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43화 - 게임과 위스키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43화 - 게임과 위스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1.0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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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집에 가서 풀어 보셔요. 별 것 아니예요. 그리고 대본 좀 흥행 잘되게 충고해 주세요. 어떻게 하면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선생님의 전공이잖아요.”

한영지는 나한테 준 선물에 대해서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의 팬티를 살 때는 그것이 남자의 무엇을 보호하는 옷인가를 상상 했을 것 아닌가.

자꾸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야릇해졌다.

“대본은 오늘 밤에 다 읽어 볼게. 하지만 대본을 쓴 작가가 싫어하지 않을까?”

“그 대본은 작가가 없어요. 아니 작가가 없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썼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대본이예요. 거기다가 너도 나도 한마디씩 보태서 아주 걸레를 만들어 놓았거든요. 바리톤 함정휴 선생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사모님은 예쁘죠?”

점심을 다 먹고 함께 걸어 나오며 한영지가 팔짱을 슬쩍 끼고 물었다.

한영지의 팔에서 온기가 내 팔로 전해졌다.

내 팔 신경이 갑자기 왜 그렇게 민감해졌을까.

“와이프? 마누라? 집사람?”

“어머, 선생님, 썰렁.”

“집사람으로는 보통여자, 마누라로는 괜찮은 편, 와이프로는 서비스 부족.”

“어려운 낱말 퀴즈네요.”

“한영지가 더 예뻐.”

내가 우리 애 엄마가 덜 예쁘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은 처음이다.

정말 한영지 앞에서 어쩌자는 것인가?

남자의 팬티를 살 때는

그것이 남자의 무엇을 보호하는 옷인가를 상상 했을 것 아닌가.

자꾸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야릇해졌다.

“대본은 오늘 밤에 다 읽어 볼게. 하지만 대본을 쓴 작가가 싫어하지 않을까?”

“그 대본은 작가가 없어요.

아니 작가가 없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썼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대본이예요.

거기다가 너도 나도 한마디씩 보태서 아주 걸레를 만들어 놓았거든요.

바리톤 함정휴 선생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사모님은 예쁘죠?”

점심을 다 먹고 함께 걸어 나오며 한영지가 팔짱을 슬쩍 끼고 물었다.

한영지의 팔에서 온기가 내 팔로 전해졌다.

내 팔 신경이 갑자기 왜 그렇게 민감해졌을까.

“선생님 게임 할 줄 아세요?”

“무슨 게임?”

“전자오락.”

“애니팡 같은 것?”

“예.”

“애니팡은 일등을 여러 번 해 봤지.”

“제일 잘하는 게임은 뭐예요?”

“글쎄...”

“우리 충무로 사무실로 가요. 거기서 게임 한판해요.”

“충무로 사무실?”

“예. 뮤지컬 극단 사무실가서 좀 더 놀아요. 선생님 시간 괜찮죠?”

대낮에 오락 게임을 하러 가자고 하는 것을 보면 철없는 여자 아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좋아. 두 시간만 놀자.”

한영지는 내가 승낙하자 깡충거리며 좋아했다.

우리는 충무로 사무실로 갔다.

비어있는 컴퓨터 두 대 앞에 나란히 앉았다.

“선생님은 무슨 게임 하실래요. 나는 이게 좋거든요.”

한영지가 먼저 시작했다.

“클래쉬 오브 클랜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 이거 무척 좋아하거든요. 선생님은 어떤 걸 주로 즐겨요?”

“나는 캔디 크러쉬.”

“사가? 소다?”

“둘 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세대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혼자 게임을 즐기며 몇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한영지도 뮤지컬 연습이 잘 안 될 때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양이다.

나는 게임은 하지 않고 한영지가 하고 있는 것을 구경만 했다.

대단한 솜씨였다.

구경만 해도 내가 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항영지와 함께 스릴을 느껴 흥분 되었다.

“어머! 어머! 너 그러기야. 어디 맛 좀 봐라. 우와~”

게임을 하면서 계속 지르는 함성도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두 시간은 잠깐 사이에 흘러갔다.

한영지가 컴을 닫았다.

“선생님, 더 하실래요?”

“아니, 이때까지 했잖아.”

“그렇죠? 보고 있으면 꼭 자기가 하는 것 같죠?”

우리는 다시 사무실을 나와 앞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 두 잔을 시켜 놓고 한영지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복잡한 여자예요.”

한영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복잡하다니?”

“선생님 보기에 제가 괜찮은 딸 같아요?”

“그럼. 재능 있고 예쁘고 마음씨 착하고 활발하잖아.”

“그런데 사실은 음흉하고 악질이고... 팜므파탈이예요.”

“왜 그렇게 생각해?”

대답을 않고 있던 한영지가 갑자기 일어섰다.

“선생님, 우리 위스키 한 잔 하러 가요?”

한영지는 내 의사도 듣지 않고 앞장서서나갔다.

바로 옆집이 위스키 바였다.

“자, 오늘은 한영지가 쏠게요. 선생님 한 잔 해요. 이런 날은 마셔야 해요.”

한영지의 이런 거침없는 성격이 오해를 받아 성실하지 못한 여자로 낙인이 찍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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