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평행우주에 얹은 두 명 아니 네 명의 사랑이야기…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공연리뷰] 평행우주에 얹은 두 명 아니 네 명의 사랑이야기…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 피터 ksdaily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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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여자와 남자가 있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며 별을 바라보는 여자-제이와, 그 별을 바라보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은기. 은기는 제이의 꿈을 응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가 우주에 가지 않고 자신의 옆에 있게 해달라고 별똥별에게 기도한다. 평소처럼 보통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우주비행사가 되었다며 1년 정도 떠나 있을 것이라고 은기에게 말하는 제이. 그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은기는 제이와 크게 다툰 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집 밖으로 향한다. 초조하게 집에서 은기를 기다리는 제이를 남겨 둔 채, 은기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다툼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제이와 은기는 그들이 평소에 매일 같이 보냈던 이토록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될까. 

사랑을 말할 때 아주 흔한 말이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이하 이보통) 역시 그 문장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장면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그들은 이제 엇갈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모두 예견된 일이다. 사랑은 소유를 부르며, 소유는 다툼을 부른다. 190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뮤지컬 <이보통> 역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꽤 쉽지 않음을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이토록이나 한치 앞을 알 수 없이 위태롭다. 하지만 그 위태로움을 걱정하고 대비하며 사랑의 감정에 마음을 주는 연인들이 있을까. 사랑은 현재, 지금 느끼는 감정이기에 사랑이 아닌가. 그러나 뮤지컬 <이보통>은 사랑이 지나간 뒤에 누가, 무엇이, 어떻게 남을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지켜내고 감당할 수 있는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 장면에서 제이는 말한다. 같이 바라보는 별은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그 아주 오래된 빛이 이제서야 우리에게 도착한 거라고. 지금은 저렇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저 별은 모두 허상이라고. 그리고 첫번째 반전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언젠가 그 별은 우리 눈에서도 사라지게 될 것임을 이야기한다. 뮤지컬 <이보통>의 헤드 카피이자 공연에 등장하는 대사, '진짜 별, 진짜 빛, 진짜 나'는 는 관객들에게 웹툰에서부터 뮤지컬까지 공통되게 가지고 있는 주제인 사랑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주비행사가 되어 떠나려는 제이와 그 사실을 통보받은 은기의 다툼 뒤, 이 극은 관객들이 알게 모르게 훌쩍 무대에서 은기를 사라지게 만든다. 교통사고 효과음과 함께 무대를 가로지르는 강렬한 조명 한 줄기, 연이어 복제로봇의 탄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상과 넘버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복제인간 은기는 다시 한번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제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교통사고의 그날을 끊임없이 악몽으로 떠올리는 은기에게 공감하며 재치있게 위로하는 제이의 이야기는 뮤지컬 <이보통>의 전반부에서 특히나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다. 물에 빠져 큰 회오리가 자신을 덮칠 때 그 물 속에 잠식되지 않고 헤엄을 쳤다는 제이. 제이는 자신이 헤엄을 치자 커다란 물방을들이 아주 작은 물고기들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돌고래 별자리가 작은 물고기의 형태로 가득찬 바닷 속 영상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둘. 이 곳에 관객들이 마주할 첫번째 반전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 은기와 같은 악몽을 꾸는 제이가 자신이 어떻게 그 악몽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대사에 이어 무대에 펼쳐지는 돌고래 별자리 영상과 마냥 사랑스러운 커플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기 전에 제이의 대사들을 꼭 유심히 들어보기를 권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은기를 잃고 평행우주 그 어딘가에 존재할 은기를 찾아 떠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제이의 애도와 사랑만큼이나, 돌고래 별자리 영상과 함께 8번 넘버 <악몽partⅡ>가 흐르는 장면 속 둘이 주고받는 감정 또한 주목할만하다. 악몽에서 헤쳐나오는 방법을 은기에게 말해준 제이 역시 실은 복제인간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첫번째 반전을 만나는 순간 이 장면의 의미는 더 확장되어 관객에게 다가간다. 

 

복제를 한 인간과 복제된 인간 중에 무엇이 진짜인지, 그들은 누구를 사랑한 것인지 찾아가려는 과정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작은 같은 존재였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넷을 통해, 사랑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지 보여주며 결국 평행우주는 제이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이곳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음을 관객들에게 말한다.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둘이 함께 공유했기에 특별해진 돌고래 별자리는 사랑의 과거, 현재, 미래 즉 사랑의 시간과 모습을 전하는 여러 장면에서 영상과 조명, 소품으로 다양하고 일관되게 사용된다. 이렇듯 뮤지컬 <이보통>의 무대 위에 적시적소에 사용되는 영상들과 그에 어울리는 조명은 특별할 것이 없는 텅빈 무대를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곳부터 우리가 만날 수 없는 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로 표현한다. 재연에 새롭게 합류한 김태형 연출이 얼마나 이 작품에 기민하게 접근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악몽의 밤들 속에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는 그 행복한 시간들 가운데, 진짜 여자-제이가 나타난다. 그 순간 엄청난 혼란에 빠진 남자-은기가 내뱉는 모든 대사들은 무대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과 일치할 수밖에 없다. 은기가 만났을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관객들 역시 빠지는 것이다. 무엇이 사랑인지, 이들이 사랑한 대상은 과연 누구였는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고 떠날 수 있었는지 시작부터 끝까지 혼란스러운 순간을 경험한다.

나는 과연 누구를 사랑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뮤지컬 <이보통>에서 복제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두번이나 등장하는 반전들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기억, 사랑하는 이와 똑닮은 외모 그 모든 것을 가진 이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일 수 있는가. 이 말도 안되는 질문은 도플갱어나, 복제로봇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2021년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추상적인 질문임이 분명하다. 연인들이 커피숍에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 자칫하면 싸움으로 이를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질문일 수도 있다. 뮤지컬 <이보통> 속 낯설지 않지만, 꽤 낯선 복제인간과 평행우주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첫번째의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여, 이 작품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관객이 찾을 수 있도록 두번째 질문까지 나아간다.

나는 현재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 나는 사랑이 끝난 이후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같지만 같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제이처럼 평행우주를 꿈꿔보지 않았더라도 관객들은 연인을 잃고난 후의 제이가 한 선택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존재인 복제인간을 포맷하지 않은 것과, 자신을 두고 떠난 복제인간 은기의 포맷은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듯한 복수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 같이 있는 이 순간이 서로에게 '진짜 별, 진짜 빛, 진짜 나'가 될 수 있음을 내내 말했던 제이는 결국 자신이 계속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자 진실을 만난다. 자신이 만들어낸 복제인간 둘 역시 진짜라는 것을, 함께 한 시간과 선택들이 모여 진짜를 만든다는 것을, 자신이 평행우주 속 은기를 찾는 시간을 통해 일년 동안 은기를 떠나보내고 되찾는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곳에서 자신과 은기를 꼭 닮은 그 둘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해 제이는 그제서야 안도했을 것이다. 

진짜 별을 찾아 헤맨 1년, 진짜 빛을 찾기 위해 보이는 것을 부정하려고 했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보내고 나서야 제이는 진짜 나를 만난 것은 아닐까.
 “그 어딘가에서 너와 나,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내가 봤어. 그러니까 나는 너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애도할 거야.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오롯이 무대에 혼자 남아있던 제이에게, 그리고 은기와 제이처럼 엇갈리고 재회하며 길을 걷는 이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보낸다.

 


 

창작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2021. 09. 14 ~ 2021. 21. 21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

은기 役 손유동 정휘 신재범
제이 役 최연우 강혜인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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