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2화-추억의 남자
[과학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2화-추억의 남자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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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로 보아 미국서 학교 다닐 때의 사진 같았다.
가운데 여자는 한수지, 옆은 동생 한영지, 그리고 남자 셋 중 하나는 젊을 때의 오민준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권익선과 유성우일 것이다.
“이 사람이 권익선과 유성우가 맞나요?”
나는 사진을 강혜림에게 보이며 물었다.
“맞아요. 토머스 제퍼슨 시절 사진이에요.”
다음에는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 사진이 있었다.
또 다른 사진 한 장,
처음 보는 남자와 강혜림, 그리고 한수지 셋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남자가 강혜림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이 남자, 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질문을 하면서 강혜림의 얼굴을 살폈다.
옅은 물결이 스쳐갔다. 
“아, 유 회장이네요,”
“유회장요? 유성우 씨 아버지 말인가요?”
“예. 버지니아 살 때 자주 만났어요.”
나는 유성우한테 들은 일이 있지만,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며 다른 상상에 해보았다.
“버지니아 시절 사진을 아직도 책상위에 두고 보는 것을 보면 한 팀장도 그 시절이 그리웠던 모양이지요?”
내가 사진을 계속 넘겨보며 강혜림에게 말을 걸었다.
한수지가 죽 고 난 뒤 한 번도 들어와 보지 않은 방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한수지가 늘 꺼내놓고 보던 앨범일 것이다.

“한창 나이 때 남자친구들을 만났으니까 감회가 있겠죠. 어머님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립지 않습니까?”
내가 말을 던져놓고 강혜림의 반응을 살폈다.
“유일한 친구가 총 맞아 죽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끔찍하죠.”
유성우의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강도에게 피살되던 장면을 떠올린 것 같다.
“그래도 유 회장과는 자주 어울린 것 같네요.”
내말에 강혜림은 신경을 곤두 세웠다.
“유창호 회장님을 아세요?”
“유성우씨의 아버님 말씀인가요? 한 번도 만난 일은 없습니다. 아들인 유성우는 만난 일이 있습니다만...”
“좋은 분이예요. 나 때문에 부인을 잃게 되어서 내가 한때 볼 면목이 없었어요. 유 회장은  내가 그런 생각을 못하게 참 많이 감싸 주었거든요.”
“예. 그랬군요.”
나는 강혜림의 얼굴에서 애틋한 무엇을 추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위로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애정으로 변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하진 사장에 이어 강혜림 주변에서 또 다른 남자를 발견 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의 연쇄 살인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내가 모르는 얽힌 윗대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 회장과 강혜림, 그리고 유성우의 어머니와 한수지의 아버지... 자꾸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의 지나친 상상력이 빚은 허구일까?
“한수지 팀장과 유성우 씨는 사이가 좋았나요?”
내가 강혜림 여사를 보고 물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복잡한 그림자가 스쳤다.
“같은 학교 동창이니까 잘 지냈지요. 버지니아 시절엔 유성우, 오민준, 권익선이 자주 어울려 다녔거든요. 그중에도 제일 두각을 나타 낸 아이는 유성우 였는데... 생각이 깊고 신중했어요. 그러나 고집이 세었지요. 어머니가 비명에 돌아가신 뒤 한때 방황했어요. 학교도 1년간 쉬고.”
“아버지는 그 뒤 재혼을 하지 않았나요?”
“그 분도 아들처럼 자기주장이 뚜렷한 분이었죠. ‘실리콘 벨리의 마이더스의 손’이란 별명을 가진 세계적인 경영자이지만 여자에 대한 순정은 숫총각 급이었어요. 순진했죠.”
“어머님 하고는 스스럼없이 지냈겠네요.”
내가 다시 슬쩍 건드려 보았다.
그러나 강혜림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창호 회장이 아직도 혼자 지내는지 유성우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어머님 스튜디오가 있지요.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혼자 계속 한수지 방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던 곽정 형사가 엉뚱한 부탁을 했다.
“별로 구경꺼리가 없는 데요. 그냥 습작들뿐인 걸요. 내년에 전시회를 준비했는데 수지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작품을 못해서...”
강혜림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앞장서서 스튜디오로 우리를 안내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나는 눈이 둥그레졌다.
아파트 안에 이런 곳이 있느냐고 생각할 만큼 넓고 탁 트인 작업실이었다. 
사방에 그리던 캔버스와 완성된 작품이 수백 개는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 캔버스에 얹혀있었다.
여자 나체상이었다.
“이 그림은 모델이 있나요?”
“예.”
“직업 모델을 쓰시는 군요.”
스케치는 젊고 날씬한 여자였다.
스케치를 마치고 유화 페인팅 작업을 막 시작한 것 같았다.
“우리 둘째 아이 영지예요.”
“연극과 음악을 한다는...”
“예. 맞아요. 모델 설 시간 없다는 것을 겨우 꾀어서 했는데, 아직 끝을 못 냈어요.”
“아름답습니다. 세 모녀가 모두 뛰어난 미인이십니다.”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려둔 그림들을 둘러보다가 유성우와 꼭 닮은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10호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인물 유화였다.
나는 그것이 50대쯤 된 유성우의 얼굴과 비슷하다는 추측을 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이 그림의 남자와 비슷한 사람이 있어요.”
내가 이야기 하며 강혜림을 보았다.
“유 회장을 만난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아들인 유성우를 만났군요.”
“맞습니다. 그럼 이 그림의 모델이 유창호 회장입니까?”
“예. 10여 년 전 버지니아에서 그린 것입니다.”
“아들을 닮아 얼굴이 준수하군요.”
“호호호. 농담도 잘하셔.”
강혜림이 처음으로 웃었다.
우리는 한수지의 방과 스튜디오 등 아파트 전체를 거의 샅샅이 살펴보고 그 집을 나왔다.
곽정 형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함께 차를 탔다.
“세 모녀는 아주 여유롭게 사는 거야.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엄청 많은 모양이지?”
“여유롭게 정도가 아니고 아주 호화롭게 살던데...”
곽정 형사는 약간 비꼬는 심사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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