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모크' 허혜진, "살고자 하는 의지 강한 '홍' 만들었어"
[인터뷰] '스모크' 허혜진, "살고자 하는 의지 강한 '홍' 만들었어"
  • 조나단 기자
  • 승인 2021.0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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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화 연출님의 한마디, 내가 가진 틀 깰 수 있게 만들어
배우 허혜진과 홍 그리고 뮤지컬 '스모크'
"우리 함께 비상할 수 있기를 바라"

한국 근대문학의 모더니스트이자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의 작품을 모티브로 제작된 뮤지컬 <스모크>(제작: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이하 더블케이)가 개막 이후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 속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스모크>는 시대를 풍미한 천재 시인 이상의 생이 타버린 흔적을 뜻하는 ‘Smoke’라는 제목처럼 <스모크>는 ‘오감도’, ‘날개’, ‘거울’ 등 한국 근대문학 사상 가장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을 선보인 이상의 대표작을 무대 위에 그려내고 있다. 또한 초(超)와 해(海), 홍(紅) 등 각 캐릭터들의 감정과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전 시즌부터 함께 해온 김재범, 김경수, 임병근, 강은일을 비롯해 ‘초’ 역에 에녹, 장지후, ‘해’ 역으로 강찬과 최민우, 김태오, ‘홍’ 역으로는 장은아, 이정화, 허혜진 등 이미 가창력과 연기력이 검증된 뮤지컬계 믿고 보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사랑 속에서 본 공연 기간을 다 채우고, 추가로 연장 공연까지 진행하고 있어 아직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들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본지는 '홍' 역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 대극장에서 대학로 무대 위로 돌아온 뮤지컬 배우 허혜진을 만날 수 있었고, 그가 참여하고 있는 뮤지컬 <스모크>와 그의  연기 인생을 잠깐이나마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진행된 인터뷰는 사진 촬영을 제외하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진행했음을 밝힌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허혜진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대학로에 들어온 갓 시작한 새싹 뮤지컬 배우 허혜진  입니다. 

Q. 이번 작품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을까

허혜진  사실 이전에 다른 작품을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작품이 할 수 없게 됐고, 그 과정에서 더블케이랑 인연이 돼서 이번 작품에 대해서 알게 됐죠. 스케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이번 작품 <스모크>의 영상 오디션이 있는데 한 번 봐보겠냐고 하셨고 그래서 급하게 준비를 해서 영상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걱정을 많이 했었고, 회사에서도 쉽지 않은 시도였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홍이라는 캐릭터를 그동안 경력이 많은 배우님들이 맡아오셨었거든요. 회사에선  이번 기회를 통해 틀을 한 번 깨보자는 생각이 있으셨고, 제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술 수 있었고, 한 단계 성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Q. 긴장감과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허혜진  사실 첫 리딩 이후에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잘 할 수 있을까를요. 작품도 너무 어려웠고 대사량도 엄청 많더라고요. 사실 홍이라는 인물이 어떠한 딱 정해져있는 인물이 아니거든요. 굉장히 관념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런 역할이 처음이었고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혹은 그동안 잘 해주셨던 선배님들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주위 선배님들이나 연출님께 많이 질문했던 것 같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연출님이 많이 도와주셨었죠.

사실 처음엔 되게 무섭게 느껴졌어요. 굉장히 포스도 있으시고 연출부터 연기까지 너무 다 잘하시잖아요. 그런데 처음 느낌과는 다르게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떤 장면이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네 생각은 어때" "여기서 홍은 어떨 것 같아?"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등등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러고 보니 최근 작품들을 바라봤을 때 캐릭터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허혜진  <머더 발라드>라는 작품 이전까지는 사실 쇼뮤지컬스러운 작품들을 위주로 했었거든요. 안무가 없던 작품은 <머더 발라드>랑 <스모크>가 처음이었어요. 항상 하는 작품들은 다 안무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어려웠던 점이 있지만, 꼭 하고 싶었어요. 쇼뮤지컬도 엄청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딥한 작품은 드물거든요. 연기나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고 싶었어요.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와중에 대학로 작품들에 참여하게 됐죠. 사실 공연이 없을 때 주위 지인들에게 "적은 인원수도 상관없어, 정말 밀도 있는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 혹시라도 리딩 공연이나 어떤 공연 있으면 나 오디션만 볼 수 있게 해줘"라고요. 사방팔방 말하고 다니다가 연이 닿아 <머더 발라드>를 할 수 있었고, 이번 작품까지도 할 수 있게 됐죠. 

Q. 홍이라는 인물을 소개해보자면

허혜진  연출님께서 항상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스모크는 뜨거워야 한다. 온도가 높아서 끓는 게 아니고 시작과 동시에 이미 100℃를 넘은 시점에서 시작해야 나중에 그게 스모크가 돼서 연기가 된다고"요. 처음에는 저도 기존에 만들어져있던 홍을 연기했었어요. 저도 모르게 넘쳐나는 에너지를 상대에게 주려고 노력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과연 맞는 길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틀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걸 연출님께 말씀드렸더니 "너는 사랑스러운 면이 있어, 생기가 있는 아이야"라고 답해주셨죠.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니 저 스스로도 뭔가 틀을 만들어 뒀고 그게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였죠. 나는 전 작품에서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 역할을 했어, 그러니 이건 어려울 거야 하고요.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아니네 나도 이런 면이 있었네라는 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항상 제가 쌘 역할을 하거나 강한 역할을 해야 할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나도 생기가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그렇다 보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두 언니들보다 조금 더 생기가 있는 홍이 만들어졌어요. 언니들에 비해서 살아온 경험이 깊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생기 있고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홍을 만들게 됐어요. 사실 처음엔 초랑도 굉장히 적대적이었는데 하면 할수록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해만 살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초와 해, 홍이 모두 살아야 그게 정말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는 것에 대한 의지가 제일 강한 홍이 만들어진 것 같고, 그렇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연기를 하면서 호흡이 깨졌던 순간이 있을까

허혜진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장면 장면마다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현실의 제가 들어왔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해서 맥이 끊어지지 않거든요. 그리고 같이 연기하고 있는 배우님들이 너무 잘 하셔서 빠져나갈 일이 없더라고요.(웃음)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허혜진  초반에 병근 배우님이랑 공연을 하고 한동안 겹치는 스케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바뀐 거 있니?"라고 물으셔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느 날부터 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는데 초가 굉장히 안쓰러운 마음에 이렇게 손을 잡았거든요. 다른 배우님들은 홍이라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쳐내던가 밀어내는 반응을 하거든요. 아직 저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홍이 너무 훅 들어가면 오히려 '아니, 난 바뀌지 않았어'라고 표현하는 장면인데 갑자기 제가 손을 잡았는데 오히려 저를 끌어당기더라고요. 그 순간 정말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온몸의 털이 쭈뼛 섰어요. 저도 모르게 손을 뺐죠. 그때 미안함과 무서움이 교차했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 병근 배우님이 마지막에 저를 안아줄 때 그제야 내가 너를 살렸고, 네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각자 다른 반응이 나왔을 것 같은데

허혜진  제가 사실 즉흥적으로 무언갈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이 저한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사나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이 작품이 뭔가 그런 두려움을 없애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 전보다는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고, 급작스러운 일이 생겨도 작품 속 인물로서 대응을 하고 있는 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죠. 

Q. 좋아하는 넘버나 대사가 있다면?

허혜진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요. 사실 처음 연습할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었거든요. 처음에 저는 그냥 모든 인물들을 살리려고만 했었어요. 그냥 설득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연습을 하고 작품에 더욱 깊게 들어가면서 내가 살려고, 살리려고 당기기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들을 끌어안고 뛰어내린다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또 이 노래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실 어느 날엔 날아오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날이 있기도 해요. 초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면 그래도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데, 어느 날의 초는 가슴에 구멍이 크게 뚫려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초를 만날 때면 내가 뛰어내려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보다 두려움이 커져요. 그래도 선택을 하죠. 내가 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나는, 그리고 너는 다시 날아오를 수 없고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진짜 무섭고 두렵지만 이들을 안고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죠. 보통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는 초를 바라보면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갔을 때 더 행복합니다.(웃음) "내가 오늘 살렸다!" "내가 내 인생을 살렸어!"하면서요.

사진 ⓒ 조나단 기자
사진 ⓒ 조나단 기자

 

Q. 최근의 나를 가장 좌절시킨 건

허혜진  최근 한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오빠랑 같이 살고 있는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간 다는 것에 대해 많이 슬퍼했고, 아팠던 것 같아요. 뭔가 텀이 있다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순식간에 연차적으로 여러 일들이 다가와서 힘들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일으켜줬던 건 또 주변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정말 집순이거든요. 약속을 잡는 걸 되게 무서워해요. 그래서 공연을 하지 않으면 정말 집에만 있고, 약속을 잡아서 한 번에 모든 스케줄을 하려고 하죠. <그리스>를 하면서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들 수 있었어요. 내가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뭘 하려고 해도 다들 기다려주거나 밀어줬었거든요. 그 이후로 다른 작품을 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좋은 기억들을 쌓아나갈 수 있었죠. 그리고 <스모크>라는 작품 속에서 홍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연과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극 속에서 살려고, 살리려고 하는 의지가 가장 강한 인물이거든요. 인간 허혜진으로서는 힘들었지만, 극에서 살아가는 인물로서는 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변화시켰죠. 이 작품을 하면서 주변에서 저를 굉장히 밝고, 말도 많고 텐션이 높은 줄 아시는데 사실 그것도 밖에서 있을 때 그렇지 집에 가면 굉장히 조용합니다.(웃음)

Q.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찾아갔으면 하나

허혜진  사실 <스모크>를 바라봤을 때 개개인마다 느끼는 부분들이 너무 많고 다 다르실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이렇다고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에 우리 작품이 절망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연습실에서 연습을 할 때 정말 너무 힘들었고,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매일 울고 진이 다 빠졌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큰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면 할수록 '아, 이 부분이 이렇구나?' '아, 이렇게 가면 마지막에 이렇겠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아, 이럼으로써 우리는 날아오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시대에 분명히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비상하길 바라고 꿈꾸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진 ⓒ 조나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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