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경제칼럼] 준법위 ̛ 사법리스크, 이재용 재판이 남긴 것
[이원두 경제칼럼] 준법위 ̛ 사법리스크, 이재용 재판이 남긴 것
  • 이원두 고문
  • 승인 2021.0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용 삼성부회장이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 법정 구속’ 됨으로써 이른바 ‘국정농단’사건의 사법적 매듭은 지어졌다. 물론 특검이나 이재용 부회장측이 ‘실익이 없다’고 재상고를 하지 않을 경우다. 이재용 부회장은 2심 판결까지 약 1년간 수감생활을 했음으로 잔여 형기는 1년 6월이다. 상식적 기준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삼성그룹이나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가혹하고도 충격적인 시간이다. 

이 판결은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는 재판부 요구로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안에 구성한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제 판결에서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제임스 김회장이 (이 사건과 판결은) ‘한국에서 기업인이 얼마나 많은 형사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사례’라고 한 논평이다.

현재 ‘정책적 기업환경’은 아마도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상법 공정거래법 중대재해법 등으로 기업과 기업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가 유례없는 옥죔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 여당 일부에서 제기한 ‘코로나 이익 공유제’가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록 ‘자발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역대 정권이 기업으로부터 공공연하게 자금을 끌어드리면서 ‘강제’를 인정한 적은 거의 없다. 방위성금이 그렇고 불우이웃 돕기와 해마다 반복되는 수재에 따른 의연금도 ‘기업 자발’이었을 뿐 권력층이 강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의연금이나 성금, 출연금이 과연 압력 하나 없이 이루어진 순수한 기업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법정구속에 대해 경제계가 볼멘소리를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법을 어겼다면 기업인이라 할지라도, 비록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라도   응분의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제사범, 특히 뇌물 사건은 대부분 그 발단이 정치 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우리의 상례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권력에 의해 ‘강제된 자발적 행동’으로 기업이 치명적인 상처를 당한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권력층이 져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책임을 진 권력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장이 삼성에 대해 ‘준법감시제도’마련을 주문한 것은 아마도 한국적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찾아주려는 배려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법정구속은 막지는 못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한 예방 감시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서 준법위를 평가절하했다. ‘시말서를 써 오라’고 해놓고 막상 시말서를 제출하자 문제가 있다고 잘라버린 꼴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대비 능력을 문제 삼은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준법감시위’는 재판부가 모처럼 시도한 ‘사법실험’이었으나 뒷말만 남긴 채 막 뒤로 자취를 감춘 것인데 반해 암참의 제임스 김회장의 한국적 기업환경 비판은 비록 외형적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일지 모르지만 속내는 여전히 개도국이나 신흥국 수준의 후진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을 지적한 뼈아픈 충고다. 암참은 2019년도 세계경제포럼(WEF)의 경제경쟁지수에서 한국국가경쟁력은 13위에 올라 있으나 규제 부담은 87위, 규제개혁 법률 효율성은 67위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 한국에서 기업 CEO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2천 2백 개나 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사법 리스크가 그만큼 크고 무겁다는 뜻이다.

준법기구를 만들라는 요구까지 한 재판부가 결국엔 이재용 부회장을 법정구속한 것은 여론을 의식한 ‘용기 없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역시 막강한 정치 권력과 행정 권력이 작용하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판결이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막강한 권력이 스스로 힘을 줄여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외형만 그럴듯한 ‘후진성의 경제 강국’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두말할 요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비정상적 형태의 경제강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것이 바로 이재용 법정구속으로 막을 내린 파기환송심이 남긴 교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