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평론] 6·25로 되돌아간 듯 한 ‘안산 숏컷 논쟁’
[양평 평론] 6·25로 되돌아간 듯 한 ‘안산 숏컷 논쟁’
  • 양평 언론인 칼럼리스트
  • 승인 2021.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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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궁사 안산의 올림픽 3관왕이 놀랍다.

하지만 그의 숏컷을 둘러싼 페미 논쟁은 더 놀랍다. 그 논쟁은 보는 사람들의 세대에 따라 시각이 다를 것이다.

한국전쟁을 체험했던 세대인 나는 그 논쟁에 접했을 때 느닷없이  70년 전의 6·25시대로 되돌아 간 듯 한 느낌이었다.

 그 숏컷이 페미 논쟁을 부르고 그것으로 야기된  정치싸움이 한국전쟁 당시의 포성소리를 떠올리게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나는 한국전 막바지인 1953년에 제작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숏컷 머리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한국 여성의 모습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여성들이 그 헤어스타일을 따랐던 것이다.

당시 신문의 시사만화에도 그것이 소재로 등장했다. 퇴근길의 한 남자가 동료에게 “요즘 여자들 헵번 스타일이라고 미쳐 날뛰는 거 못 봐 주겠어”라는 투로 그걸 비난했으나 막상 집에 와보니 헵번 스타일의 아내가 그를 맞이해서 기겁하는 식이었다.

그 헵번 스타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돼 아직도 많은 여성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으리라.

그런 마당에 여성의 두발이 짧은 게 문제가 된 것이 놀라웠다. 더욱이 궁사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그 방면에 무심한 필자의 경우 그런 논란이 없었더라면 안산의 머리가 긴지 짧은지도 모른 채 넘어갔을 일이다.

그러다 보니 헵번 스타일이 유행한 이후 70년 동안, 그리고 올림픽과 월드컵대회를 개최하는 동안에도 우리 사회의 어떤 의식수준이 정지상태로 제자리걸음만 한 것  같다.

갑자기 21세기 한국의 남성들이 70년 전에 헵번 스타일을 흉보던 만화의 주인공처럼 비치는 것이다. 

물론 그 의식수준이란 두발과 관련된 분야겠지만 그것은 결코 ‘머리털처럼 하찮은’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두발의 변화는 그 나라 역사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정표 같은 구실을 해왔다.
조선인들의 상투를 자르도록 한 단발령(斷髮令)으로 인한 소용돌이가 좋은 예다. 그것은 조선 남성의 모양새만 일변시킨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겨 사실상 조선을 차지하고 여기에 걸림돌이 된 민비까지 죽여도 왕은 말 한마디 못하고 있던 시점에 일어난 그 과정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전의 예비 수순 같은 것이었다.

 그런 굴욕적인 배경을 떠나 조선이 세계의 흐름과 보조를 맞춘다는 개화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여진족이 중국을 차지하자 그들의 변발을 강요해 도처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것도 그 비슷한 맥락의 서사였다.

그런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그 뒤의 역사가 굳건히 발전해 그런 오욕적 기억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페미’

  이번 사태에는 바벨탑 같은 구석이 없지 않다.

안산이 착용한 보호대에 세월호 배지가 달려 있어

그것이 보수세력을 자극해 일파만파의 논쟁이

일어났다는 판단이 그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온갖 잡다한 바벨탑 식 소음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찾기도 어려운 것만 같다.

가수 윤복희
가수 윤복희

그런 각도에서 이번 사건을 보면 한심한 데가 있다. 느닷없이 유신독재시절 젊은 남자들의 장발을 단속한다며 기습을 해 머리털에 바리캉 자국을 내던 시절이 떠오를 정도다.

여기에다 안산이 여대에 재학 중이어서 과격한(래디컬) 페미로 거론된 것도 놀라웠다. 

구세대인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대부분의 대학은 남녀 공학이어서 여대생(coed)은 있었으나 여대생들의 본마당은 여자대학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대학의 학생이 거꾸로 특이한 존재로 거론된 것이 우선 놀라운 것이었다.

그 근거를 찾으려 해도 집히지 않는다.  지난해 성전환자가 숙대에 입학하려다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로 좌절된 것 등이 그런 근거를 뒷받침하는 것일까?

하지만 성전환이라는 초현대적인 현상에는 아직 확립된 규범이 없는 혼란 상태여서 그런 사건은 일어나고도 남을만한 일이다.

 그런 마당에 남녀 공학 대학을 택했으면 무난했을 그 성전환자가 여자대학을 택한 것은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것은 그런 논란을 야기한 여자대학 학생들이 정당했느냐는 판단과는 별개의 사항이다.

그의 입학에 반대한 여자대학의 학생들이 공학대학의 여학생보다 남혐 기질이 더 심한가 하는 것과도 별개의 문제다.

끝으로 이번 사건에서 자주 등장한 ‘페미’가 ‘남혐’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도 거슬린다.

페미 즉 ‘페미니스트(feminist)’는 남혐처럼 공세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빼앗긴 권리를 지켜주자는 뜻의 수비적인 말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잘못 쓰이는 외래어는 하나 둘이 아니지만 시답잖은 논쟁에서 용어까지 잘못 쓰이다보니 새삼 우리 사회가 바벨탑을 쌓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게 한다.

‘페미’라는 용어를 떠나서도 이번 사태에는 바벨탑 같은 구석이 없지 않다. 안산이 착용한 보호대에 세월호 배지가 달려 있어 그것이 보수세력을 자극해 일파만파의 논쟁이 일어났다는 판단이 그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온갖 잡다한 바벨탑 식 소음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찾기도 어려운 것만 같다.

양평. Yang, Pyeoung

-언론인

-칼럼리스트

-한국일보 전 문화부 차장

-서울경제 전 문화부장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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