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5화  엄마가 사모한 남자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5화  엄마가 사모한 남자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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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일은 참 안 됐습니다. 전번에 집에 간 일이 있거든요. 어머님만 뵈었지만...”
내가 먼저 한수지 이야기를 꺼냈다.
“추리를 해 보셨나요? 회사 내부의 갈등, 상사와의 애정 관계, 집안의 복잡한 재산 문제, 무절제한 남자관계의 빗나간 복수, 엄마 아빠 시대의 은혜와 원수 관계가 대를 이었다든지, 뭐 그런 것 추리 해 보셨나요?”
“소설로 쓸 수 있는 상상력은 다 동원 되었는데요. 역시 예술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니까.”
나는 영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우리 엄마 미인이지요?”
“정말 그래요. 영지씨나 수지씨도 엄마 닮았지요?”
“아뇨. 우리 언니는 아빠 닮았어요. 나는 엄마 닮고요.”
“아버지도 미남이셨나요?”
“그냥 보통 남자였어요. 우리 엄마를 죽을 때 까지 처음처럼 사랑했지요. 속은 거죠.”
“예?”
“선생님 말씀 낮추세요. 저 아직 어려요.”
“그래도...”
나는 한영지가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는 마포대로를 지나 강변북로로 접어들었다.
왼쪽으로 한강의 잔잔한 파도가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비늘을 한 없이 펼쳤다.
“아까 아빠가 속은 거라고 했는데 무슨 듯이야...요?”
나는 그냥 반말을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어 어미가 어정쩡하게 되었다.
“아, 그거요? 엄마가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거든요.”
“엄마가 사랑하는 남자라고?”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거든요.”
“그게 누군데...”
“선생님은 본 일이 없는 남자예요. 먼 나라에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먼 나라에서 오래 전에?”
“예. 언니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지 선생님이 좀 알아 볼 수 있나 하고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음~ 먼 나라의 오래 전 일이라면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의 TJ 유학 시절을 말하는가?”
“아니,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계세요.”
한영지가 놀라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았다.
“유성우나 권익선도 알고 있지.”
“그럼 거기서 아내를 잃은 유성우의 아버지 일도 알고 계시겠네요?”
“유창호 회장 말인가?”
“우와, 정말 추리 작가시네요. 그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그럼 유성우의 아버지 유창호를 어머니 강혜림 여사가 좋아 했다는 이야기인가?”
“단순히 좋아했다라는 표현은 좀 달라요. 그렇게 간단히 정의 할 수가 없거든요. 물론 지금도 어머니는 겉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죠.”
“음~ 무슨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게 언니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을까?”
“만약 관련이 있다면 재미있는 소설이 되겠지요.”
나는 한영지가 나한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입 밖에 내는 것을 꺼려할 어머니의 혼외정사 이야기를 풍기는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지니아 유학 시절 아내를 잃은 유창호 회장은 강혜림 여사한테 늘 빚진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는 정도는 아는데...”
“동정이 지나치면 사랑이 되고 원망이 지나치면 복수를 낳는다는 말을 아세요? 그러나 그 두 사람 사이는 좀 특별해요.”
“복수는 누구의 명언인가?”
“요즘 제가 리허설하고 있는 뮤지컬 대사의 한 구절이에요.”
“정말 있을법한 명언이네.”

한영지는 어머니의 옛날을 좀 더 알아보라는 식의 힌트만을 주었다.
우리는 임진각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파주의 어느 매운탕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한수지와 유성우, 그리고 유창호 회장과 강혜림 여사, 도대체 어떤 끊지 못할 인연이 있었을까.
한영지는 오민준에게서 들은 이야기보다 훨씬 괜찮은 여자였다.
정말 한번 사귀고 싶을 정도로 이날 나에게 썸 타는 기분을 남겨놓았다.
세대차이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의 독특한 말솜씨와 아름다운 미소가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모처럼 만에 아내를 품으면서도 내내 한영지의 모습을 떠 올리며 절정을 맞았다.
아내가 내 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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