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좋수다" 시네마 천국 꿈꾸던 헐리우드키드 삶...해외 영화제 출품 요청 쇄도
"제주가 좋수다" 시네마 천국 꿈꾸던 헐리우드키드 삶...해외 영화제 출품 요청 쇄도
  • 조경호 기자
  • 승인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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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남한강영화제 최우수상 수상 '제주가 좋수다' 제주의 사계 소개
시네마천국을 꿈꿨던 헐리우드키드 韓의 고향 제주 낙향기 담아내
(사)제주마을진흥원과 제주 풍습과 문화를 영상에 담아 후손 위해 남길터
한영남 감독
한영남 감독

제주도의 사계를 담은 아름다운 영화 <제주가 좋수다>가 국제 단편영화제에 출품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제주가 좋수다>는 경기도 여주시영화인협회(정귀영 회장)가 지난달 10월 20일에 개최한  '제7회 여주 남한강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한영남), 촬영감독상(김민주) 등 3관왕을 받았다. 당초 7월 개최될 예정이던 영화제는 2차례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때문에 연기되면서 10월 20일 비대면으로 열렸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서귀포지부가 제작한 <제주가 좋수다>는 제주도의 사계를 배경으로 낙향한 영화감독이 고향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섬인 시칠리섬을 배경으로 제작된 <시네마천국(Cinema Paradiso)>이 드라마적인 기법을 사용했다면, 한영남 감독의 <제주가 좋수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제주의 아름다운 사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시네마천국>의 주인공 토토처럼 한 감독은 젊은 시절 영화가 좋아 서울로 떠났다가 배우로 활동하다가 80년대 후반 고향으로 귀향한다. 지역에서 미술과 영화를 병행한다.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면서 결혼식 출사, 신혼여행 사진 촬영 등으로 생활고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은다. 

충무로 영화계 인사들과 오랜 교류를 맺어온 것이 계기가 돼서 90년대 이후 제주 촬영 온 TV드라마, 영화 등 로케이션 매니저로 활동한다. 

그렇게 해서 투명카악으로 유명한 서귀포의 쇠소깍을 알린 것도 그다. 영화<비적비연수> <이재수의 난> 드라마<올인>의 촬영자로 유명한 섭지코지도 그가 찾아 낸 촬영장소이다.  이후 한영남 감독은 영화와 드라마에 적합한 촬영 장소를 개발하면서 제주도의 10대 비경을 카메라에 담아 제주의 아름다움을 국내외로 알리는데 한 역할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제주가 좋수다'가 여주남한강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선정된데 축하한다.

▶한영남 감사하다. 제주는 고향이자 어머니의 품이다. 젊은 시절에 영화를 한다고 서울에 올라가서 지냈다. 처음 영화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두용 감독의 '지옥의 49'등에 출연했다. 제주도 로케한 영화'애마부인'에 현장로케이션을 담당한 것을 계기가 돼서 고향이 내려왔다. '이재수의 난'을 비롯해 수십여 편의 참여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란 사람은 정말 아무엇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자전적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제주가 좋수다'는 재수가 좋은 것 같다. 

Q: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 달라.

▶한영남 제주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제주 사람들 속에 내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나를 중심으로 그렸다. 저희 어머님은 김만덕 할망과 같은 사람이었다. 60년대 서귀포 일대의 밀감을 입도선매하여 서울에 올라가서 도매상에 팔았다.  1970년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남양호가 침몰하면서 가산이 기울었다. 80년대 서울로 올라갔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다. 영화계에 몸을 담았다. 현실에서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런 연고도 빽도 없는 제주도 촌놈이 충무로 영화계에서 살아남기 여간 쉽지 않았다. 힘들었다. 춥고 배고팠다. 그런던 차에 제주도 로케이션 영화에 현장 진행을 맡은 것을 계기가 돼서 다시 고향에 내려와서 살게 됐다. 고향에 내려와 결혼도 하고 생활하다보니 다시 영화를 하기 쉽지 않았다. 배우협회, 촬영협회 등의 옛 동료들이 영화를 다시 하자는 제안을 했고, 덜컹 제주도 서귀포영화인지부를 맡게 되면서 다시 영화를 하게 됐다. '제주가 좋수다'는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이다.

Q:'제주가 좋수다'가 헐리우드 키드와 같은 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제주사계에 담았다는 게 영화심사의 평이다. 

한영남: 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실제는 아픔이 많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제주는 일제 강점기 전쟁과 수탈의 전초기지였다. 해방 이후 좌우 이념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치열했다. 4·3사건을 보면 이념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알수 있다. 당시 민간인 희생자만 14,442명이다. 해군기지 건설로 시작된 강정마을에서부터 제2신공항 건설 까지 첨예한 지역개발과 관련한 갈등에 연속이다. 나는 제주를 사랑한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에 귀향한 헐리우드 키드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갈등 해소와 세상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달라졌다. 말은 서울로, 사람은 제주도이다. 

Q: 70년대 후반부터 배우, 촬영감독,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한영남 영화계는 선후배간 규율이 센 집단이다. 첫 출연영화인 이두용 감독의 '지옥의 49일'촬영을 위해 49일 동안 을릉도에 머물었다. 이른바 '으악새' 로 불리는 액션배우 수십명이 출연하고 있어 어느 촬영 현장보다 규율이 엄격했다. 선배의 빨래는 물론이고 빠다(몽둥이)도 예사였다. 그런 와중에도 선후배간 유대감이 형성됐다. 마치 전쟁터를 함께 다녀온 전우애 같은 것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열풍처럼 번졌다. 당시 나는 서울역 인근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했다. 낮에는 충무로에 있고, 밤에는 잠자리를 제공 받을 수 있어 DJ생활을 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음악다방 특성상 따뜻한 잠자리를 찾아 온 운동권 학생에서부터 남대문 지게꾼, 깡패, 소매치기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군상을 보면서 이것을 영화로 옮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했던 적이 있다. 

Q: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

한영남: 제주도는 문화 불모지이다. 제주 태생 문화예술인은 많다. 제주의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한 문화예술인들이 서울을 비롯해 해외까지 나가 활동하고 있다. 나는 제주를 지키며 제주가 문화예술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영화를 만드는데 제주마을문화진흥원(이사장 안정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제주마을문화진흥원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도시 제주마을'만들기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마을은 마을답게 지키고, 향토문화는 보존 활용하면서, 마을의 가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Q: 향후 구상은.

한영남: 제주마을문화진흥원과 함께 잊혀지는 향토 문화를 비롯해 해녀문화 복원하는데 앞장 설 계획이다. 제주는 육지와 달리 풍속과 환경이 다르다. 결혼식, 장례식 등 풍습과 문화가 독특히다. 일례로 각종 경조사에 겹부조를 한다. 가족단위가 아닌 개개인 단위로 부조를 한다. 형과 동생을 알고 있다면 각각에 부조를 한다. 이러한 제주도만의 독특한 풍습이 사라지고 있다. 전통 결혼식, 장례식 등에 문화를 영상으로 옮겨 후세들이 교육용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제주에는 매년 마을 포제를 지내고 있다. 몇년 전 제작한 '신효마을포제'가 지역 영화제에서 수상한바 있다. 제주도에서만 볼수 있는 전통 풍습을 복원하는데 제주마을진흥원에 도움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의 삶을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원희룡 전 지사의 장인이신 '해녀연구가'인 고 강대원 옹 씨가 쓴 '제주해녀'를 바탕으로 한 영화<해녀>에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주도 어머니들의 강인한 삶을 담고자 한다. <해녀>는 단순한 영화 이상을 넘어 세계인에게 어머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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