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31화-커플로 오해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31화-커플로 오해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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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내내 2대에 걸친 남녀의 애증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수지를 둘러싼 세 남자의 결투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결투?
미국 땅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하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막장 탈선인 치킨 게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더 알아보려면 한영지를 만나야 해.’
나는 그렇지 않아도 한영지를 만날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여보세요.”
“한영지입니다. 거기 어디세요?”
핸드폰에서 영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전화 번호 단축키 1번을 쓰고 있는데 한영지는 내 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나요, 추리작가...”
“아, 선생님이시군요. 목소리 몰라봐서 죄송해요.”
“지금 바쁘지 않으면 좀 만날 수 있을까?”
“잠깐만요...”한영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제가 리허설을 하고 있거든요. 두 시간 쯤 걸리는데 그 뒤에 뵈면 안 될까요?”
“어디서 연습하시는데요?”
“홍대 역 앞이에요.”
“연습하는 것 구경도 할 수 있나요?”
“예?”
한영지는 다시 잠깐 있다가 말했다.
“재미없을 텐데... 구경 하셔도 돼요.”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홍대 역 입구의 뮤지컬 리허설 장소를 찾아갔다.
한영지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어 사당동역에서 지하철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갔다.
내가 연습실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청아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텅 빈 극장 무대 위에 한영지가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자태가 아름다웠다.
나는 이쯤 제 눈에 안경이라면 연인 후보 될 만하지 않느냐고 혼자 피식 웃었다.
한영지는 무대 분장은 하지 않고 평상 복장으로 연기와 목소리로만 연습을 하고 있었다
상대역은 키가 크고 목이 짧은 남자. 약간 살이 찐 성악가인지 가수인지 모르는 남자였다.
대사로 봐서는 남자가 여자를 속이고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는 것을 알아낸 여자가 남자한테 따지고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남자를 준엄하게 꾸짖는 장면에서는 한영지의 눈에서 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리얼리티가 강력했다.
한 시간쯤 노래와 연기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한영지가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느꼈다.
나는 갑자기 한영지가 나로부터 아주 먼 곳,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한영지가 다행이 의견이 맞아 사귀게 된다면,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은 아내 엄정현이 싫지는 않다. 
헤어지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한영지가 나를 인정해 준다면 사귀고 싶고 결혼 하고 싶고 같이 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
‘젠장, 우리나라는 왜 1부 2처제 같은 것이 없나. 어떤 나라는 아내를 4명이나 두어도 괜찮은데...’
나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는 사이 두 시간이 흘러 한영지의 리허설이 끝났다.
연습이 끝나자 한영지는 상대역인 남자와 잠깐 무대에 선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아직 멀었지요? 목청이 잘 트이지 않아요.”
남자는 웃으면서 한영지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하면 충분해. 영지는 원래 타고난 목소리야. 이제 총 리허설 한번만 하면 되겠어.”
“끝가지 잘해 볼게요. 선생님.”
그런데 아니 이제 웬 일이야.
남자가 한영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안으로 잡아당겨 한영지를 자기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영지와 얼굴을 맞대었다.
키스를 한 것인지 뺨에 뽀뽀를 한 것인지 분명히 구별이 가지 않았다.
나는 피가 확 솟구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놈과 어떤 사이일까.
“선생님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무대에서 내려온 한영지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 앞에 섰다.
“저 사람은 성악가인가요?”
내가 아직 무대에 서있는 목 굵은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예. 바리톤 함정휴 선생님이예요. 제가 존경하는 분이예요.”
나는 한영지가 그를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존경 한다고요?”
“예. 세계적인 바리톤이예요. 그건 그렇고 제 목소리 어땠어요? 저는 원래 연극만 해서 목소리가 별로거든요.”
“굉장히 매혹적이었어. 감미롭고 유연했어.”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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