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칼럼] 한국 대기업은 상속조차 징벌 대상인가?
[이원두 칼럼] 한국 대기업은 상속조차 징벌 대상인가?
  • 이원두 언론인·칼럼리스트
  • 승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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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뉴욕 증시 상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쿠팡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도 김범수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는 못했다. 그의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 대신에 총수로 지정된 것은 쿠팡 한국법인이다. 개인이 총수로 지정되면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과 거래 내역을 공시할 의무가 부여된다. 법인이 총수일 경우에는 계열사 현황만 공시하면 된다. 김범수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못한 데 대해 ‘외국인을 제재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면서 ‘아마존 코리아가 대기업집단이 되었다고 해서 제프 베이조스를 총수로 지정해 한국 법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제재할 수 있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정위의 대기업집단과 총수를 지정하여 규제하는 것은 글로벌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자백한 것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이와 같은 법률을 만든 바탕에는 한국 대기업집단(재벌)이 불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해오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아마존 베이조스 회장은 면책이 되고 한국 대기업 회장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논리다. 대기업집단과 총수 지정 제도가 도입된 것은 한 세대 전인 1987년이다. 지금 우리 경제정책, 공정위 철학은 여기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결과가 이번 쿠팡 김범수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는, 경제계는 IT를 핵심으로 한 디지털 시대로 급속하게 진입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책은 여전히 아놀로그의 칼을 휘두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 여당은 우리 경제의 긍정적 측면이 부각 될 때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자료룰 인용하여 홍보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 통계에는 아예 입을 닫는 것이 상례이다.

지난 3월 30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S는 최대주주변경을 공시했다. 삼성전자는 법정비율대로 분할하는데 합의하여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지분율이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뉴시스

최근에 부각 된 사례로는 고율의 상속세를 꼽을 수 있다. 이건희 회장 별세에 따른 삼성 일가가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무려 12조 원에 이르고 있음이 밝혀져 선진국을 놀라게 하고 있다. 미술품과 일부 부동산은 국가(지방자치체)에 기증한 데 이어 1조 원 규모의 기부를 제외한 유산에 대한 상속세가 12조 원이다. 천하의 삼성 일가도 이를 일시납 하지 못해 5년 분납을 택했으며 상당 부분은 금융권의 대출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 있다. 상속세가 무겁기로는 한 때 세율이 70%였던 스웨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나라 대표적인 기업이 무거운 상속세를 피해 외국으로 나가려 하자 2005년 상속세를 아예 폐지했다. 정부 여당이 자주 인용하는 OECD의 예를 보더라도 상속세율은 평균 27.1%인데 반해 한국은 최고 세율이 60% 나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유리한 것은 글로벌스탠더드, 불리한 것은 한국적인 부조리라는 논리가 언제까지 기능해야 속이 후련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을 옥죄는 법 만들기에는 여념이 없다.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인 줄로 착각한 것처럼. 최근의 대표적인 반기업 법으로는 ‘중대재해법’을 꼽을 수 있다. 하청업체의 안전사고까지 원청업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이 법은 아마도 세계서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법일 것이다. 이 법의 논리대로라면 대형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행안부 장관이나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그 이상의 선에 대해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반론이 성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법에 앞장선 정부 여당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논리다.그러나 총수 지정을 비롯하여 세계 최고율의 상속세 등 ‘한국적인 편견’은 하루빨리 손을 보는 것이 좋다.

그동안 재정을 대폭 풀어 온 선진국은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여 새로운 형태의 세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 대책으로 푼 재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법인세 증세와 새로운 세목 발굴 등, 신 조류의 세제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라 현실에 맞추어 미국은 부유층의 캐피털 게인에 대한 과세를, 영국은 부가세 경감조치의 연장, 유럽연합은 국경탄소세와 플라스틱 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차제에 우리 역시 ‘반기업이 애국의 길’이라는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날 계기를 잡을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대기업집단과 그 총수를 징벌적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 정부 들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사업의 총액이 1백억 원에 육박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정계와 정치인 보다는 경제계와 기업인이 훨씬 더 도덕적이고 애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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