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비평]  자동차업계 ‘반도체 내상’을 기회로 살리려면
[이원두 경제비평]  자동차업계 ‘반도체 내상’을 기회로 살리려면
  • 이원두 고문
  • 승인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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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중심 시대엔 철강이 ‘산업의 쌀’이었으나 전자와 정보산업 시대인 지금은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다. 우리가 세계의 비웃음 속에서도 눈물겨운 노력으로 제철 산업 육성에 성공한 덕분으로 자동차와 조선 등 중공업 입국을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의 선두 주자로 성공한 지금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첨단 통신기기와 정보기기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강국 한국도 지금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대만적체전로제조)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레시와 D램의 대표업체이며 TSMC는 주문자의 위탁을 받아 생산하는 이른바 파운드리의 강자다.

이런 상황에 반도체 산업에 변곡점의 계기를 마련한 주체는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탄소 중립화에 발맞추기 위해 자동차 업계가 선택한 출구가 전기자동차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작년 여름부터 미국과 중국 시장이 급속하게 회복됨에 따라 각 메이커의 전기자동차에 대한 투자 또한 가속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의에 냉수를 끼얹은 것이 바로 반도체 부족 현상이다. 전기자동차는 기계라기보다 전기 전자 제품에 속하기 때문에 반도체 역시 대량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다. 가솔린차 1대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가격 기준으로 2백 20달러인데 반해 EV는 액 두 배인 4백 50달러, 하이브리드는 5백 달러어치를 필요로 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정보처리 기능의 마이크로컴퓨터,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 반도체(Power IC)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감염증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됨에 따라 전자제품 수요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특히 유럽 일부 업체는 자동차용이던 범용 칩 라인을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민생으로 바꾸는 바람에, 또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은 이른바 팹리스(Fabless)가 위탁생산 캐퍼시티와 원부자재를 매점하는 바람에 자동차용 반도체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반도체 내상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EU를 중심으로 각국의 산업지원정책이 기후변동과 연관된 분야에 집중되는 바람에 파워 반도체에 대한 정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악재다. 반도체 업체로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보장되는 정부 수요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어 자동차 업계를 홀대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자동차 업계가 필요로 하는 두 반도체가 정밀한 고부가가치 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산을 늘리려면 설비투자가 필요하지만 마이크로컴퓨터는 신규투자 대상이 아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이 대만 당국에 반도체 부족 현상의 조기 해결을 촉구하자 TSNC도 ‘차 산업에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제스쳐에 지나지 않는다. 고부가가치 파운드리만으로도 거의 풀 가동하는 현실에서 값이 싼 저급의 자동차용 반도체에 손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 파운드리 라인을 증설하면서 추격태세를 정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동향도 TSNMC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자동차 업계의 전기자동차 증설 계획은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 작년에 거의 50만대를 판매한 선두업체 테슬러의 올 판매 목표는 1백만 대다. 여기에 현대차 그룹은 2025년까지 23종, 연간 1백만 대의 EV판매를 목표하고 있으며 폭스바겐도 같은 기간에 전세계판매량의 20%를 EV로, 미국 GM 역시 EV 30종을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 도요타도 2020년대 초반기에 10종 이상의 EV를 내놓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야심 찬 계획은 결국  ‘반도체 확보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노리고 대만의 TSMC는 가격 인상 카드를 내밀고 있다. TSMC뿐만 아니라 대만의 반도체의 후공정 기업들도 10% 정도의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마이크로컴퓨터나 파워 반도체 전문생산은 ‘영세업체’ 몫이다. 미세가공이 공정이 필요 없다 하더라도 설비투자에서 생산까지는 적어도 9~112개월이 걸린다. 삼성전자나 TSMC가 대담하게 자기희생에 가까운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내상은 더욱 심화 될 것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춘 자동차용 반도체 전업 기업 등장에 기대하는 길밖에 없다.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한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한 번 쯤 노려볼 만한 기회가 아닐까? 변곡점을 맞은 반도체 업계와 정책당국의 새로운 발상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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