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3화- 빌려준 여자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3화- 빌려준 여자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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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놓인 커피 잔 두 개를 보았지? 우리가 가기 전에 분명 누가 다녀 간 거야.”
“남자야. 그 사람은.”
내가 맞장구를 쳤다.
“남자인줄 어떻게 알아?”
“커피 잔 하나는 립스틱 자국이 있고 커피가 3분의1쯤 남아 있었어. 그런데 하나는 립스틱 묻은 자국이 없었어. 커피는 다 비웠고.” 
내 말은 들은 곽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본 변하진 사장이었을까?”
“나도 그걸 생각하는 중이야. 무엇 때문에 갔을까? 혹시...”
곽정 형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어머니 강혜림도 한 인물 하더군.”
“삼 모녀가 다 튀는 인물이야.”
차가 어느새 집 앞에 닿았다.
“들어가서 차 한 잔 하고 갈래?”
“옛 애인, 아니 엄 여사 얼굴이나 한번 볼까?”
곽정 형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곽정이 내 아내를 보고 옛 애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곽정 형사와 내가 대학 졸업반 때 한때 절에 가서 외무고시 본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실패했지만.
어느 날 서울에서 여자 친구가 둘이 찾아왔다.
둘 다 곽정 형사를 찾아온 여자 대학교 학생이었다.
우리는 넷이 어울려 산사 밖 조그만 마을에 내려가 밤 새 막걸리를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그 이후 나는 두 여자 중 엄정현을 좋아했다.
“너, 엄정현 건드리지 마. 내가 찍었어.”
곽정이 그때 미리 나한테 한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정현한테 이미 뿅 간 상태였다.
엄정현도 나를 좋아했다.
사정이 심각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엄정현의 배 속에 내 씨앗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결국 곽정이 양보하고 같이 왔던 다른 여학생과 결혼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아내를 볼 때 마다 옛 애인을 나한테 빌려 주었다고 우겼다.
언젠가 효력이 다하면 데려 간다고 농을 했다.
“엄정현, 자기야 내 왔어요. 데리러 왔어요.”
곽정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먼저 아내를 찾았다.
아내가 나오면서 웃었다.
“깍정이님, 어서 오세요. 아직 나무꾼의 시한이 남았대요. 자녀 셋을 못 낳았거든요.”
깍정이는 곽정의 이름에서 딴 애칭이었다.
우리는 내 집필실에 앉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오 컴퍼니 사건 말이야. 거기 중요 인물을 차례로 제거시키려는 무슨 음모가 있지 않을까?”
“글쎄 말이야. 거기는 회사의 구성상 인재가 재산인데 인재를 다 없애면 회사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회사를 파산시킬 음모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단순 살인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더 넓은 범위에서 수사를 해야 할 것 같아. 회사를 넘어뜨리려는 것은 개인적인 원한이기보다는 회사끼리의 이해관계일 수도 있으니까.”
“내일 부터 그 회사의 거래 관계나, 이해가 얽힌 거래처를 좀 살펴보아야겠어.”
“나는 한수지 어머니의 버지니아 생활에서 얽힌 갈등이 오늘의 비극을 낳은 싹이 텄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소설가는 역시 소설가야. 그건 소설일 뿐이야. 소설을 재미있게 쓰자면 그런 애증의 갈등, 남녀의 불륜, 뭐 그런 걸 찾아야지.”
“요즘은 정치인들이 하도 소설을 많이 써서 우리 소설가들 굶어죽게 생겼어.” 
곽정이 빈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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