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인지가 바라본 연극 '렁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남자와 여자, 그들이 만나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더 나은 삶, 어쩌면 포기해버린 삶, 아니면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삶. 세상은 넓고 우리 각자는 다른 이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연극 <렁스>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연극 <렁스>는 음악을 하는 남자와 지구 환경에 대한 박사 논물을 쓰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90여 분 동안 오롯이 대화를 통해 극을 이끌어가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시작하고 나서 여자와 남자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 쉴 틈 없는 대사들 사이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적이 느껴진다. 그 사이, 그 정적은 이들의 소통이 끊어진 순간부터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공연장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본지는 올해 첫 작품으로 연극 <렁스>를 선택한 배우 정인지를 만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어떤 인물이고, 이 작품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으로 공연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Q. 반갑다. 본지와 첫 인터뷰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정인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정인지라고 하고, 지금은 연기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올해 첫 작품이지 않나. 작년 공연 이후에 어떻게 지냈나
정인지 <광주> 공연 중반부부터 다른 장르의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 캐나다에서 촬영을 했었죠. <렁스>는 제가 딱 귀국해서 격리가 끝나자 마자 연습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Q. 하반기 작품 일정이 공개됐는데, 하반기 공연들을 기대해봐도 될까
정인지 네 (웃음)
Q. 무릎은 다 나았나
정인지 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새것처럼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 무릎을 많이 쓰거나 아니면 피로도가 심할 때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통증이 올라오기도 해요. 그걸 안고 가야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이제 노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다치거나 몸이 아플 때는 쉬는 게 답이잖아요. 사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쉬어주는 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하는데, 저는 배우고,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쉽게 쉴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상으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그 이전부터 기울어진 곳에 서 있다거나 앉거나 서는 행동들을 반복하면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많이 써왔었고, 그게 부상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작년보다 훨씬 괜찮아졌고 걷거나 뛰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셨는데 괜찮다고 말하고 싶네요.
Q. 연극 <렁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을까
정인지 사실은 촬영이 끝나고 나서 한국으로 복귀한 뒤에 조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공연을 하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렁스>를 시작하게 됐죠. 너무 하고 싶었던 극이었고,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초연 공연을 봤는지.
정인지 초연 공연은 곽선영 언니하고 두섭 오빠가 하는 공연을 봤었어요. 이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이 작품을 생각했는데, 그때 공연이 너무 좋아서 좋은 기억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죠.
Q. 어떤 작품이었나.
정인지 저는 물론 우리 작품에도 마지막에는 누군가 죽지만 어떤 크게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어떤 사이코 패스가 나오지 않거든요. 당시 저에게 크게 다가왔던 건 앞서 말한 이런 내용이 아닌 그냥 일상생활의 우리의 모습과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였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어떤 작품으로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사실 최근 국내 공연들, 창작 공연들이 많이 없잖아요.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에 대한 갈급함 같은 게 있었어요. 연극 <렁스>는 우리와 너무 가까운 이야기였고 이걸 그저 가볍게 다루지도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더라고요.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계속 생각을 해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공연을 봤던 친구랑 공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죠. "걔네는 왜 만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너는 어땠어?" "나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라면서요. 한 작품이 끝났지만,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몇 시간을 이야기할 정도로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더라고요. 그런 작품에서 제의가 왔는데 안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웃음)
Q. 공연을 보는 관객 입장에서 들어와서 연기를 하는 플레이어가 됐을 때 느낌이 또 달랐을 것 같은데. 연습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정인지 사실 극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 여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거에 있어서 많이 부딪혔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끊임없이 대화로 이루어지는 극이다 보니 어쩔 수없이 한 인물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사실 공연을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질문과 의문이 남는 공연이었는데 정작 제가 플레이어가 돼서 연기를 하니까 대사가 너무 많고, 말을 외우는 것도 외우는 거지만 작품에서 의도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앞서 기자님이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작품에서 말과 말, 행동과 행동, 사건과 사건 사이에 어떤 비어있는 공간, 쉼표 같은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 사이를 작가가 의도했고 대본에도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배우의 공연을 봐도 똑같은 부분에서 배우들이 사이를 두죠. 그 사이 이후에 또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달려나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속도감 또한 그 비어있는 쉼표, 그 사이를 위한 장치거든요. 그걸 아셨다는 건 정말 이 공연을 정확하게 보신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 극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치거든요. 쉴 틈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 쉬는 것 같지 않은 쉼표들이 있고, 그 사이가 기억에 남았다는 건 정말 정확하게 보신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이를 지켜나가는 것에 더 많이 집중하려고 했었고,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왜 이 장면에서, 이 말을 하다가 쉬는지를. 그냥 멈추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로서, 이 여자라는 인물로서 이유를 가지고 쉬어야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것이 어떤 이유가 됐건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인물이, 저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쉬는 걸까를 읽고 싶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습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계속해서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 고민들이 많아서 작품 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사실 없었죠.
Q. 비슷한 질문인 것 같은데 어려웠던 부분은
정인지 아무래도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장문의 대사가 어렵진 않거든요. 혼자 한다면 말이죠. 혼자 외우고 혼자 하면 할 수 있는데, 이건 처음부터 끊임없이 상대방과 대사를 주고받아야 하거든요. 문제는 "응, 그래, 아니,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 왜냐하면, 아니 아니라, 아니 아니 맞아" 이런 말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걸 외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어요. 왜냐하면 이건 말을 외운다고 나가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외웠지만 그 이후에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나와야 되는 말들이었거든요. 그렇게까지 외우는 게 아주아주 큰 역경과 고난이었다랄까요. 그래서 연습 때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이런 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연출부에서 배우 안 하기를 잘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죠.(웃음)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너무 많은 대사가 있었습니다.
Q. 흐름이 끊기면 안될 것 같았다. 본 공연은 너무 잘하는 모습을 봤는데 연습 때는 어땠나.
정인지 흐름이 끊어졌던 적이 너무너무 많았죠. 그런데 오히려 대사 같은 경우, 특히 티키타카로 이어나가는 대사는 금방 해결할 수 있거든요. 연습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대사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였어요. 대사는 상대방이 앞에서 맞춰주기만 하면 금방 해결이 되는데 어떠한 상황에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생각이 작품의 흐름과 흐트러지면 아예 멈춰지더라고요. 그래서 여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의 성격, 남자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작년에 작업을 했던 진희 언니가 이번에도 참여했거든요. 그래서 옆에 가서 계속 물어봤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이 장면에서 어떻게 대사를 했고, 라인은 어떻게 가지고 갔는지,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죠. 작품 속에서 여자는 끊임없이 "내 생각은 뭐냐면,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이냐면"이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냥 성격적으로 자기애가 강하고 혹은 사랑을 받고 싶어서 더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런저런 성격들이 총체적으로 합쳐진 사람이 작품 속 여자라는 인물이었고, 저는 이 인물이 얄밉게 그려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런데 얄밉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 자기애가 강한 인물을 그려내는 게 너무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특히 한국, 아시아권의 여자에서 찾기 힘든 모습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코멘트를 받을 때도 "이 여자는 이때 이런 여자였던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대처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이런 쪽으로 받았고 그렇게 이해하고 풀어나갔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멈췄어요. 정말 정말 많이요.
Q. 진희 배우에게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봤던 장면 하나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정인지 극 중에 남자친구와 같이 잠자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여자가 멈추고 나서 내가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이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아이를 갖기 위한 정당한 이유를 찾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여자가 그때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여자는 아이를 임신하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보육 정책은 어떻게 되나' '배란기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정책이 있나' '임신 이후에 아이를 낳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인가 등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여자는 환경에 대해서 고민을 하거든요. 이런 부분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죠.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을 먼저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그 세팅 자체도 그렇고 상황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건 없지만 이 여자가 똑같은 상황에서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벗어나 있어서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되게 조심스러운 말인 것처럼, 굉장히 내가 무서워서 상대에게 이렇게 말을 하기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내뱉는 말이겠거니 했었는데 그렇게 접근했더니 뒤에 대사가 끊어지더라고요. 예를 들면 "두려워, 무서워서 그래" 그러면 "아니, 너도 그렇잖아" 이런 말들이 이 남자를 설득하기 위해서, 이 남자에게 내가 두렵다는 걸 백 프로 전달하기 위해서 대사를 쳐봤는데 그랬더니 다음 대사가 가지지 않고, 흐름이 끊겨버렸어요. 그 뒤에 여자는 끊임없이 다시 이야기를 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잠깐만, 내 말이 뭐냐 하면" 그리고 또 다른 말들을 이어가요. 그래서 연습을 하다가도 진희 언니가 오면 현경 언니랑 같이 가서 이거 이 장면에서는 왜 그런 거냐고 물어봤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물어보고 그럼 언니는 그 장면에서 여자는 이랬을 거야. 아마 여기서 이 여자는 이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저만의 서사를 찾아나가게 됐죠.
Q. 캐릭터의 서사를 구축하는 방법이 있을까
정인지 사실 저는 첫 느낌이 가장 중요해요. 처음 받았던 느낌 그대로 선을 그려두는데 사실 연습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선을 그려요. 그런데 마지막 연습 때 찾아보면 처음 느낌 그대로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느낌을 받으면 그걸 기록해두는 편입니다. 연습을 하면서 그 중심을 생각하면서도 수만 가지로 돌고 돌려요. 이 길로 갔다가 되돌아가기도 하고, 전혀 다른 길을 찾아보기도 해요. 그러다가 마지막엔 결국 원점.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마지막 결승점까지 그어놨던 선을 따라 달려가죠. 그런데 첫 선과는 다르게 아무 많은 미세한 선들이 이 선로를 따라 펼쳐져 있어요. 마지막 연습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많은 부분들을 챙겼구나. 생각했구나 느끼죠. 그리고 대본을 받고 나서 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작업인데 작품 속 이슈들만 따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이 이슈들 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죠. 그리고 제가 맡은 인물에 바이오리듬을 만들어요. 저만의 기승전결을 만드는 편이죠. 그걸 되도록이면 조그맣게라도 수치화 시키려고 하고 나누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어떤 장면에서는 잔잔하게, 또 어떤 장면에서는 제가 그려놓은 한계치에 다다랐을 만큼 격한 반응을 내비치는 그 수치들을 미리 찾아내서 틀을 짜 두는 편이죠. 이번 작품 <렁스> 같은 경우에는 관객들을 잘 모를 수 있지만 장소와 시간이 계속 바뀌거든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장면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나누면서 이슈를 정리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이 여자라는 인물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져서 정말 고민도 많았고 힘들었어요. 대사를 하지 않아도 상황과 시간에 흐름 속에서 너무 많이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예를 들어 독백에 "내가 너를 알기 오래 오래 오래 전부터"나 "그러니까"를 아주 길게 해야 되는 대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게 단순하게 아주 길게 해야 되는 게 아니라 대사들에서 강조하는 말이 정확하게 코멘트되어 있거든요. 이 여자가 이렇게 대사를 하다가도 유독 강조하는 이유가 있는데 배우들은 그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여자 같은 경우에는 그걸 반복하는 말로 강조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정말 더 힘들었죠.(웃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대사에서 "그래, 그래, 그래. 알아, 알아. 그리고 미안해. 알아, 알아"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래그래 세 번, 알아알아 두 번, 그리고 미안해 알아 알아 하는 게 있어요. 처음에 외울 때는 그래 알겠어 하면서 갔었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여자가 왜 이걸 세 번 '그래'를 세 번 왜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대사들에는 '쉼표'(,) 가 정확하게 들어가 있어요. 사실 대본에서 쉼표를 굳이 쓸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굳이 쉼표를 넣어가면서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네 번 반복되는 대사가 있어요. 이것도 하면 할수록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 왜 ㄹ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됐고 그래서 더 놀랐던 것 같아요.
Q. 클럽 신도 어려워 보였는데
정인지 공연할 때 음악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웃음) 사실 정말 재밌어요. 어떻게 보면 쉬어갈 수 있는 웃을 수 있는 장면이죠. 작년에 볼 때는 정말 재밌었어요. 작년에는 남 일이었거든요. 그냥 "우와 멋있다"이런 느낌으로 봤었던 기억이 있네요.
Q. 이 인터뷰를 보는 팬과 관객들이 공연을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인지 알고 봐도 너무 좋고, 모르고 봤어도 신기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공연이 아닐까 싶어요.
Q. 최근 가장 울림을 주는 대사가 있을까
정인지 일단 두 장면이 떠오르는데, 우선은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고 말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 지인이 공연을 보고 여자가 그 대사를 외쳤을 때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아무 잘못이 없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제 마음속으로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 장면을 하면서. 그리고 사실 여자는 그런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어요.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났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보는 입장에서도 큰 충격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쨌든 사랑해"인데 저는 그 '어쨌든'이라는 말이 공연 말미에 가서 혼자 생각해 보게 되는 말인 것 같더라고요. 어떤 날은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내내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 어쨌든이라는 말이 좀 묘하게 다가오더라고요.
Q. 사실 공연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소통' 이었다. 소통의 단절은 문제의 발단이 되는 것 같았다. 여자의 유산 이후 남자에게 했던 말들도, 그에 답하는 남자의 말도. 어쩌면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인지 예리하게 보셨는데요. 그 장면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말이 없고, 그 말에 대답하지 않죠. 사실상 그 두 사람이 그전부터 대화를 하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아니었고, 그런데 둘 중 하나가 아예 말을 멈춰버렸을, 멈춰버린 순간에 부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골은 그로 인해서 더 깊어지게 되죠.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강한 방법으로 소통을 한 건 아니었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소통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건강한 방법의 대화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두 사람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는 게 더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물론 건강하고 영특한 방법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대화를 할 수 있었겠죠. 여자가 말을 하면서 상처를 되게 많이 주거든요. 그랬으면 너무 좋았겠지만 그 부재를 통해서 서로 느꼈을 것 같아요. 누구 하나라도 대화라는 걸 포기했을 때, 서로의 골은 더 깊어지고 관계는 더 걷잡을 수없이 멀어졌어요. 손을 놓쳐버린 연을 다시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 부재 이후로 극의 흐름도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져요. 그래서 저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말을 멈추지 않았던 이들의 소통만큼이나 그들이 가지게 된 소통의 부재, 단절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어쩌면 마지막에 여자가 말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었을까.
정인지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는 거요? 맞아요.
Q. 상대 배우 이미지화를 해보자면?
정인지 딱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자면 동화 배우님은 모찌인형 같아요. 뭔지 알죠? 모찌인형. 그리고 약간 필로우 베개 같은 느낌이고, 의식 배우님은 테디 베어처럼 형태가 좀 있는 곰돌이 같아요. 뭔가 큰 테디베어 인형 같은 느낌이고, 마지막으로 두섭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뭔가 로봇 태권브이 같은 느낌이에요. 남자 애들이 가지고 노는 그런 로봇 인형 같은 느낌이랄까요? 어느 쪽에 포커스를 두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요즘 개인적으로 셋 다 인형처럼 느껴지더라고요.(웃음)
Q. 작품 속 여자를 지금의 내가 만난다면, 배우 정인지 혹은 인간 정인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정인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잘못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닌데,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경우를 피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여자나 혹은 남자들에게 말이죠. 그리고 죄책감 좀 가지면 어때. 잠시 멈춰 서면 또 어때, 그것도 또 그 사람의 모습이니까. 그래서 잠깐 또 울거나. 무언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거짓말 좀 하면 또 어때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데뷔 때와 지금의 나를 보자면
정인지 데뷔했을 때는 앞자리가 1이었고, 지금은 곧 4가 됩니다.(웃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때가 잘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런데 변하지 않은 건 이 일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일이지 무언가 자아실현을 위한 목표는 아니라는 걸 되네이고 있어요. 언제고 직업은 바뀔 수 있고 어느 순간 제가 다른 일을 하면서 "난 이 공연을 보니까 이게 너무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죠. 달라진 건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지 그런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1년 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 는 훨씬 더 잘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