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 여배우들 정아미, 오현지, 김은채 의 인생샷! Part 2
지난 계절의 여운이 아직 나뭇가지를 붙드는데 몇몇은 빨갛고 노랗게 내려와 이 가을을 맞이한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고. 2020년 10월 어느 날 잠실 와인바 루얼(Loulle)에서 만난 세명의 여배우들은 드레스코드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격과 스타일도 극과 극이다 싶을 만큼 달랐다. 서로의 시선과 생각, 감각들은 확장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제일 먼저 온 화이트 김은채 배우
아무런 색도 없는 무채색인 만큼 깨끗하고 순수하고 단순한듯 하나 모든 빛을 반사하는 그녀의 밝은 미소와 말씨에서 심리적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이 내재되어 있는 여배우이다.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물러가니
블루 정아미 배우의 등장으로 그녀가 뿜어내는 스펙트럼 파장은 차가움과 뜨거움, 냉정함에 신비감 또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하게 다가오는듯 했다. 인간이 감지 할 수 있는 빛의 속도를 뛰어 넘는 우월감이 느껴지는 여배우이다.
원래 별은 나중에 오는 거라 했던가
흥분되었던 신경에 균형과 조화를 더하는 블랙 오현지 배우는 깔끔 단정하고 권위적인 듯 했으나 지배적으로 모든 빛을 흡수하니 오히려 편안하고 보호감마저 드는 여배우이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 세명의 여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세상에 내 놓을 준비가 되었냐고! 나의 삶이 너무 보석 같아서 서랍에만 담아 두고 싶지 않다고!’ 그런 그녀들의 행적이 수 갈래의 길로 퍼져 나가면 예상치 못한 ‘기회’ 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마다 다른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 유쾌 발랄한 여배우들의 취중 진담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오현지, 단아하고 편안함이 지배적인 블랙홀같은 배우
깊이를 알 수 없는 매력의 늪이 당신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영화 “돌아이”의 여배우 오현지, 여전히 나는 소녀인가?
얼마전 광고를 찍으셨어요
네. 60대 노인역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노인 분장을 하고 거울을 보았는데 노인 모습을 한 저에게 많이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여배우인데 예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죠. (나는 아직도 20대인줄 알았다..) 속상했지만 받아들였죠! 역할에 몰입하는게 답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 . .
이렇게 배우가 되었다
원래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숫기도 없었고 배우라는 직업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고등학교때 우연히 잡지 모델을 하게 되었죠. 저희 어머니가 학생 모델 지원서를 가져와 접수 한 것이 뽑히게 된 계기입니다. 아마도 엄마의 꿈이 배우가 아니었나 싶어요(웃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MBC 공채 탤러트가 되어 활동 하면서 이두용 감독의 영화 ‘돌아이1,2’에 캐스팅 되어 영화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학교때 좋아했던 과목이 영어라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었고 간호장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학생모델로 활동하면서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후회? 후회는 안해요.
긴 시간의 공백기를 깨고
연극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은 2018년 정동 세실 극장에서 초연했습니다. 제가 35년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계기를 열어 주는 작품이었고 헬렌 켈러의 자전적 이야기로 주인공 ‘헬렌 켈러’로 나오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많이 떨리고 두려웠는데 김상진 연출가가 용기를 주었습니다. 사실 정아미배우, 김은채배우는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저는 거의 신인에 가까웠죠.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고 살림만 하다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예전과 다른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어 갈등 아닌 갈등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마음을 비우고 내려 놓으니 정말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우연하게 만난 대학 동기들 모임에서 누군가 ‘이제는 일을 해야 하는거 아니야?’ 했을 때 고민 하길 잘 한 거죠. 지금은 다시 배우로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 시간이 편합니다.
솔깃한 제안
결혼과 동시에 활동을 그만두고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매일 반신반의 하면서 극장으로 갔죠.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 다니면서 촬영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저에게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연극무대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공연 연습을 할 때 틀린 것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어떤 디렉션(direction)도 없었습니다. 괜찮냐고 물으면 연출가는 ‘아주 잘 하고 있다고’만 하고요. 그 솔깃함에 연극 ‘알츠. 하이! 뭐?’ 와 뮤지컬 ‘사북, 화절령 너머’ 그리고 얼마전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원의 ‘비대면 컨텐츠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청각장애 배우들과 루씨드드림 문화예술 협동조합에서 기획, 제작, 각색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쇼케이스 작업을 마쳤습니다. 내년 무대에서 공연을 함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시대적인 흐름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코 대중성에도 뒤지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실험하고 실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드는 김상진 연출가와의 작업도 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 끊을 수 없다니깐요! )
연출가 김상진 배우들에게 이야기하는
연출가는 연기 선생이 아닙니다. 배우들에게 거의 주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 하고 끝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면 배우들은 반드시 해 내거든요. 배우나 연출 모두 같은 창작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결국에 연극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만났을 때 창조가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위해서 연출가의 주문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가로 막을 필요는 없는 거죠. 굳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치매를 이야기한 ‘알츠, 하이! 뭐?
강제 위안부였던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다는 설정으로 할머니의 과거로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연기를 한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치매를 앓는 노인의 움직임, 걸음걸이, 고통을 분담해야만 하는 자식을 대하는 태도 등 아직까지 부모님에게 서도 볼 수 없었던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연기를 하는게 어려웠습니다. 언제 일지 모르지만 30년뒤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니깐 애써 외면하고 모른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죠.
연극 ‘알츠, 하이! 뭐?’ 연출가 김상진은
알츠하이머가 우리 세대에서는 10명중에 1명 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20년뒤 아이들 세대는 10명중 6명 이라고 하고요.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하고 특별한 약도 없죠. 무엇보다도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 제일 가장 큰 문제는 내 삶을 내가 마무리 할 수 없다는 거죠.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게 비극이라면 비극이고 그것은 즉,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고통스럽더라도 함께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찿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극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의 저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새롭게 각색해 장애인을 위한 공연 영상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헬렌 켈러의 위대한 이야기 보다는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반’, ‘앤 설리반’의 스승 ‘로라 샤론’ 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교육으로 기적 같은 삶을 살게 되는 헬렌 켈러의 희망은 또 무엇이었을까? 하는 이야기로 장애인, 일반인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연극 공연입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과 공연함으로 손언어(수어)라고 하죠? 수화를 배우게 되는데 일반인이 하는 수화와 농인들이 하는 수화는 다르거든요. 청각장애자의 수화는 생활이지만 헬렌켈러 역을 하게 된 저는 자연스럽게 수화를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예술적인 면으로 놓고 보면 예쁜 수화를 해야 하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화 열심히 배웠습니다. 녹녹치 않은 조건 속에서 함께 했던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감사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해서 또 다시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다양한 삶에 대한 이야기, 여배우로 산다는 것
외로움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도 외롭고 사랑을 안 받아도 당연히 외롭고 이래도 저래도 외로운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절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과의 인연이 많이 넓지는 않지만 좁고 깊게 만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했던 힘
당연히 가족입니다. 결혼생활동안 남편과 아이들 챙기기도 바뻤습니다. 문득 문득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있었기에 저는 너무 행복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들의 위로로 되찿은 자신감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무대에 설 수 있고 연기 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
여럿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히 정아미배우, 김은채배우, 김상진 연출가가 있습니다. 아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데 꼭 언니 같습니다. 은채는 뮤지컬 ‘사북, 화절령 너머’에서 처음 만났지만 예쁜 후배이자 친구, 상진이는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바깥 세상으로 꺼내 준 일등공신이죠. 사실 수많은 극단, 작품들이 있어도 연출가와 배우의 만남은 한두번도 어렵죠. 하지만 우리들은 여럿 작품을 함께 공연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를 쌓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고맙죠.
몸 따로 마음 따로,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이 있다면
제가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등 답장을 빨리 잘 못합니다.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지도 못하고 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 나이 먹어봐~ ) . . .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
자기전에 운동을 하고(필라테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2시간 정도 읽고 싶은 책을 읽죠. 그러다 보면 새벽 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일이 없는데 자는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여배우들은 12시전에 자야 피부관리도 하고 그런다는데 저는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행복합니다. 아무 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오롯이 나 만을 위한 시간이어서 그런 가봅니다. 요새는 나이가 들어 노안이 오다 보니 돋보기를 쓰고 읽는데 눈이 많이 피로합니다. 그래도 아들이 아직 학생이라 아침 7시가 되면 일어나 운동 가볍게 하고 학교 갈 준비를 도와주는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 루틴을 나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아주 정중히’ (아미, 같은 나이인데 왜 나는 안 깨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제가 연기를 잘 하거나 이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연출자나 감독이 하는 이야기를 오현지라는 배우를 통해서 잘 투영할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상황상황 미워할 수 없는 발칙한 고민의 깊이가 완성도 높은 연기로 무대에서 증명이 되면서 고정관념이 없는 배우이길 바라는 거죠.
나를 지키는 힘
저는 “제 자신이 항상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자신감을 갖고 삽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자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데 어떤 때는 새로운 환경이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못해봤던 것에 대한 열등감이 생길 수도 있고요. 이제는 중년인데 다시 신인시절로 돌아가서 처음 시작했던 기억들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처음으로 돌아가 초심으로 사는 것, 그것은 제 자신을 항상 절제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오현지,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
동양적인 수줍음을 가지고 있는 여배우이다. 서로 다른 우주안에 존재하던 형태들은 그녀만의 유형적인 표현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듯 했다. 오현지만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존재하지만 존재 하지 않는 것,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상들로 물들여가며 다양한 감정들과 친숙한 이미지들로 마치 그녀가 걸어온 길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관객과 마주한다.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는 내면의 독보적인 색채들을 꽤나 오랫동안 만나기를 본능적으로 기대한다. 쉬지 않고 매일매일 상상하면서 그녀만의 세계를 떠나는 여행길에 동행하려 한다.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 . 과장된 표현 없이 일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여배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서랍안에 담긴 화이트 김은채 배우와의 조우를 기다린다.
글 문화칼럼니스트 강 희 경 ( 藝 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