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현 문화비평]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며... 뮤지컬 '박열'
[윤진현 문화비평]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며... 뮤지컬 '박열'
  • 윤진현 연극평론가 칼럼리스트
  • 승인 2021.09.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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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세계의 이념은 세 가지 색깔로 설명할 수 있었다. 볼셰비즘의 붉은색, 에스페란토의 녹색, 아나키즘의 검은색이다. 볼셰비즘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듯하나 혁명과 투쟁의 붉은색은 여전하고 공통 언어를 통한 에스페란토의 사해동포주의의 이상 또한 잊혀져가고 있지만 평화운동, 생태환경운동이 녹색을 계승했다.  

그렇다면 아나키즘(anarchism)의 ‘검은색’은 어떠한가? 이제 어느 하늘에서도 검은색 깃발은 볼 수 없다. 아나키즘의 이상은 완전히 종료된 것일까?

2017년에 영화 <박열>이 개봉되었을 때, 잠깐 의외라 느꼈었다. 다만 제작사가 박열 관련기관이라 듣고 1974년 72세로 북한에서 사망한 박열을 기억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뮤지컬 <박열>이라니, 사라진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을 문득 만난 것 같았다. 아나키즘의 깃발은 여전히 불온하고 그래서 여전히 가슴 설레는 불안이다. 

아나키즘을 흔히 ‘무정부주의’로 해석하지만 이는 아나키즘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부정을 의미하는 ‘an-’과 지배를 의미하는 ‘archy’가 결합된 아나키즘은 번역어가 적당치 않다. 굳이 축자적으로 설명한다면 ‘무지배주의’, ‘무통제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지배하고 지배 받는 구분이 없음을 의미하며 통제하려고도 통제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 상태의 지향이다. 정부나 국가는 물론, 자본, 종교, 도덕, 인종, 성, 나이와 같이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모든 존재나 이념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며 개인의 절대적 평등을 전제로 자유와 정의, 형제애를 향하는 위대한 저항이다. 얼핏 듣기에도 그 이상이 너무 드높아 도대체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외부의 적 이상으로 각 개인이 자신의 내면과 가치, 사상과 싸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이 한국에서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어 쓰인 것은 아나키즘이 수용되고 활약하던 일제강점기, 정치적 지배가 식민지 조선민중을 억압하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격화된 특이한 왕조와 그를 둘러싼 강력한 군사번벌세력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던 제국주의 일본에서 인간은 언제나 다만 특정 용도로 규정될 뿐이었다. 국가의 본체를 실권 없는 ‘텐노(天皇)’로 대신하면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다만 ‘텐노’를 위해 몸 바쳐야 할 수단임을 승인하는 사회는 식민지 조선민중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악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 자체로서 인정되고 개인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라는 구상은 다만 변죽만 울리고 있던 그때, 일본이나 조선이라는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해 제국주의 일본에서 가장 혁혁한 저항과 투쟁을 보여준 것이 아나키스트였다.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며

1923년 동경대지진, 폐허가 된 도시에서 흉흉해진 민심을 제대로 달래면서 도시 재건을 위해 힘써야 할 때, 일본은 할 일을 하는 대신 군중의 분노를 자극하여 위기를 넘기고자 하였다. 이때 먹이가 된 것이 조선인과 아나키스트였다. 당시 일본 당국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분노한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던져주었고 한편으로 일본아나키즘 운동의 태두였던 오스기 사카에(大杉榮)을 암살했으며 조선인이며 아나키스트인 박열을 중심으로 ‘대역사건’을 조작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러한 통치스킬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세력에게는 아주 유용한 것이다. 군중의 관심과 분노를 엉뚱한 것으로 돌리면서 한편으로는 공포를 조장하며 통제를 내면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열 대역 사건’은 일제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감옥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들은 굴종하지 않았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상식과 달라 대중의 관심과 이슈를 모았다. 이들은 국적과 남녀를 넘어서는 동지적 관계를 꿈꾸었고 일상의 상식과 편견과 선입견마저 적으로 삼으면서 투쟁을 이어갔다. 

그 중심에는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있었다.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계급사회였던 당대 일본 사회에서 기층계급의 젊은 여성이 식민지 조선 청년과 함께 싸우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나키적 실천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몹시 특별하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마치 일본인 여성의 사랑까지 받는 ‘잘난 조선 청년 박열’과 같은 프레임 위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수용했던 혐의도 없지 않았었다.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면서 ‘박열’을 내세우는 것은 이들이 투쟁을 다만 독립운동으로 국한하며 동시에 남성중심적 한계를 노정한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박열’을, 일본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중심으로 이들의 서사를 기억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아나키적이지 않다. ‘사랑’은 대단히 아나키적인 감정이기는 하지만 ‘박열’을 중심으로 ‘후미코’의 사랑을 헌신으로 다루면 당연히 이들 관계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물론 뮤지컬 <박열>에서 ‘가네코’는 작품 내의 비중이나 역할로 볼 때, ‘박열’에 종속된 캐릭터에 그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품 제목을 <가네코 후미코> 또는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이라고 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일제에 대한 옥중투쟁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두 축으로 삼아 극적 사건이 전개되지만 이들의 외적, 사회적 저항을 가능케 한 이들의 내적, 일상적 투쟁은 간과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들 캐릭터는 완급은 부족하고 강인함만이 두드러졌다. 때로 가네코는 사랑에 헌신적인 여성 같기도 했고 때로 입체적인 팜므파탈 같기도 했지만 예민하면서도 진지한 실천가는 보이지 않았다. 부드러움과 조용함이 결여된 강인함은 선동하기는 쉬우나 변화에 이르기는 어렵다.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전히 부당한 지배와 통제에 저항하며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고 제물로 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던 세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하늘 가득히 휘날리는 검은 깃발은 없을지언정 실존을 증거하는 검은 그림자처럼 우리의 삶 속에 실재하는 문제의식으로 남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을 던져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뮤지컬 <박열>이 이들의 삶에 부응하는 발전과 성장을 이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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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살 2021-10-01 12:57:59
꼭 보고 싶네요..뮤지컬.. 좋은 평론 감사 합니자... 어디서 하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