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6화- 엄마의 남자들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6화- 엄마의 남자들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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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영지를 한번 본 뒤 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주 예쁘다는 것 빼고는 특별히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은 없었으나 첫눈에 나를 매혹 시켰다.
나는 이미 딸까지 둔 기혼자이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다. 
그런데 처음 본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더구나 나이가 열다섯이나 차이가 나는데, 아무리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해도 낯간지러운 나이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한영지의 차를 처음 탔을 때 나를 아찔하게 한 것은 차 안에서 풍긴 재스민 향수 냄새였다.
나는 다음날 일부러 불가리 여성 향수 전문점에 가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재스민 향수 한 통을 사다가 아내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내한테서 재스민 향수를 맡고 싶었다.
“여보, 당신 생전 하지 않던 일을 다 하네요. 느닷없이 웬 향수 선물이에요. 그런데 내가 한번 써보았더니 나한테 안 맞아요. 당신 성의는 고맙지만. 그래서 친구한테 선물로 주었어요.”
실패다.
따지고 보면 아내 엄정현 아줌마도 처녀 시절엔 한영지 못지않게 예뻤고 나를 매혹 시켰다.
한영지에게는 한영지의 냄새가 있는 것이고 엄정현에게는 엄정현의 냄새 있는 것이다.
그걸 무리하게 내 취향대로 바꾸려는 것이 억지라면 억지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머릿속에서 한영지의 영상을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한영지를 만난 것은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썸 타는 일을 만들려 한 것도 아니다.
한수지 살해 범인을 잡는데 도움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 이제 한수지 살인범을 찾아내자.
나는 한수지가 한국 바이오 컴퍼니에 오기 전에 잠깐 근무 했다는 메디팜 회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그 회사의 정식 명칭은 한강 메디팜이었다.
나는 곽정 형사를 통해 그 회사 사장이 제약계의 신동으로 불리는 조진국이라는 것을 알았다. 
곽정 형사의 소개로 조진국 사장과 면담 약속이 되어 다음날 오후 3시쯤 판교에 있는 한강 메디팜으로 갔다.
거기서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조진국 사장은 해외 신약의 복제 기술이 뛰어난 기술자였다.
눈빛이 날카롭고 툭 튀어 나온 이마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사장임에도 따로 방이 없었다.
실험실 구석에 조그만 컴퓨터 데스크 하나가 집무실이었고 접견실이었다.
자동차도 왜건 스타일의 국산차를 즐겨 탄다고 한다.
세계 특허를 가진 해외 어떤 의약품도 한 달이 못가 똑 같이 복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조진국이라는 것도 알았다.
“한수지, 아까운 아인데 잃어서 안 됐습니다.”
조진국 사장도 한수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에서 이 회사로 오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까?”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내가 제일 먼저 물어본 질문이었다.

“특별한 인연이 있지요. 한수지는 내 친구의 딸입니다.”
“예? 그럼 한일선 회장이 조 사장님의 친구였습니까?”
“예. 한 회장은 참 훌륭한 인격자였습니다. 평소에도 회사 이익금의 10%는 항상 사회 공헌 자금으로 기부해 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도...”
나는 그의 친구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본론으로 질문을 던졌다.
“예. 그랬군요. 그럼 한수지 씨가 미국의 어느 대학 바이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조 회장님이 스카우트 해 온 케이스군요.”
“그렇습니다. 그냥 그곳에 둘 수도 있는데, 사정을 알고는 하루 빨리 한국으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정을 알다니요?”
나는 조진국 사장의 말에서 그들 사이에 숨은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 사장은 한참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가 오차 한 잔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한수지 자매와 어머니 강혜림 여사가 버지니아에 함께 산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만 아는 비밀이 좀 있습니다. 그건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이야기라서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입니다.”
“그런 사정이 있군요. 친구를 위한 비밀이라면 지켜야지요. 그런데 내용을 말씀하지 않더라도 어떤 종류의 이야기인가 하는 것은 좀 말씀 하실 수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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