고 인간을 상상하라... 뮤지컬 '경종 수정실록'
  • 윤진현 연극평론가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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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자되는 ‘팩션’이란 말이 있다. 팩트(fact)와 허구를 의미하는 픽션(fiction)을 결합했다는 것인데 문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운 단어이다. 단어 자체로만 보아도 팩트의 ‘fac’과 명사형임을 보여주는 어미 ‘tion’이 팩트와 픽션에서 당당하게 대등하게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조어(造語) 상식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픽션하고 무관하게 팩트를 다룬 스토리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 경우에는 이미 다큐멘터리(documentary)나 르포르타주(reportage) 같은 훌륭한 사실문학 장르가 있다. 

워낙 ‘픽션’은 ‘거짓’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허구(虛構)의 허(虛)는 공간적 개념으로서 대상이 전모를 드러내지 않아 진실을 확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기에 ‘구조(構)’가 결합한다. ‘구(構)’란 엮어서 인과를 드러내고 이해를 촉구하며 드디어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인간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서 있는 곳에 머물 곳을 짓는 행위와 비슷하다. 한 인간이 어떤 장소에 있다고 상상하자. 이미 살고 있었을 수도 있고 방금 도착했을 수도 있으며 스스로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저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특정 장소에 인간이 있다는 것이고 그곳은 인간에게 이해의 대상이기도 하고 살아야 할 터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그곳에 있는 나무와 돌 등을 사용해서 살 집을 지을 수도 있고 경작할 논밭을 만들 수도 있다. 집을 지을 때, 있는 나무를 잘라서 사용할 수도 있고 나무 옆에 어울리는 집을 지을 수도 있으며 돌을 그대로 쓸 수도 있고 깎아서 쓸 수도 있다. 물론 나무고 돌이고 다 치워버리고 깨끗한 맨땅에 논밭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땅에 있던 흙까지 다 걷어낼 수는 없다.  

즉 ‘허(虛)’는 비어있지만 ‘무(無)’는 아니다. 이 공간은 아직 인간의 해석이 닿지 않은 실체들이 존재하는 곳이며 하여 인간의 생각을 열어주는 지극한 상상력의 공간이다. 즉 ‘허(虛)’에 인간이 더해지는 것이 ‘구(構)’이고 그래서 ‘허구’, 픽션이란 이미 ‘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진실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분석할 때는 이미 있는 것과 예술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을 구분해 보는 것이 유용하다. 특히 역사 소재 작품은 이미 있는 기록과 그 행간 사이에 기록되지 못한/않은 진실 찾기이기에 그 경계를 구분하며 작품의 본의를 파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1778년 정조 2년이 편찬된 「경종수정실록」은 「선조수정실록」과 함께 조선왕조 500년 간 2번밖에 없던 실록 수정의 사례이다. 2번 모두 특정 당파가 실록을 전담하여 치우치고 왜곡된 점이 있다는 이유로 새로 편찬되었다. 경종 때 정권을 잡고 있던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에 노론의 행위가 왜곡되어 있다는 노론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경종수정실록」에서 변경된 사실의 핵심은 노론은 경종에게 충성했으며 왕위 계승은 경종과 영조의 우애와 천명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냉혹한 권력의 속성을 돌이켜볼 때, 경종과 왕세제 연잉군이 형제간 우애가 깊었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형제란 오묘한 관계이기는 하다. 아무리 우애 깊은 형제간에도 은근한 시샘은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원수처럼 불화한 사이라 해도 형언하기 힘든 형제애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굳이 동복, 이복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종수정실록」에서 경종과 왕세제 연잉군이 남들은 알 수 없는 형제만의 우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권력은 개인의 사적 감정을 넘어서는 힘을 갖기 마련이고 서로 한 핏줄로서 우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권력을 택하는 것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자가 자의로 내려올 수 없는 것과 같다. 더욱 경계해야 것은 그럼에도 권력을 갖기 위해 저지른 일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경종의 의문사는 이미 정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사의 배후는 보통 그 사망으로 이익을 얻은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답변된다. 왕세제 연잉군이 그에 직접 가담을 했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결백이 분명하다고 해도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에 기대했던 바는 「경종실록」과 달리 왕에게 불충하고 왕을 겁박하였으며 끝내는 왕을 시해했다는 혐의를 지운 「경종수정실록」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이 무렵 역사극이라면 경종의 모친 ‘장희빈’이나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 소재로 식상한 터에 소재만으로도 참신한 정치극이다. 무엇보다 언제나 신하들의 권력이 왕의 권력보다 왕성했던 조선왕조에서 경종과 연잉군의 우애가 어떻게 방자한 노론, 소론의 당쟁 사이에서 살 길을 찾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은 이 문제적 형제를 극적으로 발견하는 계기로 삼기에 부족하지 않다. 진부한 역사 소재를 답습하거나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판타지들의 사이에서 실존하는 역사인물을 새로이 조망하려 한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중심은 인간이다. 정치나 대의명분, 혹은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충성이나 정절 따위의 제도적 가치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라고 해도, 그것은 헤어날 수 없는 역설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당한 죽음, 말하자면 외관상 자살일 때조차도 사실은 피살이며 죽어가는 이는 생의 갈망과 예찬을 품고 원치 않게 생명을 놓아야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종이 노론과 연잉군의 의도를 알면서도 형제애 때문에 자진하여 목숨을 포기하며 우애 넘치는 유언을 남긴다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 행동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경종수정실록」에서 강변하는 경종과 왕세제 연잉군의 형제애를 이런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이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의 목표라면 노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노론의 귀환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도 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종이 병약하다는 것이 일부 사실이라고 해도 그의 죽음이 의문사로 판단되는 이상, 그의 병약함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 역시 당시 정적들의 관점을 답습한 것이다. 경종이 튼튼하고 힘센 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37세에 사망한 것은 당시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결코 요절은 아니며 모친 장희빈의 실각과 사사 이후에도 세자 자리를 유지하고 아버지 숙종에 병석에 눕자 대리청정으로 조정에 임했던 1717년부터 계산하면 7년 이상을 정사에 관여했다. 지지세력이 약했던 점을 감안하면 ‘병약’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왕’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극적 효과를 위한 각색이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대한제국 일본 낭인의 범궐이 있기 전까지 정상적인 상태에서 왕궁에 자객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컨대 각색에는 ‘있을 법한’ 개연성이 언제나 고려되어야 한다. 

차라리 두 형제가 피터지게 싸우며 이 과정에서 경종이 연잉군을 제거하려 했으나 연잉군은 정치적 능력으로 형의 처벌을 피했고 경종 또한 끝내 살아남고자 했으나 결국은 연잉군에게 패퇴하여 사망하였으되 마지막 순간에 동생을 위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 ‘수정실록을 만들자 할 것이나 절대 들어주지 마라. 그것을 들어주면 노론이 너조차도 삼키려 할 것’이라는 유언을 남겨 왕족으로서의 공동 운명과 왕으로서의 경쟁 관계를 동시에 환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역사는 끝없이 현재와 대화하며 끝없이 선악시비, 가치를 재정립하고 예술 또한 끝없이 상상력으로 사실을 만난다. 이는 모두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인간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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