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1화-딸 둘 엄마의 비극
[과학 추리소설 ‘천재들의 비극’ 제21화-딸 둘 엄마의 비극
  • 이상우 추리작가협회 이사장
  • 승인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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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나는 한수지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었다.
한수지의 집을 아는 곽정 형사의 차를 얻어 타고 함께 방배동으로 갔다.
“한수지는 엄마와 동생, 그렇게 셋이 살았나?”
“응, 딸 둔 엄마에 대한 유행어 알아?”
곽정이 빙긋 웃으며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유행어?”
“응. 아들 둘 둔 엄마는 이집 저집으로 떠밀려 다니다가 길거리서 죽고...”“흐흡, 그래서?”
“아들하나 둔 엄마는 요양원에서 죽고, 딸 하나 둔 엄마는 싱크대 밑에서 죽는대.”
“그리고 달 둘은?”
“딸 둔 엄마는 해외여행 다니다가 외국 호텔에서 죽는대.”
“하하하... 그래도 딸 둘이 낫네.”
차가 방배동 어느 아파트 앞에 멎었다.
“여기?”
“음,”
“엄청 비싼 아파트인데.”
“50억대는 될 걸.”
나는 차에서 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50억대?’
“한수지 어머니한테는 우리가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미리 해 주었나?”
차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물었다.
“물론이지.”
그때 주차장 입구에서 경비원이 무슨 용무로 왔느냐고 물었다.
“2301호 방문한다고 이야기하자 출입을 허용했다.
“고급 아파트라서 출입 통제가 엄격하거든.”
차가 지하로 들어갈 때에 마침 대형 승용차 한 대가 나오는 바람에 옆으로 비켜서야했다. 
나는 스치고 지나가는 차의 모양과 번호판을 흘깃 보았다.
낯이 익었다.
“맞았어. 지금 지나가는 체어맨 리무진 보았어?”
내가 곽정 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못 봤는데, 왜?”
“그 차, 검정색 체어맨 리무진 말이야. 바이오 컴퍼니 변하진 사장 차 같았어.”
“뭐야?”
곽정 형사가 깜짝 놀랐다.

“잘못 봤겠지?”
“아니야, 넘버도 끝번호가 33으로 되어 있었거든. 변 사장 자동차의 넘버는 확실히 모르지만 검정색 체어맨 리무진이고 자동차 끝 번호가 33이란 것은 외어졌어. 33은 개미가 기어가는 모양이라 그 모양만 보면 항상 잊혀 지지 않아.”
“개미하고 인연이 있었어?”
“응, 개미 때문에 첫 사랑한테 차였거든.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변 사장이 여기 왜 왔을까? 여기 사는 것은 아니지?”
“설마 한수지 엄마 강혜림 여사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니겠지?”
“글쎄 말이야. 좀 이상하긴 하네.”
우리는 더 이상 상상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강혜림의 아파트 현관 앞에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금세 문이 열리고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었다. 
하얀 피부에 얼굴이 고왔다.
뒤에 안 일이지만 40대가 아니라 50대였다.
첫눈에 한수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미인형 얼굴이었다.
“곽정 형사입니다. 여기는 ...”
“저는 소설가입니다. 곽 형사의 친구지요.”
내가 나서서 먼저 인사를 했다.
“따님 일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내가 다시 인사를 했다. 
강혜림은 그냥 다소곳이 고개만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누추한 곳 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거실로 들어가자 강혜림이  부드럽게 말하며 우리를 소파로 안내 했다.
나는 눈을 굴려 잠깐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파트라고 하지만 엄청나게 넓은 거실이었다.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한 눈에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고급품이었다.
가운데는 2층으로 올라가는 화려한 계단이 버티고 있었다. 텔레비전 연속극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총수 집 같았다.
“차 한잔 준비 하겠습니다.”
강혜림이 돌아서서 부엌 쪽으로 갔다.
“와~ 엄청 큰 아파트야. 2층도 있네. 이게 도대체 몇 평짜리야?”
내가 혀를 내두르며 곽정한테 나직하게 물었다.
“복층이던데, 아마 90 평짜리 일거야.”
“한수지도 여기 살았단 말이지?”
“물론이지.”그때 문득 나는 넓은 탁자 옆 음식 나르는 트레이에 커피 잔 2개가 얹혀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조금 전에 손님이 왔다가 갔다는 흔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변하진 사장이 이집에 있다가 우리가 올 시간이 데니까 나간 것 아닐까?
무엇 때문에 사장이 죽은 부하의 어머니를 찾아 왔단 말인가?
하기는 월급 정산이나 퇴직금 문제 등 의논 할 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강혜림과 변하진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한수진 아버지가 경영한는 회사에 직원으로 있었으니까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이고, 한수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을 때 회사 수습하는 일을 도와주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강혜림과 변하진은 보통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
“산삼 꿀 차를 좀 준비 했습니다. 산삼 꿀 차는 수지가 특별히 개발한 찹니다.”
강혜림이 차 두 잔과 한과를 가득 담은 접시를 함께 들고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곽정 형사가 인사를 했다.
“좀 앉으시지요.”
내가 자리를 권하자 강혜림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았다.
“둘째 따님은 나가신 모양이죠?”
내가 다시 물었다.
“예. 영지는 연극 연습한다고 나갔습니다.”
“집이 참 좋습니다. 2층도 있지요?”
내가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물었다.
“아빠가 남긴 집인데... 옮기기도 그렇고 해서...”
“몇 평이나 되나요?”
“92 평형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 보다 좁아요.”
“한수지 팀장 방은 2층인가요?”
“예. 2층에 걔 개인 연구실 겸 침실이 있고요, 그 옆에 제가 쓰는 조그만 화실이 있습니다.”
“예, 미국에 계실 때부터 화가로 활약 하셨다고 했지요. 요즘도 작품을 많이 하십니까?”
“그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딸을 잃은 충격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수지팀장이 평소에 회사 사람들 말고 친하게 지내거나 개인적으로 껄끄럽게 지내거나 한 사람들이 혹시 있었나요?” 
곽정 형사가 찾아온 목적 중의 하나를 질문 했다.
“미국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특별히 여기서 사귄 친구는 별로 없어요. 동창생이나 회사 사람들 말고 가깝게 지낸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그래요? 혹시 누군지 제가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곽정 형사가 물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였는데 지금은 강남에서 레스토랑을 하고 있습니다. 강남 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빌딩 22층에 있어요.”
“레스토랑 이름은...”
“예, 더 링크라고 하더군요.”
“더 링크, 선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아이스링크를 연상케 하네요.”
 곽정 형사가 태블릿을 펴고 메모를 했다. 
“이름은...”
“채유빈이예요.”
“한수지 팀장을 특별히 섭섭하게 생각해온 사람이 혹시 있었나요?”
곽정의 질문에 강혜림은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딸에 대한 흠집이라도 찾으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딸을 비명에 보낸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 하겠는가만 강혜림은 슬픔과 원통함을 잘 참고 있는 편이었다.
“한수지가 쓰던 방이 아직 그대로 있습니까?”
내가 분위기를 바꿀 생각으로 물었다.
“2층에 그대로 있습니다. 걔가 떠난 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습니다.”
“조금 볼 수 있을까요?”
곽정의 말에 강혜림은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강혜림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한수지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여자가 쓰는 방답지 않게 여러 가지 실험 도구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분에 담겨 자라고 있는 산삼도 있었다.
나는 어지럽게 널려있는 자료 속에서 조그만 앨범 하나를 발견했다.
모양으로 보아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앨범을 집어 들고 강혜림에게 물었다.
“제가 이 사진첩 좀 봐도 되겠습니까?”
강혜림은 앨범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어디서 났지? 예 보세요.”
내가 앨범을 넘겨보았다.
남자 셋과 여자 둘, 다섯 명이 찍은 사진이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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