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70회 두 남자 스토커
[과학추리 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70회 두 남자 스토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1.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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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수지와 장주석이 함께 사적인 원한으로 얽힐 일이 있겠는가?”

내 말에 그는 또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 때 냉면이 들어왔다.

큰 놋그릇에 얼음이 둥둥 뜨고 듬성듬성 묵은 김치가 섞여 군침이 저절로 돌았다.

“드시면서 제 얘기를 좀 들어 보세요.”

유성우가 나한테 젓가락을 건네주었다.

“오민준과 장주석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어. 그런데 한수지를 둘러싸고 두 사람이 쟁탈전 같은 일을 벌였나?”

나는 유성우가 얘기 하려는 내용에 불을 붙이기 위해 짐작하고 있던 말을 먼저 꺼냈다.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에 유치한 게임이 있었지요.”

“유치한 게임이라...”

나는 호기심을 갖고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까놓고 말하면 오민준이나 장주석은 한수지의 발밑에도 못 갈 위인들이지요. 제 분수도 모르고 으르렁거렸다고나 할까요?”

유성우는 이 대목에 이르러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격이 차분해서 좀체 열을 올리지 않는 유성우가 이 일에는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수지는 저 이외의 남자는 전혀 흥미를 갖지 않은 여자입니다.”

“오호,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장담할 수 있어?”

내가 약을 올릴 셈으로 다음 말을 곧바로 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으면 죽음을 막았어야지.”

“결혼을 하자고 했지만 제가 공직에 있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중동 지역에 비밀 요원으로 파견될 것 같아서 연기를 한 것이... 그게 천추의 한입니다.”

유성우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옛날 용어를 가끔 썼다.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수지가 죽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침 함께 휴가를 얻은 날이라 서울 북쪽으로 데이트를 갔습니다.”

“한수지랑?”

“예.”

“서울 북쪽이라고?”

“예. 자유 로를 따라 임진강 쪽으로 가다가 통일 전망대를 구경하고 임진각에서 점심을 먹고 자유의 다리를 보고나서 판문점까지 갔습니다.”

“무슨 데이트가 안보 교육하러 다닌 것 같네...”

나는 유성우와 한수지의 데이트코스에 흥미가 당겼다.

그런 코스는 지방에서 올라온 노인들이나 다니는 곳 아닌가.

“제가 공직에 봉사하느라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요다음에는 땅굴을 보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유성우가 미국서 휴학을 하고 귀국해서 군에 입대했다는, 보기 드문 애국 청년이라는 말을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또한 첨단 과학 분야의 박사 학위도 있는 전문가가 정부 정보기관에 가서 복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기 드문 의지의 청년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젊은이라면 한수지를 데리고 통일 전망대며 임진각에 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때 수지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지는 오민준과 장주석 사이에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유성우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표정이 어두웠다.

“오민준이 스토커 수준으로 한수지를 쫓아다녔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밤에 잠자는 시간 말고는 항상 한수지가 자기 눈에 보이거나, 소재를 파악하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병적인 스토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두 남자가 스토커 노릇을 했는데 어떻게 이상한 캡슐을 먹는 것은 막지 못했을까요?”

“그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한 짓일 겁니다.”

“으? 그게 정말이야?”

유성우는 엄청난 말을 쉽게 던졌다.

전에 권익선도 오민준을 의심한 일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그날 한수지는 오민준과 장주석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빨리 결혼을 하자고 했습니다.”

오민준, 권익선, 유성우가 모두 한수지가 자기 여자라고 주장을 하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정작 당사자가 죽고 없으니 누구의 여자였는지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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