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44화 - 선물의 희극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44화 - 선물의 희극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1.0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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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거푸 위스키를 여러 잔 마셨다.

한영지가 발그레 술기운이 올랐다. 계속 히죽거리며 웃었다. 취기가 약간 돌았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숨기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뭔데?”

한영지는 커피 리필을 주문한 뒤에 입을 열었다.

“나 한창호 사장 딸 맞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해요.”

한창호 딸?

한수지와 한영지의 아버지는 죽은 한창호 회장과 강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자매 아닌가?

그런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한창호의 아내지만 실제로 좋아한 사람은 변하진이었다고요. 변하진 사장만이 아니고 유일선 회장, 조진국 회장...”

“엄마가 굉장한 미인이잖아. 그래서 주변에 좋아하는 남자가 많았겠지.”

“그게 아니고, 내가 한영지냐, 유영지냐, 변영지냐, 조영지냐 그게 문제예요.”

“한영지는 한영지지.”

“ㅋㅋㅋ. 그런가요? 선생님 제가 취한 것 같아요? 아니여요. 말짱해요.”

그렇게 시작된 한영지의 술주정이 계속 되었다.

우리는 12시가 가깝도록 길거리 포장마차까지 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한영지의 보드라운 뺨이 내 가슴에 안겼을 때는

순간이나마 황홀했다.

한영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가는

나는 어쩐지 흐뭇하고 흥분된 기분이었다.

나는 집필실로 들어가 얼른 문을 잠갔다.

이제 안심하고 선물을 꺼내 펼쳐 보았다.

펴놓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옷감이 여자의 살결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아랫도리를 모두 벗고 입어보았다.

촉감이 정말 좋다.

한영지의 방긋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중에는 내가 한영지를 껴안고 택시에 태웠다.

한영지의 보드라운 뺨이 내 가슴에 안겼을 때는 순간이나마 황홀했다.

한영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가는 나는 어쩐지 흐뭇하고 흥분된 기분이었다.

원인은 쇼핑백에 든 선물 때문이라는 것을 집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아차~ 와이프가 이 선물을 보면 어떻게 하지?’

집안에 들어서서야 걱정이 생겼다.

“아이고 웬 술 냄새?”

와이프의 코는 영락없는 개 코다.

“음, 시 쓰는 놈들 만나서 한잔 했어. 시 쓰는 놈들은 모조리 술고래야. 짤막한 글을 몇 토막 밖에 못 쓰니까 나머지 인생은 술로 채워야 하나봐.”

“그 쇼핑백은 뭐예요?”

애먼 시인들을 욕하고 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아찔해졌다.

“어? 이거? 뮤지컬 대본이야. 나보고 좀 읽어봐 달래서. 뭐 보나마나 엉망일 거야.”

와이프는 다행스럽게도 더 묻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나, 밥 먹었으니까 그냥 서재로 간다.”

나는 집필실로 들어가 얼른 문을 잠갔다. 이제 안심하고 선물을 꺼내 펼쳐 보았다.

펴놓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옷감이 여자의 살결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아랫도리를 모두 벗고 입어보았다. 촉감이 정말 좋다. 한영지의 방긋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조그만 거울 앞에 가서 서 보았다. 엄청 멋있다.

‘한영지, 땡큐!’

그때 한영지가 술주정하듯 한 푸념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의 딸이냐?’

그때였다.

도어가 덜컹 열렸다.

“어!”

“당신 이게 뭐야?”

아내가 내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윗옷을 입은 채 아래는 팬티만 입고 있는 것만 해도 이상한 모습인데, 거기다 처음 보는 팬티가 너무 눈에 띈듯했다. 평소 내가 입는 팬티 색깔은 거의가 흰색 아니면 어두운 색이었다.

그런데 푸른색에 흰 물방울무늬를 입었으니 아내의 눈이 둥그레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신 그 팬티 뭐야? 무슨 팬티 길래 그걸 입고 들어왔어?”

“어. 이것...”

변명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밖에서 입고 온 줄 아니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어디 가서 팬티를 바꿔 입고 들어온 거야?”

아내는 딸아이가 들을까봐 아예 문을 닫고 따지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사나웠다.

아내가 그렇게 무섭게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바꿔 입고 온 것이 아니라 새 거야.”

“새 거? 어디 봐?”

나는 팬티를 벗어 주었다.

상표와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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